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붓다를 로봇으로 만드는 사회

패션 큐레이터 2010. 3. 26. 06:00

 

 

왕지원_Buddha Z (7+6)

우레탄, 메탈, 기계장치, 전자장치(CPU board, motor)_230×40×20cm

 

S#1 봉은사 사태-조계종의 폐쇄적 시스템을 돌아보며

 

연일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 개입된 봉은사 외압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 사건의 두 핵심인물은 '묵언수행'이란 말도 안되는 형태의 방어를 하고 있고, 봉은사 신도회는 조계종 종단 최고 의결위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종단 내의 내홍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방송에선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이번 사건의 핵심은 안상수 의원의 '같잖은 혀'와 재정확충을 위해 '슬그머니 눈을 감은' 교조화된 종단의 태도에 있다. 조계종은 봉은사 직영 안건이 종회에서 결정되었기에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는다고 강변한다. 이들은 절차적 정당성이 종헌이 추구하는 기본적 이념을 이탈, 결정될 경우 위헌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종회가 100%찬성으로 가결할지라도, 종헌의 기본이념을 배제하고 위반할 경우, 그 효력이 상실된다는 점 말이다. 지금의 조계종 종단은 붓다를 로봇처럼 조작하려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작가 왕지원의 작품 '붓다'를 오늘 글의 서두에 올린 이유다. 봉은사를 로봇신도로 가득찬 무대로 만들려는 작태를 버려라.

 

조계종의 주장대로라면, 2차세계 대전시 나치 정부의 '유대인 학살과 재산몰수'관련 법은 최고의사결정기구를 통해 이뤄진 것이니, 합치가 된다. 역사는 이 법안이 위헌임을 밝히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묻기 전 종헌의 기본이념, 4부대중이 함께 이루는 불국의 세계를 위한 결정인지 살펴야 한다. 승가의 의미는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를 포함한 4부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들을 4부 대중이라 한다. 불국을 이루기 위한 모든 의사결정에는 이 4 세력의 목소리가 균질하게 투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의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조직형태다.

 

문제는 조계종의 승가는 비구와 비구니에 한정될 뿐, 재가자는 '신도'로서 승가에 포함되지 못한다. 종회가 모든 스님과 신도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운영체라고 말하면서 신도는 의사결정권한이 없다. 매우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시스템이다. 중앙종회가 총무원을 견제하는 입법기관이라는 가사를 입고 있으되, 실제 구성요원들이 총무원 당직자 다수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사회의 임원 상당수가 기업 총수의 2중대로 구성된 것과 다를바 없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절차적 정당성은 우스운 꼴 밖엔 되지 못한다. 불국건설을 목표로 조직된 결사체라면, 그들 4부대중의 모든 목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구체제의 삼부회에 시민세력을 포함시키는 문제로 프랑스 혁명이 촉발되었듯 말이다. 청정도량으로 겨우 태어난 3년차의 봉은사를, 다시 한번 진흙탕으로 던지는 것은, 한나라당의 분열정책과 불투명한 재정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구 체제의 '가사입은 도둑'이다. 섬기는 대중없이, 사부는 존재할 수 없다. 믿음의 수평관계를 지리멸렬로 이끄는 사부들에게 '신도회'가 경고한다

 

S#2 봉은사, 우리시대의 베스트 프랙티스

 

왕지원_Kwanon_Z

우레탄, 금속기계장치, CPU보드, 모터_2010

 

나는 경영자로서, 기업의 다양한 면모들을 연구해왔다. 기업조직은 기업 내부의 종업원들과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이 열린 체계로 만나는 공간이다. 그들은 회사의 실적과 재정상태, 성취수준을 회계란 기업언어를 통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한다. 외부 관계자들은 그 정보의 정당성을 믿고 해당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투자하고 물건을 구매하고, 지지한다.

