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을 걸었어-우중산책
오늘 신사동 가로수길에 나갔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 디렉터 박웅현 선생님과 두번째 데이트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따님까지 소개를 시켜주셨네요.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 1학년에 들어간다네요. 열 아홉의 나이에 벌써 책을 내기도 했던 '작가'님이었어요. 이야기 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저는 대화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걸 자꾸 잊게 하는 사람이 또 늘었다 싶습니다. 이 가문의 내력인가 봐요. |
가로수길에 자리한 예쁜 2층 카페 테라스엔 장마를 알리듯 톰방톰방 빗방울이 조금씩 들이쳤습니다. <인문학으로 콩갈다>란 책을 썼던데 받아서 회사로, 집으로 오는 길 다 읽어버렸습니다. 책의 부제도 재미납니다.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19년 인생 여행기" 무슨 내용이 있나 살펴보기 전에, 실제적으로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왠만한 내용은 다 들었던 거 같습니다. 사진을 찍다보니, 아버지와 딸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아빠는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 디렉터로서 전설에 가까운 광고들을 만들었고, 그 아빠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분방함, 기꺼이 기존의 질서에 얼굴을 들이밀고 '영혼의 스테레오타입'을 깨는 일을 아빠를 통해서 배워서였을까요?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장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요. 박웅현 선생님하고 지난번 춘천에서 데이트 하던 날(?) 따님하고 만나면 이야기가 잘 통할거라고 꼭 한번 보시자고 했는데요. 저야말로 정말 멋진 사람을 소개 받은 것 같아서 힘이 났습니다. |
젊은 세대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는 본의 아니게, '꼰대짓'을 하고 싶은 나쁜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때는.....불라불라"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죠. 저는 참 이런 식의 수사들이 일상의 문법을 채우고 변형시키는 것이 싫습니다. 세대론적으로 분명 경험의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결국 '수용과정'을 통해 각자 그 경험의 빛깔을 채색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배라는 이유로, 좀 나이좀 먹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빛깔로 타인의 의견에, 혹은 생각에 채색을 하려고 들죠. 삶의 전반을 지배하려 드는 웃기지도 않은 조언을 하려 합니다.
저는 적어도 이런 식의 조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 인터뷰 하면서 미술사에 대한 짙은 관심을 보였기에, 현실적인 문제들을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을 뿐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이것은 '옳바름'을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이나 책임감에 의해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 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는 것 뿐이지요. 대화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나이가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렌즈의 굴곡과 빛깔이 비슷할 따름이죠.
확실히 감성이 풍부한 아빠를 둔 덕분인지, 책의 내용에도 아빠와 나눈 대화 내용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행간을 갈무리 하는 부제목들도 참 예쁩니다. "감각-행복한 삶을 요리하는 소중한 재료" 저는 이 표현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합니다. 생의 감각이 무뎌질수록, 주변의 상처에, 환희에, 즐거움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영혼의 껍질에 각질이 생기고, 튼살이 베기 때문인데요. 이 감각이란게 다른게 아닙니다. 학원천국, 자율지옥을 외치는 이 땅의 사교육 현장에서, 특목고 입학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가는 중학교 아이들에게서, 이미 사라진 감각을 가진 인간 유기체들을 꽤 많이 발견합니다. 심각합니다. 부모와의 수다는 커녕, 대화의 시간도 없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학력검증에 자살로 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의외로 쿨하게 반응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혹은 '다 너 위해서 그런거야'라고 말이에요. |
여기에 비하면 연이는 아빠의 멘토링 아래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나침반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더군요. 참 보기 좋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곰브리치의 미술사 책을 즐겨 읽고, 존 버거의 Way of Seeing을 탐독하면서 느끼고 익힌 것들을 정리해 놓은 글을 읽어봅니다. 저 또한 미술을 좋아했고, 미술이란 기초학문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다른 각도로 보면서 배운게 많습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과연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를 읽는게 과연 유효할지, 저는 요즘 아이들의 서글픈 초상을 보면서 반문합니다. 자기개발서는 넘쳐나지만, 3일간의 위약효과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실제로 어른이 되어서도 삶의 로드맵을 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당합니다.
가족과의 여행과 수다, 즐거운 한담, 독서만이 지금의 19살 인생을 만든 건 아닐겁니다. 중요한 건 체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고, 여기에 광고 디렉터 박웅현 선생님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순 없지요. 친구들을 위해 손수 한땀한땀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 리폼하는 카메라며 랩탑이며 아이폰 케이스들을 보여줬습니다. 유니키파이 도네이션 프로젝트란 것인데요. 유니키파이(Unique-ify)란 말 그대로 유니크하게 만들다란 동사로 보시면 됩니다. 베스트 인간이 아닌 온리 원 인간을 꿈꾸며, 평범한 물건에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으로 만드는 것. 이 수익금으로 도움이 필요한 기관에 기부하는 일. 그녀가 지금 꿈꾸며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
개인적으로 저는 카메라 작업이 아주 좋더라구요. 특히 카메라 렌즈 부위에 마치 인간의 동공을 형상화 한듯 한 느낌의 그림을 그려서 더욱 실감이 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겨울방학 때 한국에 오면 같이 빈티지 가구들 하나 사서 작업을 의뢰할까 생각중이죠. 미술관에 갈 때마다 그림을 앞에 두고 베스트 5개를 골라 아빠와 딸이 점수를 매겼다고 하더군요. 참 보기 좋은 광경입니다. 제가 스위스 바젤 아트 페어에 갔을 때, 한 부스에 가족 전체가 와서 4일간 계속해서 서로 의견만 주고 받는 걸 봤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배우고, 생각을 소화하고 발화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이 모든게 가정교육에서 가능할진데, 우리는 왜 이렇게도 사교육 천국, 자율지옥, 가족은 덤 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만들며 살까요? 19살 박연과 자칭 콩가루 집안(진짜 콩가루 집안이란 게 아니고 그만큼 투명한 의사결정이 존재하는 가정이란 뜻이겠죠. 물론 박영의 표현에 따르면 엄마는 루이 14세의 권력을, 아빠는 제3신분이라지만, 제가 보기엔 이건 그냥 수사학 같습니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대화에 빠져있다 보니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더라구요. 박연(님)에게 '김홍기의 패션의 제국'의 뉴욕 특파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왔습니다. 안그래도 그에게서 듣는 알렉산더 맥퀸 전시 내용이 어찌나 '날것'처럼 들어오던지, 여전히 머리 속에 생생하네요. 뉴욕의 대형 미술관이나 전시관도 좋지만, 작은 갤러리에서 운좋게 발견하는 패션 전시나 의상관련 전시에 대해서 꼭 리포팅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왔습니다. 앞으로 블로그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겠지요?
블로그 폴더를 하나 더 많들어야 할 참인데, 제목을 뭘로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하여튼 중요한 결론은 우리시대의 '용'은 이제 개천이 아닌 콩가루 집안에서 난다라는 겁니다. 물론 맥락이 다른 것은 압니다. 개천이란 게 척박한 환경, 그만큼 물질적으로 힘들었던 무대를 배경을 뜻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지요. 시대는 변해가고, 그 과정에서 성공의 기준과 방식, 접근방법이 달라지는 요즘,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가정의 모습은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 가를 배울 수 있었던 데이트 였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멋졌던 박웅현 선생님께, 그리고 따님 박연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여튼 뉴욕에서 무조건 조우하기로 했어요.......이제 든든하네요
박연입니다......이름 외워두자고요!!!!(어제 글 쓸때 이름을 실수로 잘못 적었어요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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