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배터리 파크에서 만나는 뉴욕의 초 겨울

패션 큐레이터 2011. 12. 19. 03:09

 

 

뉴욕은 주요 디스트릭트로 나누어 도보나 지하철로

여행 하기에 좋습니다. 가령 미드 타운, 어퍼 웨스트, 소호지역, 첼시,

이번에 소개할 트라이베카 & 파이낸셜 디스트릭트도 한 영역 중의 하나지요.

트라이베카는 웨스트 빌리지와 경계를 이루는 카날 스트리트 아래에 펼쳐진 삼각지역을

말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월스트리트가 이어지고, 오른편에는 인기 미드인 <CSI>에서

자주 비치는 뉴욕 시청과 법원이 있는 행정 밀집 지역이 있습니다. 9.11의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그라운드 제로와 박물관, 뉴욕의 주요 교회 중 하나인 트리니티, 여자분들이

쇼핑하느라 정신줄을 놓기 일쑤인 센츄리 21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트라이베카 지역의 쉼터인 배터리 파크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전 면적은 10헥타아르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공원입니다.

예전 뉴욕의 신규 이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화포들이 놓여있던 곳이죠. 이곳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고, 아침에 산책하기엔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조형물은 독일 출신의 조각가인 프리츠 쾨니히가 만든

지구 & 영원한 불꽃이란 작품입니다. 원래는 세계 무역센터와

로어 맨하튼 지역 사이에 있다가 9.11 이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으로 이전해서 배치해놓았죠.

 

 

맨해튼의 남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지역을 배터리라고 불렀습니다.

적어도 17세기 이후부터 이곳은 유명한 산책로였습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오늘날의 근대적인 형태의 공원으로 탈바꿈 하게 되었죠.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가 흐려지는 혼선의 시간

이곳을 들러 공원을 산책합니다. 카페 1667에 들러 신산한

한 잔의 커피를 테이크 아웃했고, 입가에 스며드는 초겨울의 아련함을

느끼며 한발자욱씩 걸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지역을 돌면서 의외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평범한 월스트리트나, 시포트, 혹은 브룩클린 브리지가 아니라, 스미소니언

에서 세운 인디언 박물관이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인디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산들을 모아 놓은 곳인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하오의 무료한 햇살을 손바닥에 움켜쥐려고 한없이 하늘을

바라보면 웃는 시간, 공원에서 자유롭게 뛰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하긴 이곳도 월스트리트의 탄생과 더불어 녹지의 필요성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곳입니다. 싱그런 아이들의 표정이 좋더군요.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공원의 내부는 생각보다 한적합니다.

 

 

전쟁 기념탑과 상이용사들의 이름이 쓰여진 거대한 비석을 넘어

 

 

가슴 한 구석을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초 겨울의 풍경 속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한장.

 

 

가지런히 배열된 가로등과 대칭으로 완만히 흐르는

바닷바람이 눈가를 스칩니다.

 

 

해병대들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는 전적비를 넘어

 

 

수런 수런 구경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담고

 

 

고즈넉한 공원 한 켠의 그림자 아래 숨어

바다를 바라봅니다.

 

 

요즘은 여행을 할때 솔직히 어디를  꼭 가서 봐야지

뭘 해야지 하는 욕망들이 많이 사그러들었습니다. 이런 욕심을

부리기엔 너무나 잦은 해외출장과 여정 탓도 있겠고요. 어디를 가든 그냥

제 자신에게 새로운 호흡과 리듬을 줄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책을 꺼내 읽거나

생각에 빠져서 글자들을 끄적거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행을 할때 지나칠 정도로

많은 걸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죠. 흔히 한국스타일 관광이죠.

물론 언제올지 모르니, 이런 방식이 먹혀드는 건 이해하지만 사실 좀

안스럽습니다. 여행은 뭘 가득히 담아오는 게 아니라, 약간의

여백과 아쉬움을 함께 담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모든 걸 다 보고 정복했다라는 식의 표현보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같이 웃거나 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여행을 하다보면 지긋지긋하게 매여있는

인터넷에서 해방되어서 좋습니다. (이번 여행때 일부러 인터넷 관련 모든 기기들을 빼놓고

갔습니다) 이것 없이도 충분히 만끽하고 누리고 이야기 하며 지낼 수 있거든요.

이거 없어도 여행 충분히 하고요. 확실히 스마트폰 이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폰에만 눈을 주시한 채, 주변을

잘 보지 않는 다는 걸 배운겁니다. 그러나 그들도 알겠지요.

그 편이가 실제로는 자신을 얽매는 족쇄임을 말이에요.

 

 

돼지들은 천성 신체구조상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지 못한답니다. 그들이 하늘을 볼 수 있는 건 실수로

미끄러져서 뒤집어질 경우인데요. 힘들겠지만 그 순간 그들은

넓은 하늘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인간의 삶도 뭐 그리 달라 보이지 않더군요.

경쟁적인 블로그, 인터넷 라이프, 여행기 하나를 올려도 그냥 이런 저런

단상이 오르기 보다, 다음 포털에서 만드는 지도에 채워줄 자료나

만들어야 겨우 띄워주는 꼬락서니에 서로 족쇄를 채우니

이러나 서로 언젠가는 문을 꼭꼭 닫고 몰락하고

말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왜 그렇게 사는지

 

다음 여행때도 인터넷과는 결별하려고요.

말이 이뻐 소통이지, 맨날 트위터니 페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긴다고 혈안이 되는 세대에서, 과연 기록이란 것이

개인의 존재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글쓰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번 여행도 그랬고요. 내년 봄과 여름 런던과 이탈리아를

갈 때도 일체 인터넷 관련 장비들은 가지고 가지 않을겁니다.

대신 두터운 역사서와 파리도시 연구서 하나를 들고

꼼꼼히 지도를 찾아가며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리고 그 단상은 이제 머리 속으로만

기억하고 싶어요. 책으로나 내던지.

뭐 제 자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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