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청계천엔 물고기가 산다-그들만의 물고기가

패션 큐레이터 2010. 5. 24. 12:09

       

          

이정록_Aquarium_캔버스에 디지털 인화_82×100cm_2003

S#1 이 비는 어디로 흘러갈까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고요한 아침, 거리는 조곤조곤 내리는 비의 멍울로 빛난다. 밤새 내린 진회색 빛 포도 위, 균열된 틈새를 매우는 비의 운동성은 놀랍다. 이 비는 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물은 점으로 존재한다. 고요함 속에 내재된 가능태로 존재한다. 어느 순간 물줄기를 이루고 대하를 향해 흘러간다. 자연은 흐름으로서 가능성의 꿈을 잉태한다. 그 꿈을 막는자, 물줄기를 막으면 될 일이다.

 

서울시가 청계천에 물고기를 인위적으로 방류하고서 생태하천으로 복원됐다고 거짓 홍보를 해왔음이 밝혀졌다.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한강이 아닌 다른 수계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방류해놓고 '물고기가 돌아왔다'며 홍보를 했단다. 참 신기하다. 물줄기를 막아 이 나라를 거대한 수족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섬진강에서 사는 갈겨니가 자연적으로 서식할 방법이 없는 청계천이란 수족관으로 흘러들어왔을까? 선거철이 다가오니 별의 별 거짓말이 판을 친다. 그래놓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물고기를 풀어넣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어쩌랴? 민물고기 판매업자가 서울시에서 5백여마리를 사갔음을 밝혔으니 말이다. 기자의 질문에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자들.

 

 

이정록_Aquarium_캔버스에 디지털 인화_90×90cm_2003

 

작가 이정록의 작업은 현대적 삶의 조건, 거짓으로 가득한 삶의 이면을 바라보는 도구로 수족관을 사용한다. 그가 우연히 찾아갔던 휴스턴의 거대한 아쿠아리움을 보고 느낀 감상은 한 마디로 '인간에 의한 기만의 인공바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작가의 말처럼 아쿠아리움은 후기 산업사회에서 주요한 엔터테인먼트의 양식이다. 인간이 바다를 지배하고 있음을 공표하기 위한 기호적 도구인 셈이다.

 

 

이정록_Aquarium_캔버스에 디지털 인화_82×100cm_2003

 

“아쿠아리움"은 현대사회의 내밀한 속살에 담긴 불편한 이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리벽으로 가로막힌 자유의 물길. 한정된 공간 속을 유영하며 보는이들의 오락거리로 전락하고 만 물고기들. 작가의 심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명박 정권은 금융기관을 제멋대로 조정하고 실제 서민들의 삶을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빠뜨렸다. 중간평가의 시간, 우리 속에 있는 '북에 대한 증오'의 잔여물을 모아 더러운 감정의 덩어리로 빚으려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말끝마다 서울을 디자인하겠다고 했지만, 서울의 상징 해치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어디 이뿐인가? 청계천 사업과 관련된 부산물들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삽질 공화국'의 외연만을 넓혔다. 이제 그가 할 짓이라곤 거대한 서울의 수족관 청계천에 물고기를 풀고, 수질이 좋아졌다고 거짓말을 하는 수 밖에. 청계천엔 물고기가 산다. 그들이 풀어놓은 판타지 속 물고기가.

 

 

이정록_Aquarium_캔버스에 디지털 인화_90×90cm_2003

 

복지혜택을 박탈당하고 하루하루를 카드에 의존하며 빚을 돌려막기 위해 허덕이는 우리들의 풍경. 작가는 수족관 속 어군들의 움직임에서 현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을 찾아내 징후적으로 읽어낸다. 자연을 거세하고 인공의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이 어떻게 될까? 성서에는 언어를 혼란시켜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하여 땅에 흘뿌렸다'고 설명한다. 바로 지금 이 메세지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벨탑을 막는 자와, 이를 기필코 완성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힘은 서로 부딪치고 소통하지 못한다. 지속가능한 생태의 꿈은 거짓으로 만든 위장의 환타지에 속지 않는다.

 

 

이정록_Aquarium_아크릴, 루어, 낚시용미끼, 금붕어_60×60cm_2003

 

작가가 말한 “우리 모두가 낚시 바늘 한 두개쯤 목에 박고서 탁하고 좁은 수족관에 갇혀서 무언가의 희생물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 그 자체다. 낚시용 미끼에 걸려들어가는 우리들. 정권을 홍보하는 언론의 낚시에 매일 매일 물려 죽음을 향해 가는 소비자들의 모습이다. 작가는 루어낚시용 미끼를 통해, 신용카드를 비롯한 경제적 삶의 이중성을 표현하려 했다지만, 신용카드 이외에도 우리에게 낚시질을 하는 건 수도 없이 많다. 행정가의 거짓말도 미끼의 일종이다. 청계천에 방류한 물고기는, 기만의 오브제일 뿐. 자유를 향해 유영하는 인간의 삶을 말하지않는다. 오세훈 시장은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것인가? 인위적 디자인 전략으로  서울의 삶을 망쳐놓는 당신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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