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프랑스 화장품 산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패션 큐레이터 2011. 3. 20. 00:10

 

 

자크 루이 다비드 <앤 마리 루이즈 텔루송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29 x 97 cm,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 소장

 

 

오랜만에 재미있는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패션은 한 벌의 옷을 넘어선 거대한 사회적 실체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모랙 마틴이 쓴 <Selling Beauty : Cosmetics, Commerce and French Society, 1750-1830>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이르기 기간 동안 프랑스 사회가 어떻게 '소비사회'로 변모했는지, 그 궤적을 추적하며 의미를 묻는다.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의 복식사 연구는 의상학과 중심으로 매우 협소한 사관을 갖고 진화해 왔다. 시기별 복식의 종류와 의미 정도만 묻는 책이 대부분이다. 옷의 스타일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하다보니, 그들의 왜 이런 옷을 입었는지, 특정 시대의 메이크업이나 헤어 스타일이 어떤 동기로 탄생하고 명멸하게 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유형의 패션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다. 지난번 '노스페이스' 논쟁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한 사회의 지배적 패션 스타일, 특히 학교나 집단이 채택하는 것 그 배후에는 모종의 음모와 담합, 정치적 투쟁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이 자리한다. 다비드가 그린 <앤 마리 루이즈 텔루송>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자. 당장 몇년 전만 해도 그들은 머리에 백색 분을 뿌리고, 볼에는 붉은 볼터치를 하고 설화석고 같이 하얀 피부를 갖기 위해 온갖 분을 뿌렸다. 여기에 갖은 향수와 수 킬로의 무게에 달하는 옷을 입고 궁정을 거닐었다. 이런 자들이 하루 아침에 요즘 표현대로 '내츄럴한 느낌의 메이크업'으로 돌아선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모랙 마틴은 이런 풍경을 둘러싼 해석을 위해 당시 발흥하던'프랑스 화장품 산업'의 역학과 그 내부를 파해친다. 어느 시대나 특정 메이크업이 확 뜰 때, 스타일을 비판하는 그룹과 옹호하는 집단이 나뉘고 치열한 '미적 기준'을 둘러싼 싸움을 벌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화장품 회사들이 벌인 마케팅 전략은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들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윤리와 도덕, 당시의 미풍양속까지 들먹인다. 이 당시에도 화장품 회사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팔기 위해 다양한 광고와 캠페인을 시도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소비자들의 물질문화도 '문화'의 당당한 일면이다. 대중에게 쉽게 싫증을 내도록 유도하는 '언어들의 싸움' 이러한 싸움은 현대에 들어와서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띤다.

 

19세기 초 화장품 매출을 담당하던 방물장수들이 일종의 판매를 위한 스크립트를 들고 훈련시켰다는 내용은 놀랍다. 미를 둘러싼 여인들의 욕망, 그것을 자극하는 남자들이 만든 소비의 옹호논리. 패션을 연구하다보면, 패션이 단순한 한 벌의 옷을 연구하는 것이 아닌, 물질문화의 한 단면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영역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