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갈때마다 왠만하면
미술관은 빼놓지 않고 가려고 노력합니다.
디자인 박물관을 비롯해서 가능하면 워싱턴까지 무리를
해서 갈 때는 텍스타일 뮤지엄까지 꼭 들러 눈에 넣고 오지요. 많은
관광객들이 한 차례의 유람을 위해 미술관을 들러는 반면, 사실 제겐 무거운
일종의 사명처럼, 미술관에 들러 소장품의 수준과 컬렉션의 방향,
전시의 방식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슨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관련 학위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오랜동안 미술관련 공부를 스스로
독학하면서, 복식사 분야를 특화시켜 오늘날 한국에선
패션 큐레이터 1호가 되었듯, 그 지난한 세월의 공부의 배후에는
미술사라는 도도한 흐름의 지식들이 바탕이 되어 주었지요. 내년 하반기에
복식심리학책과 디자인 연구서를 마무리 한 후, 본격적으로 보석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의 역사에 대해 도전할 생각입니다.
올 여름, 구겐하임에 갔을 때는 한국의 아티스트를 위해 전층을 다 쓰더니
이번엔 이탈리아의 미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위해 전층을 다썼더군요. 이번 전시는
특이한게 사진에서 보시듯, 모든 작품들을 매달아 놓은 탓에 꽈배기 모형의 동선을
걸으며 상세하게 하나씩 눈에 담으며 가야 했던 것이 차이랄까요.
1960년생의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한국에서도 꽤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워낙 세계적으로 풍자적인
조각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죠. 명품 브랜드 앞에 '빅엿'을 먹으라는 식으로
손가락을 치켜세운 조각을 만들거나, 혹은 낙하하는 유성을 맞고 혼절한 교황의 모습을
그려내거나 하는 식입니다. 그의 풍자는 신랄하면서도 웃음을 줍니다. 단 정치적
상황을 절대로 (작가 자신은 매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세히 곰삭여 보면
한번도 정치적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부터 정식으로 미술을 공부한 적이 없이 스스로
독학했고, 트럭 운전사인 아버지와 청소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방황도
했고, 시체 공시소에서 죽은 시체도 닦으며 별별 직업을 전전하다가 아티스트가
되었던 이 남자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유독 그의 작품을 좋아했지요.
80년대 이탈리아에서 목조가구를 만드는 일을 했던
그는 당시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에토레 소사스와 같은 이들과
알고 지내면서 디자인과 목공예,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 준비를 하게 되죠.
그는 자신의 작품 카탈로그를 직접 만들어서 갤러리에 보여주고, 이로 인해 그는 전시
공간을 얻습니다. 문제는 이 작품이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조 모양의 조각이었다는 것이죠.
더구나 타조의 머리는 화가 피카소의 모형을 하고 있었으니 독특한 느낌을 주었을 겁니다.
저는 카텔란 식의 유모어를 좋아합니다.
그가 조형을 통해 풀어가는 이야기의 어법이 참 좋습니다.
어법이란 중요합니다. 어떤 어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거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꼰데의 말투냐, 혹은 경찰관의 말투냐, 혹은 정치가의 어법이냐
이것에 따라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타인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는 방식이 달라지거든요. 롤랑 바르트는 이것을 가리켜 에크리튀르라고 했습니다.
그는 조형을 통해 각양 각색의 직업들, 혹은 사건들 속에 내재된 목소리를 다시 한번
풍자의 세계로 끌어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예전 운석 파편에
맞고 쓰러진 교황의 모습을 그려낸 탓에, 그는 로마 교황청으로 부터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신의 재판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란 단순한 진리를 그냥 풀었을 뿐입니다.
특히 유럽의 자칭 럭셔리 브랜드들을 향해
'엿' 먹으라며 손가락을 치켜올릴때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한 개인이 자칭 프랑스발 럭셔리 브랜드를 조금이라도
풍자적으로 사용하면 바로 다음날, 변호사에게 전화를 받기 일쑤입니다. 국내 화가분들
중에 이렇게 혼이 난 분들이 꽤 있죠. 입으로는 장인정신과 표현의 자유를 숭상하네
하면서도 정작 자기네 브랜드를 '소비사회의 불편한 아이콘'으로 그려내면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협박하는 것이 프랑스 브랜드들이거든요.
저는 요즘 들어 아이들에게, 혹은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혹은 강의를 가서 만나는 수많은 직장인들과 임원들에게 미술관에 가서
작품과 사물을 직접 보라고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모든 게 가상현실
로 압축되는 세상에서 인간이 놓치는 게 뭘까요? 바로 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현전의 개념입니다. '내 앞에 있음'은 그저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신과 인간의 만남이 결국은 현전으로 이뤄지듯
우리 인간이 주변의 사물과 인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이 현전을 통해서만 오롯히
이해되기 때문이지요.
현전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사물을 촉지하려는
욕망이 생길때 비로소 인간은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 관계의 틀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맥락이란 단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인데요. 우리 사회는 그 어느때보다 네트워크니 망이니 하는
구조주의 개념의 정상을 달리고 있지만, 그 내면을 제대로 알고 일상에서 건강하게 실천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공부 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눈에
담아두는 것, 그 기억을 응고시켜 곰삭혀질때까지 지연해보는 것.
이런 추억 하나쯤 제대로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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