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10. 9. 1. 09:30

 

S#1 뉴욕에 당신의 쇼핑몰을 차려라

 

 메리 갤할의 <Fashion Designer's Survival Guide>의 마무리 번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패션 디자인 업계의 생리와 경영 전반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야 번역이 가능할 정도로 참신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패션 경영 부문에서 5년 넘게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이기도 하죠.

 

패션계의 고유명사와 인명을 정리하고 주석을 다는 작업이 고되지만 매력이 충분한 책입니다. 이 책이 나온 건 5년 전 동일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신인 디자이너들을 발굴, 육성하는 젠 아트의 경영컨설턴트였던 메릴 갤할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한국에 꼭 출간되기를 소망했을 정도로 내용이 좋습니다. 생생한 현업 디자이너들의 고충과 조언,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끌렸죠.

 

2년 전 번역을 했다가 증보판이 나오면서 새롭게 번역했습니다. 저는 번역할 책을 고를 때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특히 경영관련 책들은요. 학생들과 더불어 현업 종사자들, 3-7년차 경력자에게도 힘이 되는 실전 경험을 담을 것. 현업의 생리를 잘 포착된 내용으로 구성될 것. 무엇보다 디자이너들에게 경영의 본질과 개념을 생생하게 심어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왜 이 일을 하려는지' 자문하는 이들에게 답이 될 책을 고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직업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지 못하는 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남기란, 특정 분야에서의 생존방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이 책을 번역하면서 떠오른 생각입니다. 저는 학부와 대학원까지 모두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창업은 어려운 화두입니다. 컨설턴트로 타인의 사업구조와 방식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지만, 정작 저 혼자 처리하라고 하면 이건 다른 문제거든요. 대학원 과정에 <벤처창업론>수업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판에 박은 듯한 수업을 들으며 사실 큰 도움을 못 받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원론은 창업 시에 부딪치는 작은 세부내용들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죠. 경영학 전반의 과정을 '창업'이란 관점에서 단계별로 되집어가보는 장점은 있지만 결국 현실에서 힘든 건, 디테일의 부재 때문입니다. 대학교수들은 상아탑에 갖혀 있다보니, 현실을 너무 모르고, 현업에 있는 이들은 현실에는 익숙하지만, 생생한 경험의 이론화 과정이 부재합니다. 두 집단 간의 인식의 차는 상당합니다. 현업 종사자들은 매일 매일 돈 문제로, 처리할 계약서와 입장 때문에 이런 일상의 경험을 이론화하는 일에 빠질 여유가 없습니다. 또 한편 대학의 학자들은 현실에는 눈감으며 통론만 내세우죠. 이 통론이란 것도 현실이 반영되면서 역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한국사회는 이런 부분을 잘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S#2 본전생각 드는 책

 

우리는 조직에 들어가서, 내가 윗 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에게 잘 해야지. 혹은 군대에서 내가 고참이 되면 신참들에게 잘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처럼 몸이 따르지 않죠. 내가 고생하며 배운 거. 굳이 왜 아래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며 '시행착오'를 줄여줘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죠. 한국 기업의 업무인수인계 작업이 원할치 않는 것도 이런 이유고요. 바로 본전생각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지식경영이 자리잡기 어렵습니다. 실험만 하다 끝났죠. 이 책은 제게 시종일관 '본전생각'을 들게 한 책입니다. 바이어 생활하면서 힘겹게 배운 것들, 어떻게 조목 조목 저자가 정리해서 책에 써놨는지 얄밉기도 했습니다.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주는 조언과 더불어 실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영기술과 전략을 잘 정리해 놨습니다. 무엇보다도 '태도'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관점에 대해, 입장에 대해 잘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어차피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해외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시대입니다. 제 제자들은 아예 외국 기업 본사에서 인턴을 하더군요. 이런 경향은 증가추세죠.

 

미국 의류시장과 부자재 시장, 원단공장을 마구 잡이로 돌아다니며 직물을 구매하고 내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느낌까지 받게 합니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장인 다이언 폰 퍼스텐버그의 추천사가 공증하듯, 그 내용은 패션회사 창업을 비롯, 실전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현지 정보와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보람찬 번역과정이었습니다. 주석을 많이 달면 달수록 힘들지만, 독자들은 더욱 명징하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에. 밤 새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이제 곧 나오겠죠.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번역자는 반역자란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하여튼 올해가 가기 전, 좋은 책 하나 번역하게 되어 기쁘고, 패션계에 입문한 이들, 상당한 경력을 쌓고 독립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힘이 될 만한 책을 번역하게 되어 뿌듯합니다.......

 

저 칭찬해 주실거죠? <불멸의 보석 컬렉터들>도 곧 마무리 합니다. 이제 달려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