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눈물의 맛은 왜 짤까요-그림 속 눈물을 읽는 시간

패션 큐레이터 2012. 12. 30. 17:53

 

 

 

디리크 바우츠 <울고 있는 마돈나> 1460년경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트티튜트

 

눈물 앞에서-우는 당신의 그림자를 닦다

 

어느새 2012년이 지나가네요. 다사다난한 한 해를 마무리 하며 르네상스 시대 화가 디리크 바우츠의 그림을 걸어놓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가 그린 마돈나의 이미지는 많은 교양미술서에 자주 보신터라, 익숙하리라 생각합니다. 애잔한 한 장의 그림을 걸어놓는 건 우리사회에 올 한해 눈물 흘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맹아가 시작된 네덜란드에서 도시화가로 시작한 그는, 이 그림을 그리며 '눈물의 값'을 배웠을 겁니다. 사실 인간은 르네상스 이전에는 인간이 감정을 가진 동물이란 점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세 고딕의 화려한 성당 속 스테인드글라스로 그려진 성화 속에도, 신의 영광과 상처가 그려져 있지만, 그때까지도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매체들을 그려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림 속 눈물은 단순하게 학자들이 말하는 '감정이입'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화가는 성모의 눈물, 슬픔의 현실에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적어도 타인의 슬픔에 대해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남겨둔 희망의 눈물샘이 있어야 합니다. 버거운 한 해, 눈물샘이 말라버린 탓인지 타인의 죽음, 타자들의 소외에 눈 돌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숫자가 늘었습니다. 정치환경의 변화조차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외부 환경이 너무 거세진 나머지, 더 이상의 삶을 지속하는 걸 포기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세대간의 분노와 몰이해는 더욱 커졌습니다. 젊은 세대는 노년을 용서하지 않았고, 노년은 여전히 젊은 세대의 비참함을 그저 쾡한 눈으로나 바라보며, 자신들이 살아온 세대의 정당성만을 외쳤습니다.

 

언젠가는 그 분노의 씨앗이 터져, 우리 모두의 눈물이 될 것입니다. 한발 물러나 서로를 바라보자고 하기엔 정말 버겁기만 했던 2012년도 이제 흘러갑니다. 올 사자성어가 제구포신이랍니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친다는 뜻이라지요. 사자성어를 추천한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님의 변이 참 좋습니다. "변혁은 불길함의 징조가 나타날 때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 변혁은 백성의 믿음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혁명, 변화, 내 안으로부터의 단절을 이뤄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외부환경은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의미없는 관성의 체계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지요. 노년이 젊음에게 항상 공박을 당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젊다고 변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우리 안에, 타자의 삶에 대한 관심과 눈물샘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에 따라, 그 삶은 결정되는 것이죠.

 

2012년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이곳에서 지난 1년간 많은 결실을 내며 살았습니다. 제 삶은 항상 그럴것입니다. 올해 다양한 일에 매진하면서 어둑시근한 생의 한 모퉁이, 습한 귀퉁이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많이 전하지 못했습니다. 감싸안아야 할 자, 포옹하고 제 작은 체온의 열기 전해 주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어 그래도 1년 잘 버텼습니다. 희망은 항상 늦게 옵니다. 느릿느릿, 그러나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모두 더 낮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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