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F/W 서울패션위크가 끝났다. 새롭게 올림픽 공원에 자리를
잡고 신인과 기성, 디자이너의 벽을 허물며 자신들의 세계를 선보인 행사였다.
나로서는 이번 패션위크에 앞서 결성된 디자이너 연합회 건도 있고, 이 문제로 많은 디자이너
들을 만나 앞으로 전개될 한국 패션산업의 양상들에 더욱 착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전의 패션 위크에 비해, 더욱 풍성해진 내용으로 만난 2012년 F/W 였다.
올 2012년 F/W 를 위해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적용한
한국적 전통의 선은 돌담길의 실루엣이다. 한글과 캘리그라피, 지리산
능선들이 서로 겹치며 빚어내는 레이어드의 느낌과 같은 우리 내 산하의 자연에
주목해왔던 작가는 올해도 변함없이 우리의 것을 마음껏 변주했다.
돌담길을 걸어본 이들은 안다. 자그마한 돌의 곡선이
누적과 적층을 통해 긋는 풍경 속 선의 아름다움을. 2012 f/w
이상봉 라인은 바로 한국의 소담한 돌담길에서 훔쳐온 영감의 선들이
서로를 토닥이며 엉키고 설킨다.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 한국적인 쉬크를 찾아
오랜동안 실험과 변주를 거듭해온 디자이너의 눈에는 무엇이 걸려들었을까? 중요한 건
돌담이란 자연의 작은 소품이, 어찌보면 인위와 자연의 중간계에 위치한 우리 내
건축방식의 일부인 돌담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외진 돌담길을 걷다보면, 야트막히 풍경과 풍경을 나누는
새로운 벽의 기능을 하는 돌담의 느린 미학과 만나게 된다. 돌담은
서구의 거대한 건축물처럼 자신의 위용을 토해내거나, 한 장소의 점유권을
영원한 것으로 표상하지 않는다. 여기에 비해 돌담길은 자연이란 거대한 품 속에서
그저 내가 있는 곳과, 당신과 내가 있는 곳을, 이어주고 있게 해주는 자연의 병풍과도 같다.
돌담길은 느지막히 젖은 음성으로 그리움의 대상을 부른다. 우리가 연인이던 시절
돌담길을 일종의 제의처럼 걷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습성 때문일 거다.
검정과 회색, 네이비와 버건디, 그리고 핑크다. 이번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채우는 색채의 팔레트다. 돌담길은 계절의 변이에 따라, 조금씩
그 색조를 달리 한다. 돌담길은 결코 스스로 충족적인 세계가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고, 자연과의 일부로서, 모자이크 되는 풍광 속에 위치한다. 돌담길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잊고, 있게 하며, 잇는 기호적 세계다. 검정과 회색으로 변주된 우리의 돌담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주변색과 나무과 꽃들의 색조와 어우러질때, 견고한 길이된다.
이상봉의 2012 F/W 컬렉션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미학의 토대가 아닐까 싶다.
복식 미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리사 스코브는 아시아 국가의
패션에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답답한 전통주의'를 비난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패션은 긴장의 장(Field) 속에서 잉태한다. 아시아 패션 디자이너
들이 글로벌 문화산업 속체서 세계화와 본토화의 긴장을 조화시키면서 스스로 주체의 위치를
발견하고자 작업할 때, 대부분 강하게 느끼는 것은 긴장과 딜레마다"라고. 한류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해외에서 우리의 것을 마케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타자인 서구에게 스스로 이국적인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단 이러한 이국화(Exoticization)는 세계화의 렌즈를 통해
지속적으로, 현재의 우리와 그들을 잇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의
시각은 돌담길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이상봉의 2012 가을/겨울 컬렉션은 지금껏 그가 보여준
한국적 작업 중에서 가장 절제되어 있는 느낌의 감성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우리 스스로 전통에 대해 갖고 있는 이분법을 서구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그의 컬렉션이 참 마음에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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