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세계미술사란 제목의
두꺼운 교양서적을 종종 삽니다. 미술에 대한
교양을 쌓자라는 명목이지요. 실제로 서점에 나와 있는
미술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작품이 유럽 작가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만큼 이 땅에서 사람들이 지식의 체계로서 쌓는 미술사의 대부분이 유럽의 산물
이란 점을 배우게 됩니다. 유럽 중심주의가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뉴욕의 미술관 중, 미국미술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새롭게 배울 수 있는 휘트니 뮤지엄을 소개합니다.
로버트 헨리 <밴더빌트 휘트니> 1916년 캔버스에 유채
그림 속 모델이 바로 게르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입니다.
휘트니 미술관의 창립자죠. 1900년대 초반, 미국은 유럽미술에 빠져
있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보스턴 미술관 등 국공립이라 불리는
미술관들은 유럽의 올드 마스터 그룹 들의 그림을 집중 매입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컬렉션에서 인상주의를 비롯 근 현대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긴 하지요. 하지만
여기에 반기를 멋진 여자가 있습니다. 반로 밴더빌트 휘트니지요. 밴더빌트 가문의 딸로서, 당시
부유한 휘트니 가문에 21살의 나이에 시집을 갔습니다. 1900년대 파리의 몽마르트를
돌아다니며, 차오르는 예술의 감성을 견뎌내지 못하고 로딩 스튜디오와 뉴욕의
예술학생연맹에서 공예를 공부합니다. 이후 풍성한 재력을 이용,
미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매입, 오늘날 공립시설
로서의 미국 미술관 휘트니가 탄생하게 됩니다.
페데리코 카스텔런 <어둠의 조상> 1938년
캔버스에 유채, 43.3*66.4cm
페데리코 카스텔런의 그림은 몽환 속, 아니 악몽을 꾸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들여다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시각적인 문법을 차용하여
당대의 어두운 현실을 그려내고 있지요. 스페인에서 출생,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성장한 화가는
스페인 정부의 장학금으로 스페인으로 귀환, 그곳에서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초현실주의 화가 그룹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이후 스페인 군대에 강제 징집을 당하지만 가까스로 스페인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오게 됩니다. 1938년,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스페인은 프랑코 극우정권이 스페인 공화정을
해체시키려 하던 때였지요. 갖은 협박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입니다. 하여튼 이 우파란
분들은 어찌 이리도 하는 짓들이 지금 현 정권의 비호를 업고 나쁜 짓을 하는
이들과 이렇게도 닮아있는지, 어둠속에 자신을 감추고, 겨우 손만을 '
내민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건 화가의 정신적인 초상이겠네요.
폴 캐드머스 <세일러와 매춘부들> 1938년
나무 패널 위에 템페라와 유채, 85.1 * 122.9 cm
휘트니는 유독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가들, 적어도
당대에 많은 논란의 거리를 야기시킨 작가들의 작품을 매집해서 남겨둡니다.
위에서 보시는 폴 캐드머스의 작품도 그 중 하나지요. 작가는 이탈리안 바로크 시대의
화풍으로 인간을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만큼 인체해부와 인간의 신체를 재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시대였고, 정밀한 묘사로 이뤄진 화풍은 후대의 화가들에겐 일종의 전범이 되었죠. 과장된 남성성과,
그 위에 성녀 마리아의 모습으로 희롱을 벌이는 모습은 당시 미국의 내적 모순을 드러내는 일종의
은유였습니다. 잘나빠진 해병들의 조악한 민족주의와, 그 속에 숨은 도덕적인 타락의
면모들이 잘 나타나있지요. 더구나 신성을 간직한 듯 배웠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체를 빌렸으니 풍자의 도는 더욱 강했습니다.
이번 휘트니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전시는
바로 독일계 미국화가인 라이오넬 파이닝거의 작품전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선 그가 작업한 다양한 목공예 장난감들 부터, 소묘 작업,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그의 폭넓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었습니다.
1911년 뮌헨에서 결성된 <청기사 그룹>에 가입하여 입체파와 오르피즘의 영향을 받으며 그는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합니다. 마치 프리즘을 통해 빛을 분리해 낼때 그 입자들이 서로 엉키며 결정체를
만들듯, 다양한 도시의 풍경, 탑, 다리, 선박등의 구축물을 표현했지요. 직선과 교차하는
색면을 구성하는 그의 기법엔, 화면 상에 드러나는 내적인 리듬감으로 충만합니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색면과 직선으로 그려낸
여인들의 모습과 패셔너블한 여자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번에 전시하고 있는 신규 작가의 작업입니다.
코리 아칸젤이란 작가의 Pro Tools 란 제목의 전시였습니다.
말 그대로 <도구에 대한 찬미> 뭐 이런 뜻일거 같네요. 이 전시가
유독 눈에 들었던 것은 현대의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를 위해
시연하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에 보시는 작품은 포토샵 그레이디언트 데모란
작품입니다. 이미지 프로세싱 소프트웨어인 포토샵의 표준
그레이디언트 툴을 이용하여 만든 색상 사이로 보여지는
암영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 전시만 사진촬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작품 컷을 몇 개 찍어봤습니다. 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볼링 게임을 즐기는 다중 자아(2011)>과 같은 작품은 대규모의
볼링 게임을 표현하는 프로젝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각 볼링장의 모습이
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의 진화과정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군요.
제품이 진열되고 소비자들에게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몇 가지 개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한 작가였습니다.
휘트니 뮤지엄에서 다시 공연을 보러 들어간 링컨 센터
여름날의 시원한 분수 앞에서 머리도 식히고, 휘트니 미술관 내부의
서점에서 산 책을 커피 한잔 마면서 천천히 읽었습니다. 시간은 참 잘 흐르네요.
한국도 휘트니같이 자국내 화가들의 작품을 풍성한 자산을 기반으로 컬렉팅 할 수 있는
작가이자, 컬렉터가 한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미술도 결국은 시각적인 언어와
재현의 방식을 둘러싼 입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갖고 있을 때,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지요. 그런 점에서 이곳을 들를 때 마다
부럽기만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어봐야죠.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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