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월/화요일에는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교육대학에서 열린 교사연수특강을 위해서였다.
올 해는 지방특강이 연이어있어, 3월에는 대구에도 내려가야 한다.
패션이란 렌즈를 교육의 한 담론의 일부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서울만 해도 솔직히 강의를 많이 했다. 왠만한 단체들, 미술관, 대학과 기업체들을 다니며
강의했는데, 그 흐름이 지방까지 이어져서, 옷을 통해 우리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지 없이 기쁠 것 같다. 강의 후 광주에 계시는 블로그 친구
그라시아님과 전북임실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라시아님은 천연염색
을 한다. 슬하의 자제분도 다 장성한 상태이신데, 배움을 위해
대학원에 입학, 열심히 섬유미술을 공부하고 계신다.
옥정호 호반길을 드라이브 하며, 신산한 겨울의 환 속에
짙은 갈색빛 결을 곱게 빚어가는 풍광은 내 동공과 닿으며 비로소
액자 속 그림이 된다. 액자는 외부에 있으면서, 그림이란 내부의 실체에 영향을
미친다. 섬진강 상류의 옥정호는 인공호수다. 1926년에 처음 완공된 섬진강댐으로 인해 조성된
옥정호는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 있다. 단아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주변경관으로 인해, 쉼에 대한 열망이 차오를 때면 언제든
찾아가면 좋을 그런 곳이 아닌가 싶다. 그라시아님과 함께 찾아간 곳은
바로 찻집 '하루'다. 고색창연한 청록빛 표지를 따라 가다보면
널브러진 마당 위에 두 채의 한옥이 단아하게 서 있다.
섬진강의 겨울 한기는 그 어느때보다 애인다.
전면 유리창으로 개조한 찻집의 내부에서 들여다 보이는
옥정호의 적요한 풍경도 한옥의 결이 마치 그림의 액자가 되는 터라
그 속에서 바라다 보는 호수는 그림 속 붓터치로 녹여낸 풍경화가 된다. 그래서 좋다.
섬진강의 혈맥을 막아 수몰지구를 만들고 그 위에 인간의 욕망을 댐에 담았던
그 과거의 시간 위로, 다 아물었을거라고 믿는 상처를 가진 이들도
겨울 세찬 기운에 후벼파다보면, 다시 눈물나기도 하는 곳
지난 상처의 고름들 다 껴안으며 흐르는 호수가 곱다.
그래서인지 이곳 '하루'에선 그냥 조용조용 따스한 황차의 기운이나
느끼며 마당을 산책하다 가는 이들만 눈에 띄인다. 저녁 6시 반이면 영업을 종료하는
터라 북적거림이나 수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아니 그래서 더 좋을 것 같다.
조용히 호수의 잔물결 위로 흐르는 음악 소리와 옥정호의 짙어가는 풍광이 만나는 시간
그리웠던 이들과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온 날들을 서로에게 위무하면 될 일이다.
이날 오전부터 부산하게 화순의 운주사를 거쳐 다시 담양에서
식사를 하고 늦게 출발한 터라, 사실 옥정호에 도착했을 때는 뉘엿뉘엿 해가
서산으로 진 터였다. 난 이 때의 색감을 좋아한다. 진회색빛이다. 마치 데님의 속살이
바람과 빗물을 맞아 더욱 탈색되며 선보이는 하얀 빛처럼, 사계절의 욕망을 담아 고스란히
인간의 부족함을 안아주었던 호수의 외피 위로 하얀 달빛이 흐를 것이다. 유독 올 겨울은 바람에 바주
베인다. 그만큼 내 자신의 영혼이 취약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시대가 그렇게 만든 거겠지.
햇살 좋은 날, 다시 한번 찾고 싶은 찻집이 생겼다. 그때는 이 '하루'에서 정말
나의 '하루'를 보내볼 작정이다. 그때는 바람에 베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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