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제갈성렬의 엉터리 해설-"재갈 물려야"

패션 큐레이터 2010. 2. 24. 18:23

 

 

 그레이엄 맥너미의 초상

 

S#1 스포츠 해설의 역사-언제부터 샤우팅을 좋아했을까

 

SBS 스피드 스케이트 해설 위원인 제갈 성렬의 '엉터리 해설'로 온라인이 뜨겁다. 스피드 스케이드 1000미터 결선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주님의 허락하셔서 금메달을 땄다'란 발언으로 종교 편향 시비를 빚더니, 스포츠에 일반적인  아마추어들이 봐도 한번에 알 수 있는 실격 사유를 계속 설명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는 이유다.

 

SBS 단독 중계로 이뤄지는 방송이다 보니, 사실 소비자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방송국이 선택한 전문위원의 해설에 짧은 지식을 동원해 경기를 봐야 한다. 오늘 제갈성렬 해설위원이 보여준 행동은 거의 작태에 가까왔다. 샤우팅 해설로 인기를 모을때도, 해설가로서 가질 수 있는 개인적 특성이라고 믿었다. 스포츠 캐스팅의 역사를 봐도 어디든 독설가도 있었고, 샤우팅을 하는 해설가도 있었다.

 

물론 그가 기뻐하는 마음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빙상해설가로서 오랜동안 비인기종목에 머물던 스피드 스케이트 분과가 좋은 성과를 냈으니, 그로서는 목청이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거다. 샤우팅을 해도 좋고 '하나 두울 하나 두울 하는 연습 구호를 늘어놓아도 좋다.

 

아쉬운 것은 전문 해설가로서 면모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비인기 종목이었기에 더더욱 경기의 룰이나 훈련방식, 선수 각자의 프로필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인터넷 공간 조차 자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 소비자들, 시청자들은 해설위원이 면밀히 준비한 데이터나 분석자료, 무엇보다 현업경험을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정보의 가치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의 해설에서 우리가 들었던 것은 그저 "예 예 잘하고 있어요" "하나 두울 하나 두울" 이도 모자라 네덜란드의 경쟁 선수가 뒤지는 걸 보며 '메롱이에요'란 조롱외에는 없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왜 공중파 방송에서 설파하는가? 본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온 말이라고 했다지만, 신중했어야 했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올림픽 경기장 내이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귀추를 주목하는 것은 일반 시청자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에 소속된 이들이 아니란 말이다. 지난 한국 월드컵때, 본선 4강에 진출한 한국에 얼마나 국민들은 뜨거운 열기에 사로잡혔나? 일부 대형교회에선 교회를 개방, 대형화면으로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전을 펼쳤다. 이곳에서 해설을 했다면 언사가 용서될 수 있겠지만, 이번엔 적어도 아니다.

 

스포츠 캐스팅의 역사는 라디오에서 출발한다. 미국 내 스포츠 캐스터의 면면을 보면 그레이엄 맥너미나 테드 휴징, 토미 쿠원 같은 사람들이 한 세대의 인기를 독차지 햇다. 이들은 공중파를 이용, 스포츠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해석의 영역'을 제공했다. 물론 그 특징은 하나같이 '과장'하는 데 있다. 특히 야구 해설가 그레이엄 맥너미는 항상 흥분한 나머지, 해설자로서 정확성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더 재미있는 건 이런 점에 대해 한번도 시청자들을 상대로 사과해 본적은 없다는 거다. 어린시절 부터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해설가로 삶을 전향한 탓일까? 그의 목소리는 항상 높았다.

 

 그레이엄 맥너미는 세계 최초의 샤우팅 해설가로 볼 수 있다. 각 방송국들은 애청자들의 시선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강렬한 음향효과와 상상력 뛰어난 언어를 차용, 스포츠 현장의 분위기를 재 창조하는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스포츠 캐스터의 역할도 커졌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도 미식축구 아나운서로 입문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 게임당 해설 비용으로 5달러를 받던 시절이다. 1940년대 초반부터 텔레비전이 미국 전역에 퍼지면서, 스포츠 방송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분과로 성장한다. 대부분의 프라임타임용 방송 컨텐츠는 스포츠였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스포츠 방송은 라디오 방송의 문법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이들은 방송을 전하는 대사가 된 것이다. 1950년대 중반 시카고 컵스의 야구 중계를 도맡았던 버트 윌슨은 특히나 마초적이고, 사람들의 청각을 좌지우지하는 강렬한 표현과 목소리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S#2 스포츠 해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뭐?

 

1970년대 드디어 전담 해설가가 등장한다. 이전에는 대부분 라디오 방송국에 소속된 터라, 방송국이 원하는 방식을 따라,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부터는 게임 당 해설원칙에 따라, 계약을 하고 충분한 돈도 받게 된다. 해설가 그룹이 전문집단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온 것이다. 미국 NFL 해설을 이끌었던 알리지(Arledge)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스포츠 해설은 주관과 객관의 교묘한 줄타기가 이뤄지는 무대다. 스포츠의 특성상,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경쟁의 강온을 알려야 하고, 중계해야 하는 만큼, 개인적인 감정이 섞이지 않을 수는 없다.

 

전문해설위원이 설명하는 각 선수의 프로필과 최근 현황, 정신적 상태등, 해설위원이기에 선수들에게 접근할 수 있고, 얻어낼 수 있는 소중한 정보들을 시청자는 기대한다. 어디 이뿐이겠나? 스포츠 역사 속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며, 올림픽 중계상황에서 맞닥드린 현실과 비슷한 과거의 사례도 있을거고 말이다. 스포츠란 경쟁을 통한 '인간의 놀이'를 말로 풀어내는 직업이기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 이들은 적어도 해설위원이란 이들에게 그런 정도를 기대하는게 아닌가 말이다.

 

스포츠 해설은 일종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정 스포츠 종목에 까막눈인 이들에게, 훌륭한 해설은 게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심리적인 저항선도 낮춰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스포츠 캐스터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주길 바람한다. 정말이지 오늘 제갈성렬씨의 해설은 그의 표현대로 '메롱'이었다. 정신차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