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일 때문에 해외를 다니다보니, 사실 국내여행을 하면서
좋은 맛집을 찾아다니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저 처럼 혼자 움직이는
경우 맛있는 음식이 있다해도 대부분 2인용으로 세팅된 경우가 많은 서울에선
친구를 불러 대접하거나 제자들에게 밥을 사줄 때가 아니면 한정식을 찾아서 먹기가
쉽지가 않지요. 이번에 광주 교대 특강 건으로 내려갔다가 정말 남도의 제대로 된 한정식들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첫날 교수님께서 사주신 전라도 정통 한정식은
사진조차 찍을 여유가 없었네요. 순천국제정원박람회의 총감독을 맡으신
정정수 선생님이 배석하셔서 멋진 예술조경 이야기를 듣느라
음식에 대해선 제대로 정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틀째, 광주에서 염색하시는 그라시아 선생님과 함께
담양의 소쇄원에 들렀다가 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간 작은 한정식집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이름을 적고 5분 정도 기다리면 테이블을
세팅한 후 손님을 부르는데요. 정갈하게 수저세트를 세팅한 후 함께 차려진 어묵탕을 떠서
겨울 한기에 얼은 입안을 녹입니다. 계절마다 마중요리가 바뀌더라구요. 여름엔 시원한 메밀묵탕이
가을엔 또 어떤 요리가 전채로 선보일지 기대됩니다. <숲속의 무릉도원>이란 한정식집입니다. 글을 올리기 전
인터넷을 쳐보니 꽤 많은 분이 찾아서 글을 올리셨더라구요. 들나물밥 정식 하나만 파는 곳입니다.
사진 속 음식들은 본 식사가 나오기 전, 에피타이저 요리고요. 윗 사진은 고기완자를
차지게 해서 밥과 함께 빚어낸 것입니다. 제 입맛에 곧잘 맞더군요.
남도 답게 삼합이 빠질 수는 없지요.
요즘은 남도도 예전처럼 다양한 젓갈류를 내놓는
집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만큼 나트륨 소비에 대해 경각심이
커진데다, 싱겁게 먹는 트렌드다 보니 예전 어린시절, 광주에서 잠깐 살았을 때
시청 뒤편 우래옥이란 한정식집에 가면 다양한 젓갈에 조금씩 밥을 비벼먹던 그 시절의
맛을 느끼기엔 무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물이 좋은 돼지고기 수육과 농익은 전라도식 김치,
여기에 흑산도에서 잡아온 홍어를 함께 엊어 먹는 삼합은 남도 요리의 백미겠지요.
건강식으로 변모한 퓨전 음식점 답게
두부 요리와 약선 요리들이 많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싱겁게, 그러나 맛깔스러운
뒷맛의 요리들입니다.
버섯을 튀겨서 과일과 함께 탕수 스타일로 내놓았고요
콩나물과 홍합, 새우를 조합해서 매콤하게 익혀낸 찜도 좋았습니다.
싸락눈 내리는 차가운 대지, 그 위에서 다가올 시간의 희망을 두드리는 드럼같은 콩나물
과 염분섞인 바람과 햇살 맞으며 속으로 자라났을 해산물이 섞인 짭조름한 맛은 언제나 힘이 됩니다.
에피타이저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들나물 반찬과 밥이 나옵니다. 혼자 살다보니 나물 반찬을
해먹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저는 나물에 손이 자주 가더군요. 빛깔이 좋아서요.
겨울 무를 달콤하게 조려낸 조림에다 위에 보시는
두부를 갈아만든 양념장을 들밥 위에 얹어서 먹는 겁니다.
사월에 꽃들 무진장 피어나는 것은 한 겨울 폭설에 굶주려 허기진 세상에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한데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상처나고 지친 세상에
위로의 수저를 건네 주는 것이다 가족도 없고 돌아갈 집도 없는 노숙자인 저 들과 산에 손을 잡아 주고
앞에 같이 앉아 사월은 어머니처럼 맛있는 사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뒤주에서 고운 햇살같은 쌀을 퍼내 봄비로 씻고
필가 말까 한참 뜸을 들이다 김 모락모락 나는 제주의 유채와 선운사 동백과 광양의 매화를 밥그릇에
담는다 이제 막 버무려 놓은 이천의 산수유꽃과 유달산 개나리와 장복산 벚꽃 같은 맛깔스런
반찬을 올려 놓는다 천천히 다 드시고 난 후에 치악산 복사꽃과 영취산 진달래와
소백산 철쭉으로 입가심을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월을 밥상을
먹어 세상 모두 배부르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종제의 <밥상을 차리자> 전편
겨울 한기에 싱싱하게 긴장의 맛을 더하는
봄동도 좋았습니다.
광주에 내려갈 때마다 자꾸 지인들께서
제가 한정식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자주 사주시려 하는데요
솔직히 삼청동과 인사동에 자주 나가서 작가들과 전시 후, 한정식을
주로 먹으며 대접하는 저로서는 여전히 밥집을 선호합니다. 문제는 음식의 정갈함과
퀄리티가 될텐데요. 음식은 조리의 기법과 선도를 넘어 혀끝의 식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뭐 저야 맛집을 찾아다니는 블로거도 아니고, 실제로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만, 이번 광주에 특강갔다가 찾아갔던 음식점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무엇보다 비싸지도 않고 경제적인 가격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인당 만이천원인데요. 삼청동에서 점심특선
으로 먹어도 이만 칠천원 정도 나가던 걸 생각해보면
제가 보기엔 착한 가격이란 생각이 들었네요.
무엇보다 좋은 건, 식사를 마친 후 계산 하고 이층
다실로 올라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실컷 마실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원두 커피도 좋지만, 폭포와 대나무 향이 쏟아지는 담양에선
역시 국화나 매실, 구절초를 이용한 전통차가 좋지 싶네요. 예전 대학시절, 남도출신의
음식솜씨 좋은 할머니를 둔 친구 덕에 집에 놀러갈때마다 제철 나물과 손수 지으셨다는 다양한
산물을 이용해 빛깔이 좋은 음식상을 받곤 했습니다. 제자들을 만나면 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수제버거집,
웨스턴 스타일의 브런치 가게를 갑니다만 솔직히 저는 밥집이 좋네요. 며칠 전 개콘의 애정남이 한국인
들의 인사말 중 '조만간 밥이나 먹자'라는 말의 기준을 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밥을 먹는 다는 것
그저 한끼의 양식을 채우는 것이 아닌 사회적 기술과 안녕을 묻는 대표단수가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만큼 밥이란 부풀어오르는 우리들의 사랑만큼이나 사회적 연대의
기호가 되었음 합니다. 구정 전에 밥차 자원봉사를 가려 합니다. 힘드신
분들, 작은 한끼나마 고슬고슬하게 지어 대접하려고요.
'Life & Travel > 해를 등지고 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콩에 간 쇼퍼홀릭-장 폴 에벵에서 먹는 초컬릿 (0) | 2013.07.20 |
---|---|
영화 <도둑들>의 로케이션-하버 그랜드 카우룡 호텔에서 (0) | 2013.07.16 |
옥정호에서 만난 찻집 하루.....바람에 베인 상처를 껴안는 곳 (0) | 2012.01.13 |
뉴욕 지하철의 깜찍한 조형들.....어느 역에 있을까? (0) | 2011.12.22 |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만난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남자가 궁금하다 (0) | 2011.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