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일본 연극을 보는 시간-현재의 삶을 긍정하라

패션 큐레이터 2010. 10. 8. 05:37

 

■ 시월愛-공연에 홀리다

 

10월은 공연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공연이 서울의 각 극장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손으로 꼽은 것만 100개가 넘습니다.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을 비롯, 연극올림픽, CID국제 무용 페스티벌까지 손에 꼽기도 힘들죠. 연극과 무용은 우리시대의 비 주류 인디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와중에 세계적 정평을 얻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즐거움이죠. 이번 달 써야 할 무용 리뷰가 10개가 넘습니다. 현대무용작품 8개와 발레 2개, 여기에 신체 퍼포먼스와 연극 2편까지 10월은 공연리뷰만 쓰다가 다 보내게 생겼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세타가야 퍼블릭 씨어터의 <트래디셔널 교겐>입니다. 제목을 풀어보니 전통 교겐이란 뜻입니다. 그럼 교겐은 뭘까요? 교겐은 노교겐(能狂言)이라고도 부르는 일본의 전통 희극(喜劇)입니다. 일본 연극에는 에도시대 민중연극에서 발원한 가부키가 있고요. 이건 모두 남자만이 출연합니다. 남자가 여성역할을 해야 하기도 하죠. 연극 노가 있고, 인형극인 분라쿠, 그리고 노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대사를 치고 받으며 관객을 웃기는 교겐이 있습니다.

 

 

흔히 전통의 현대화란 수사를 종종 사용합니다만, 전통극이나 연희양식은 인기를 얻기 힘들죠. 전통으로 이어져온 원형을 이해할 생각조차 없고 의지가 없으니 이렇지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물론 (동일하게) 어려운 상황이겠지만 한국보다는 나은 것이 사진 속 3대가 교겐의 전통을 이어가며 250년의 역사를 지키는 일부가 되고 있죠. 특히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가 바로 교겐극장 만사쿠노카이의 대표인 노무라 만사이입니다.

 

 

이번 공연은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겐 자체가 대사극인데다, 노와 달리 인물간의 성격이 부딛치고 갈등을 유발하는 측면을 갖고 있기에 그나마 현대연극의 관점에선 가장 건강하게 살아 남았나 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보시바리'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막대기에 묶여있다'라는 뜻인데요. 극을 보니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하인들이 주인집의 술을 훔쳐먹는 걸 알고선, 주인이 막대기에 팔을 묶어 놓은 것이죠. 술주정뱅이가 이런다고 술을 못먹나요? 어떻게서든 방법을 찾아내 술을 마시고 주인이 오자 달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세히 극을 들여다보면 이 하인은 한국의 전통 탈춤에 등장하는 말뚝이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양반으로 대표되는 위선의 세계를 비웃습니다. 바로 교겐에는 우리의 전통연희가 보여준 주객전도, 기존질서를 뒤집고 비웃는 민중의 웃음이 있습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위 사진에 보여지듯, 사고로 맹인이 된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맹인이 된 주인공은 산에 올라가 부처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빕니다. 결국 눈을 뜨게 되죠. 그런데 뭐 이런 웃기지도 않은 설정이 있을까요? 부처가 주인공에게 아내와 헤어지라고 안티짓을 합니다. 아내와는 억겁의 악연이라 다시 만나면 눈이 멀게 된다고 충고하는 것이죠. 이 남자. 그래도 당차게 아내를 버리라는 부처가 어디에 있냐고 대판 따져묻습니다. 결국 아내곁을 지키다가 다시 눈이 멀게 되죠. 부처는 말합니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거라고. 어차피 거센 성격의 아내와 세상과 살때, 차라리 눈이 머는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메세지를 남기지요. 다 가질 수 없으니 욕심 부리지 말고, 현재의 삶을 긍정하라는 메세지입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가 제일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었죠. 버섯이란 뜻의 쿠사비라란 제목이더군요. 일본식 정원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고 산을 깍았더니 주변에서 커다란 버섯이 계속 자라나는 겁니다. 걱정에 빠진 주인이 주술사로 보이는 법사를 불러 퇴치해보려 하지만, 용을 쓰면 쓸수록 버섯은 더욱 커지고 자라나죠. 이 세번째 에피소드가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교겐의 매력, 동적이면서도 광기의 언어들을 내뱉는 호흡, 전통연희의 색감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문을 외며 퇴마사를 자처하는 법사의 우스쾅스러운 짓들, 이를 놀리듯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법사를 비웃는 인간형상의 버섯들을 보다가 문득 '4대강' 생각이 났습니다. 결국 상생이란 것. 인간과 인간이 서로의 숲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너무나 잘 전달해주더군요. 일본 전통 교겐을 보는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습니다. 그만큼 극의 몰입도가 좋았지요. 현재의 삶을 긍정하고 상생할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우리의 천국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