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패션사진을 잘 찍는 법-스콧 슈먼의 <The Sartorialist>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8. 19. 10:00

 

S#1 패션이란 영역에서 산다는 것은

 

패션 블로그를 운영한지 10여년 째.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소장한 자료들을 모아 패션 도서관과 디자이너를 위한 워크샵 공간을 만드는 것. 내 서재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패션관련 도서라기 보다는 미술사와 관련된 책들이 더 많다. 그만큼 미술과 디자인, 패션이 하나로 접목된 방법론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아왔기에 그렇다.

 

패션 전문가란 이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좌절했다.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기대만큼 실망이 큰 곳. 유독 실망감이 깊어지는 영역이 바로 패션장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왠만한 철학자나 사회학자 못지 않은 깊이있는 패션의 글쓰기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일까?

 

언젠가는 패션저널리스트 학교나 워크샵 같은 걸 열어보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의상학과 대학원 과정에 있는 일부 패션 저널리스트 과정은 너무 원론에 가깝고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의상학과/의류학과만 비난하는 것도 무리인것이, 신문방송이나 기타 미학분과, 사회학과 철학과 같은 분야에서 패션을 '사유를 위한 '담지자'로 바라보지 않았던 탓이다. 서구의 문화이론 전문가들이 얼마나 패션 현상에 대한 글쓰기에 열을 올리는지 알고 있다면 이렇지는 않을텐데. 아쉽다.

 

패션 비평이 자리잡지 못한 사회이기에, 자칭 스타일리스트란 자들의 글만 판을 친다. 시대와 사회, 그 속에 옷을 입은 인간에 대한 사유는 거의 불능상태에 빠진지 오래다. 셀레브리티, 자칭 연예인들 옷 입혀준다는 인간의 말빨에 좌우되는 '스타일의 사회'는 우스꽝스럽고 가볍다.

 

패션에 대한 글의 수준. 과연 이것이 패션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고 물어볼 지도 모르겠다. 어느 사회나 글은 그 사회의 정신적 합의와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다. 패션이란 오브제, 혹은 산업으로 파악하건 대상에 대한 인식이 미천하다면, 그건 그 대상을 이해하는 대중 전체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된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다음 뷰를 장식하는 패션글들을 보라. 툭하면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패션 7가지" 혹은 남자가 싫어하는 여자 패션이 어떻고, 스카프를 샤방 매는 법, 줄무늬 잘 갖춰입기 등등, 나름 실전테크닉을 운운하는 싸구려 글이 판을 친다. 그러나 어쩌랴? 출판시장은 더 이상 이런 식의 글이 안 팔린다는 걸 낌새를 차렸나 보다. 더 이상 책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

 

패션과 스타일이란 잡지사 에디터들이 말하는 그 무엇이 되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작 그 스타일이란 오래가지도 못하고 한 시즌을 겨우 버텨내지도 못하니 무슨 이따위 충고를 듣자고 책을 사잔 말인지. 명품기행이 어떻고 하면서 업체에서 받은 보도자료 그대로 올려놓기 일쑤인 글들. 저작권 처리도 하지 않고 연예인 이름 빌려다 대필시켜 만드는 스타일 코디네이션 책들.(하긴 요즘 저작권 문제로 S 출판사가 전전 긍긍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그래도 아쉬울게 뭐 있겠는가. 모든 책임은 저자에게 돌리는 알흠다운(?) 관행을 뻔뻔스레 유지하는 곳이 우리나라 아니던가) 

 

이 모든 악순환을 극복하려면 솔직히 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지 오래다. 우리가 외국처럼 자신의 문화적 자산을 디지털화하고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시키지 못한 탓에, 우리는 외국의 것을 배우고 익히려면 그만큼 돈을 돈을 주고 사와야 한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 벌어서 자료를 모은지 10년째다. 이번달 빅토리안 앤 앨버트에서 나온 희귀본 보석 도록을 끝내 손에 쥐었다. 1680불을 냈다. 손이 떨리지만 할 수 없다.

 

 

한국의 출판문화가 성장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들 중에 하나는 인력 부족이 아닐까 싶다. 특히 에디터들. 에디터들의 수준이 너무 낮다. 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 저자를 리서치하고 전체적인 관리할 수 있는 출판사도 없거니와, 박봉을 자랑하는 출판업계에서 입맛에 딱 맞는 능력있는 에디터를 만난다는 건 애시당초 욕심이다. 답답함은 외국의 최상급 패션 블로그를 볼 때마다 더 깊어진다. 난 언제쯤 저들과 대등해질 수 있을까. 동일한 리그에서 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아간다. 서점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은 이런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스타일 매거진이 뽑은 세계 패션 블로그 1위, 패션 포토그라퍼 스콧 슈먼의 <사토리얼리스트>는 거리패션을 찍는 블로거의 수준이 어디까지 도달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사진 좀 찍는다는 블로거들은 한국에도 많다. 열심히 기종과 렌즈 자랑해대며, 교과서 사진을 선 보인다. 하지만 감동은 없다. 기술적인 측면은 뛰어난데 아우라가 없는 이유. 이건 사진 뿐만이 아닐거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극복해야 할 심미적 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또한 패션전문가는 아니다. 옷의 소재나 직물의 텍스쳐를 마냥 해박하게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의 거리 패션 사진은 공감을 얻는 것일까? 사람의 얼굴을 찍는게 얼마나 힘든지,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그 내면에서 솟구쳐나오는 인간의 표정을 한 번에 담아내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기에 패션이란 요소가 포함되니 더욱 일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어야 할 때와 더 나가야 할 때를 직감적으로 파악한다. 옷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를, 인상비평하듯 사진을 통해 찍어낸다는 것. 사진집을 보는 시간, 따라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면서도 자신이 없다.

