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10월의 가을날, 뉴욕에서 첫눈을 맞다-컬럼비아 대학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1. 11. 13. 10:42

 

 

뉴욕에 도착한 날이 27일 저녁입니다.

다음날, 제가 묵었던 브룩클린의 윌리엄스 버그 지역을

돌아다니며 예쁜 옷가게와 에디터샵을 살펴봤습니다. 사이폰 커피도

마시고 흠껏 들이마신 하오의 무료한 햇살과 포도위로 통통 튀어오르는 빛의

입자들이 얼굴에 부딛쳐 내는 소리가 곱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29일 아침이 되자 날씨는

급변했습니다. 오전 내내 잔잔히 비가 내리는 듯 했죠. 그래서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지인의 따님을 보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비는 싸리눈으로 변했습니다.

교정을 향해 걸어가는데, 눈발은 점점 더 굵어지고, 도서관 앞에서

오늘의 주인공 연이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연이가 누구냐면요....

예전에 올렸던 광고 디렉터 박웅현 선생님과 따님의 이야기의 주인공이지요.

알렉산더 맥퀸 전을 보러가기 전, 박웅현 대표님과 가로수길의

예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었습니다.

연이가 컬럼비아 대학의 1학년입니다.

 

용은 개천보다 콩가루집안에서 나온다-박웅현 & 박연 인터뷰

 

 

눈과 비가 섞여내리는 질퍽한 날씨를 예감했는지

많은 학생들이 레인부츠를 신고 교정을 달리더군요. 도서관 앞에서

눈을 털며 친구를 기다리는 여학생 모습이 렌즈에 포착되어 한 컷 찍었습니다.

 

 

코발트 빛 하늘에 알알이 방점을 찍는 하얀 눈이 쏟아지던

29일 하루. 붉은 와인을 흩뿌린듯한, 황토와 버건디 빛깔의 단풍잎이

떨어진 뉴욕의 거리를 상상했지만, 온통 사선으로 떨어지는 눈망울이 금새 쌓이기

시작합니다. 제설차가 나와, 캠퍼스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더군요.

 

 

미국 뉴욕 등 북동부에 때이른 눈폭풍이 내려 교통이 마비되고

200만이 넘는 가구에 전력이 끊기는 등, 큰 혼란을 빚어낸 이번 눈폭풍은

135년 전 기상 관측이 시작된 후 처음이었다고 하네요. 여기에 시속 88km의 강풍을

동반한 탓에 뉴저지와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등 3개 주와 뉴욕주 13개 카운티는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눈폭풍으로 뉴저지에만 20만 가구가 정전사태를

겪어야 했는데요. 여행 초기, 혹독한 경험하나 제대로 한 셈이지요.

 

 

처음에는 연이를 만나서 캠퍼스 밖으로 나가

예쁜 브런치를 먹으려 했는데, 눈발이 점점 심해지는데다

춥기도 하고, 학생회관 내 구내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 학교 식당, 정말 좋던데요. 무슨 부페에 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더구나 학생들은 무료이고, 학생 아이디로 게스트로 무료로 먹었습니다.

점심을 사주려고 갔는데 얻어먹고 왔습니다.    

 

 

아침을 안 먹고 간 터라, 추운날씨에 허기가 더해

와구와구, 아침흡입.......

 

 

샐러드랑 고기, 케이크, 여기에 이어서

고를 종류가 너무나 많았던 샌드위치까지 와구와구......

 

 

여행 첫주에 할로윈 데이를 끼고 있다보니

학교 내 파티며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는 것 같더군요.

아이들 모습을 보니 다시 대학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었습니다. 물론 국내에선 이런 기대를 하기가 쉽지 않죠. 하나같이 대학들이

상업자본를 확충하느라 바쁘고, 학생들이 최소한 누려할 시설조차, 민간에 넘기고 있는

웃기지도 않은 작태가 횡횡하는 요즘. 물론 컬럼비아 대학의 학비는 우리 기준으로

높지만, 그만큼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생각해보면, 이 땅의 대학학비는

받는 것 없이 쓸모없이 부풀려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밖에요.

학교 내에 커피전문점과 비빔밥 가게와 할인점이 들어서는게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이 나라가 안되길 바랍니다.

 

 

학비가 6천만원 정도 되니까, 우리보다 엄청  높긴 하지요.

하지만 학교 내에서만 생활하면 먹고 자는 데 돈이 얼마 들지 않죠.

반면 우리는 후자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높습니다. 연이를 만나 대학 1학년

생활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무슨 공부를 하는지 앞으로 어떤 분야를 특화하고 싶은지,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원래는 11월 1일 코리언 아이전 오프닝

파티에 초대하려고 갔었는데 이날 수업이 3개가 있어서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수업강도가 상당히 세니 그렇겠지요.

 

 

라틴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인류학과 미적분, 미술사, 희랍고전 읽기에

이르기까지, 컬럼비아 대학 1학년의 수업은 철저하게 인문학과 기초 과학 교육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론 고풍스런 학과 분위기를 가진 컬럼비아다 보니 이런 특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죠. 하지만 이런 소양들이 앞으로의 공부에 큰 힘이 될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국에서

최근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지만, 대부분 고전을 쉽게 풀어 '아는 척 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 을 읽는 것으로

착각하는 게 아쉬웠거든요. 미술사는 단순히 미술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속에

깃든 영혼을 인간의 시각적인 언어로 통어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을 읽는 것도, 그저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라는 식의

잘난척을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과거 속에 묻혀있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캐릭터를 공부하고, 교훈을 얻는데 있으니까요. 잊을 수 없는 박연님과의 만남.

눈이 내려 더욱 인상 속에 깊이 내려박혀버린 하루였네요. 내년에도 일명 '콩이'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는 더욱 환한 날씨였으면 좋겠습니다.

 

 

 

42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