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연극제작을 통해 내가 배운 것들-벙커원에서의 사유

패션 큐레이터 2012. 6. 26. 00:50


지난 5월 중순부터 시작된 연극 <서정가>가 여러분의 사랑에 힘입어 

연장공연에 들어갑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국내 초연작 <서정가>는 다쓰에란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사랑의 영원함과 그 조건'에 대해 질문하고 답합니다. 느린 호흡으로

관객들의 지친 마음을 위무하고, 우리 시대의 사랑의 초상화를 새롭게 그립니다. 



이번 연극 <서정가>의 연장공연이 이뤄지는 곳은 설치극장 정미소입니다.

이곳의 지하에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나꼼수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죠. 저도 극장을

대여하며 처음엔 그저 재미있다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즐겁게 현실을 뒤집으며 정치적 현실을 

희화화하는 이들과, 그 위에는 이 땅의 전도된 사랑의 현실을 뒤집으며, 우리 안에서 영원한 사랑의 의미를

묻는 연극 <서정가>가 함께 합니다. 지난 토요일 곽노현 교육감님을 비롯해 주진우 기자의 노래

행사에 함께 와주신 분들 덕택에, 제 공연은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꼼수 팬들이

하도 고함을 지르시는 통에, 설계가 잘못된 극장 내부에는 사사건건 그들의 

함성이 들려와서,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태가 일어났죠.



제작자로서 솔직히 화가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꼼수를 사랑하고

그들의 행위와 메세지를 지지하지만, 실제로 어떤 행사를 치루는 과정에서 

배려없음이 드러난 것은 저로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발 주말마다 공연 진행을

위해 가슴졸이지 않게 해주시길 그저 바랄 밖에요. 그만큼 나꼼수는 이제 우리시대의 문화

권력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이나 저나 적은 예산으로 극장을 빌리다 보니, 저도 이곳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고, 상충하는 문제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보다 나꼼수를 아낍니다만 다시는 이런 일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날 저녁 행사 담당자에게 사과는 받았습니다. 저도 깔끔하게 

잊으려 합니다. 미워하기엔 나꼼수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프로그램이니까요. 

그러니 여러분도 조금만 배려하고, 같은 공연을 하는 분들을 이해해주세요.



연극 서두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의 유사점을 느끼는 것이

모든 서정시의 영원한 제목이다"라는 대사입니다. 저는 이 대사가

참 좋습니다. 왜 노벨문학상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이 같다고 말을 했을까요? 저는 참 궁금합니다. 작품 속 그가 언급하는 일본의 대종사인

익규 스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에게 믿음의 본질을 묻는 한 사무라이에게 벚꽃을 보고 싶다고 벚꽃 

나무를 잘라낸듯, 그 속에 봄이 있는가? 라고 답합니다. 저는 신앙이나 사랑이나, 정치행위 모두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고, 세대별 정치를 둘러싼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날 시간이지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세상, 공정함을 향한

인간의 의지는 사뭇 아름답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급한 마음에 나무를

잘라내 그 속살을 보려는 실수를 하게 될 까 두렵습니다. 



연극 한편을 올리기도 참 쉽지 않구나란 걸 뼈져리게 배웠습니다.

작품을 해석하고 읽고, 그것을 시각화 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공연예술은 모두다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집단예술이기에, 연출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열정을 다해 무대를 만들어줄 디자이너와 의상, 조명, 무대기술 등 다양한 요소들을 통합하고 하나로

묶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빠른 결론, 빠른 성공을 바라며 함께 하는 이들의 속살을 뜯어낼 수도 

없는 일이죠. 나꼼수의 문화적 성공을 시기하는 정치집단이 있고, 언론은 하나같이 이들을 족치려고 혈안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그들의 속도에 맞서기보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봄을 기다리며 싸워야 합니다. 인간의 운명이 식물의

운명과 닮았다는 건, 꼭 사랑의 조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설령 우리들을 펜의 힘으로 

사주한 언론의 힘으로 누른다손, 이 힘이 영원히 갈수 없기 때문이겠죠. 그것은 영원성을

믿는 이들의 마음을 결코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일겁니다. 계절이 되면 나무는 자연히

그 속의 열매와 꽃을 열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이 진실이지요. 

자유와 민주를 향한 우리의 열망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느리게, 그러나 시간이 되면 반드시 맺게 되는 열매

우리는 그 시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일 겁니다. 힘을 냅시다.

그리고 나꼼수 팬들에게, 제가 제작자로서 서비스 하나 하겠습니다. 벙커원에서

음료를 드시거나 오신 분들, 영수증 가져오시면 여러분들에게 커피 한잔 값으로 연극을 볼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정치적 미감입니다. 예술을 통해 함양해야만 하는 정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