 

 

스콧 슈먼은 세계적인 패션 사진가다. 그의 sartorialist.com 블로그는 전 세계의 패션의 취향을 담아내는 전시실이지 저장고다. 여기엔 시대와 장소를 아우르는 패션의 얼개가 개인의 렌즈에 녹아난다. 뉴욕과 파리, 스톡홀름, 밀라노, 도쿄 등 다양한 도시의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은 단순한 얼굴이 아닌 패션의 얼굴이자 시대의 담론과 표징이랄까. 그에게 있어 거리패션을 찍는 일은 일종의 문화적 탐색이자 인류학적 보고서를 쓰는 과정과 맞먹는다. 글도 참 잘 쓴다. 적어도 "뚱뚱한 이들은 가로 스트라이프를 피하라'는 국내 스타일리스트들의 해묵고 촌스런 충고는 늘어놓지 않는다. 한 시즌만 지나면 자기 스스로 삭제하고 싶은 글을 쓰는 패션 블로거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 스콧 슈먼의 글과 사진을 보면 좀 찔리지 않을까 싶다. 하긴 이게 무슨 문제겠냐 만은. 오늘도 다음뷰는 열심히 선정적인 낚시질 제목의 패션 글들을 뽑아 올려주지 않는가 말이다. 하긴 나도 할말이 없다. 며칠전 사람숫자를 늘이려고 '청담동 며느리룩' 운운했더니 사람들이 들끓었다. 누굴 탓하랴. 수요가 있으니 글을 쓰는 거지. 그게 우리의 수준인거고. 다시 한번 좌절한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면서 항상 유념했다. 모든 패션은 거리에서 나온다는 그녀의 말을. 거리는 단순히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아놓는 전시장이 아니다. 하위문화와 고급문화라 지칭되는 웃기지도 않는 이분법의 세계가 용해되는 무대다.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문화의 장터다. 저자는 <사토리얼리스트>를 가리켜 자기만의 새성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진부한 정의지만, 이 클리셰 앞에서 입을 열수가 없다. 너무나 성취하기 어려운 말이 되는 세상이 되고 있기에 그렇다.

 

 

자기만의 스타일이란 게 뭘까? 우리사회는 여기에 대한 규정이 없다. 루이비통 백과 샤넬 수트는 알아도 너의 색깔은 뭔지, 그 색깔이란게 자칭 연예인 옷 입혀주는 아이들이 나와서 거들먹거리는 올해의 유행색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의 빛깔이 뭔지를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칭 스타일리스트란 작자들의 글을 싫어하는 이유는 교과서적인 그들의 충고가 의외로 안먹혀든다는 점이다. 뚱뚱해도 스트라이프가 어울리는 녀석이 있고, 시각적 환영의 법칙을 벗어나는 체형과 신체의 아우라를 가진 인간들이 부지기수란점. 스타일은 철저히 일대일 대응의 관계이지, 뭉퉁그려 설명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네 자신을 알라"고 이 말이 얼마나 어렵나. 나 스스로 곰삭인 시간의 사유를 갖지 못한 인간일수록 타인의 말에 홀리고 끌린다. 연예인을 왜 따라하나? 우리 각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것을. 그러니 작가는 말해주는 것 같다. 4년간 쉬지 않고 올린 거리패션의 사진을 통해.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 부터 배우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 책을 받아들인다.

 

 

패션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엄정한 규정과 엄격함을 안아내는 따스한 상상력의 결합이 아닐까. 그 생의 연금술은 바로 거리에서 나온다. 스콧 슈먼의 사진에 실린 세계의 거리패션을 보다 보면 자칭 '한국여자들이 옷을 잘입는다'는 근거없는 몽환들이 다소 깨지지 않을까? 맨날 옷을 잘 입는다는데 정작 매장에 가보면 한 시즌에 팔리는 디자인 종류는 딱 세 가지. 이 글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그래도 패션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는 이야기일터. 찔릴것이다. 속이.......패션 피플이라 불리는 자들, 그들의 인문학적 상상력의 부재를 굳이 비판해봐야 뭐하겠나 싶다. 상상력을 받쳐줄 지혜와 통찰, 고전에 대한 사랑이 없으니, 맨날 '어머....언니 잇백이 새로 나왔어요"나 텔레비전에서 떠들 수 밖에. 불쌍할 정도로 척박한 인문학의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스콧 슈먼의 사진 속에서 발견하는 몇 가지의 패션 코드가 있다. 뚱뚱해도 옷을 통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조화만이 다가 아니라는 점. 이질적인 것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매력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틀을 깨뜨리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이건 연예인 코디네이터가 말해서 아는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깨달음에 도달하는데 꼭 패션 블로거나 스타일리스트들이 떠들어대는 색채이론이나 어줍짢은 스타일론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철저한 긍정과 약간의 뻔뻔함'이란 점.

 

 

오래전부터 그의 블로그를 볼 때마다, 나 또한 거리패션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시도도 했었다. 그런데 어쩌랴. 어쩜 그리도 한국은 모범생의 나라처럼 한 스타일이 시즌을 독재하는 나라도 드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우리는 '내 멋대로 입는 사회'가 될까. 그리고 '내 멋대로'의 패션에서 그 혹은 그녀의 본질을 발견하게 될까.......속히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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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제공 도서출판 윌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