 

이 관점을 현대 한국불교에 들이댈 경우, 조계종은 꽤나 창피한 수준의 답변을 내놔야 한다. 사찰의 재정투명성은 항상 불투명 그 자체였던 90년대 초반, 94년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사찰과 종단을 만들려는 불교개혁운동이 일어난다. 이때 재정을 비롯한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설파했던 분이 바로 명진스님이다. 종법에 사찰운영위원회를 두어 신도들을 운영주체로 포함시킨 것이다. 드디어 4부 대중이 사찰관리, 경영의 주체가 된다. 재정은 더욱 투명해졌고 늘어났다. 수평적 의사는 신속함과 풍성함을 불러일으킨다. 신도들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어 있기에 자발성은 더욱 커진다.

 

기존 불교의 병폐를 탈신하여, 건강한 조직을 이뤄낸 셈이다. 진정한 베스트 프랙티스, 최고의 경영사례다. 이런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조직의 문제는 경영에서도 가장 힘겨운 화두다. 정치의 문제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조직정치학(Organizational Politics)이 뭐 별것이던가? 이전의 사찰경영과 재정을 불투명하게 챙기던 자들이 '앓는 소리'를 내는 거다. 구체제의 반작용은 거세다. 개혁운동이 쉽지 않은 이유다. 구체제의 달콤함에 젖은 자들은 항상 '시기상조'란 표현과 '점진적 변화'를 말한다. 이 말은 아쉽게도 아예 개혁을 하지 말자는 말과 동의어다. 미술 작품 속 관음의 손은, 구제와 봉사, 포교 등 다양한 목적과 보살핌을 위한 손이건만 정치꾼들의 손은 은밀하게 탁자 아래로만 흐른다. 그래놓고 자신들은 '절차적 정당성을 지켰다'고 부르댄다. 방송과 언론,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를 철저하게 불교계 내부의 문제로 프레임을 짜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정두언의 '사석발언' 또한 이러한 맥락위에서 해석될 듯. 이번 사태를 몰고온 총무원장과 안상수 의원은 책임지고 불교계 내부의 소리를 듣고 행동해야 한다. 한 마디로 은퇴하고 나가면 된다.

 

S#3 봉은사 사부대중들의 현명한 싸움을 기대하며

 

봉은사 사태는 구체제 세력과 국가보조금을 무기로 '거래'를 하려한 정치세력이 빚어낸 것이다. 봉은사 직영체계건을 합법이라 말하는 원로세력은, 불사개혁 이전의 기득권을 맛보던 분들이 아니던가? 조계종은 봉은사 직영문제를 강남권과 강북권의 포교를 위한 교두보와 연결시킨다. 단 봉은사와 함께 해온 신도들의 자기 결정권은 어디에도 없다. 과거의 때를 벗고, 포교를 위한 전략적 도량으로 성장하는 봉은사를, 흔드는 이유치곤  비(非) 전략적이다. 무슨 뜻이냐고? 포교의 로드맵을 보여달라고 먼저 묻고 싶다. 포교의 몫 또한 봉은사 4부 대중이 아니던가 그 중 신도의 몫이 얼마나 클 것인가? 이들의 헌신없는 포교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조계종 총무원장은 집권 정당에게 '템플스테이' 비용을 국고로 얻기 위해 같잖지도 않은 '밀통'을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뒤집어보면 템플스테이의 실제 운용도 사찰 내 신도협의회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포교는 철저하게 사부와 대중이 머리를 합하고, 헌신할 때 결과를 이룬다. 조계종이 진정으로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포교의 집결지로 '봉은사'를 생각했다면, 오늘과 같은 결정은 불가능하다. 템플 스테이 비용을 국고로 충당받는 게 그리도 중요했던가? 템플스테이 없이도 포교할 수 있는 수천 수만의 '살아있는 대중'이 있는 것을 잊었던가? 신도들의 마음에 이다지도 상처를 입히고도 '절차적 정당성을 운운하는 자 누구인가? 뻔뻔스럽다. 조계종은 속히 답해야 할 것이다. 불교내부의 정치꾼을 돕는 집권 정치세력의 실체 또한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