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연극 '엄마를 부탁해'

패션 큐레이터 2010. 3. 14. 06:00

 

S#1 시대가 수상해-요즘 연극계가 이상해

 

연극 <엄마를 부탁해>를 봤다. 이번에도 정극이다. 놀랍다. 어느 연극제작자가 말하더라. 뮤지컬이 타워펠리스를 짓는 동안, 연극은 겨울 언저리 들판에서 찟어진 비닐 하우스를 짓고 있다고. 그런데 요즘 한국 연극계엔 정극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뮤지컬이 대세인 시대, 정극은 숨쉴 여유가 없었다. 자본의 속도를 충실히 재현하는 뮤지컬은, 그렇게 살아남았고, 느림과 여백, 관객과의 친밀한 연합을 꿈꾸는 정극은 한없이 지체되고 있었다.

 

뮤지컬이 바벨탑을 쌓는 이유에 대해 도덕적인 단죄를 내릴 자격이 없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건 필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의 과정 중에 생겨나는 필연 중 하나가 '속도전'이다. 뮤지컬은 우리 안의 '빨리 빨리' 노이로제가 만든 문화적 산물이다. 뮤지컬은 사람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뮤지컬은 노래와 육체가 버무려진 공간을 만든다. 반면 정극은 말에 의한 사유와 고통, 그 과정 속에서 떠도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한다.

 

속도전의 산물인 뮤지컬 대신, 느림의 말을 선택했다면 여기엔 중차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는게 아닐까? 그만큼 삶이 자본의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서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장기지속되는 경제불황과 이로 인한 심리적 상흔을 견뎌내기 위해, 다시 사람들은 느림 속, 언어의 부활을, 사유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연극으로 올려졌을 때, 처음 받았던 인상은 그저 '소설이 좀 되니까 살짝 숟가락 하나 얹는가 보다'였다. 소설 텍스트를 연극으로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있다. 바로 각색이고 공간의 재배치인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잘 효과있게 설계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무대기술적인 측면만 생각했지 싶다.

 

연극을 보는 동안 내내 울었다. 억지스레 쥐어짜는 눈물이 아니다. 극 중 작가인 장녀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었고, 그녀의 엄마는 나의 엄마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부인할 수 없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 속에서 가족사에 담긴 상처의 무늬가 하나씩 수면위로 떠오른다. 극 중 장남의 모습은 우리시대, 큰 아들의 초상화를 그대로 복제하고, 말없고 가정엔 도통 관심이 없는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하의 전형적인 아버지다. 그렇다. 신경숙의 <엄마는 부탁해>는 철저하게 보편성에 근거한 경험들이 무대위를 떠돈다 일종의 유령처럼, 그렇게 관객을 사로잡고 그 마음을 파고 들어가 눈물의 씨앗을 뿌린다.  힘들고 버거운 외부상황들이 연속될 때, 가족담론만큼, 유효한 것은 없다. 가족간의 유대, 그 속에서 성원간의 감정의 끈을 연결하는 엄마의 역할은 여전히 커진다.

 

S#2 엄마는 항상 엄마인 줄 알았어

 

팔순이신 엄마가 떠올랐다. 페미니스트들은 모성(Mothering)이란 가부장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말한다. 여성을 통치하고 지배하기 위해 조형해낸 생각의 체계일 뿐이라고.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연극 <엄마를 부탁해>에서 재현된 엄마의 모습은 농업사회의 모성성일 뿐이다. 헬리콥터 맘이란 애칭을 달고 다니는 이 시대의 엄마들에게 '모성'은 일종의 광기이자 독약같은 힘을 발휘한다. 이중의 얼굴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원 불가능한 '모성'이란 공약수는 여전히 남는다.

 

 

나는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마흔을 훌쩍 넘어 임신한 터라, 3명의 자녀가 있었던 엄마는 의사에게 '건강상의 이유로' 유산을 권고 받았다. 하지만 엄마는 고집을 피웠고 내가 태어났다. 후유증에 시달린 엄마는 지금도 더운 여름날 머리에 찬 바람이 들어온다며 모자를 쓰신다. 예전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도 나 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어?"라고 그러고 보니 연극 중 대사와 똑같은 질문을 한거다. 언제부터가 아니라 항상 그랬던 거 같다. 엄마는 항상 엄마였기에, 당신의 삶이 궁금하지도, 과연 유년시절이 있었는지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에게 들었던 당신의 어린 세월은 고작해야 중학교 정도의 기억이 전부였던 거 같다. 엄마는 중학교 3학년 당시, 장질부사(엄마는 장티푸스를 꼭 이렇게 발음하셨다)에 걸려 거의 죽을뻔 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었던 적이 없었던걸 기억해냈다. 그렇다. 엄마는 항상 엄마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어머니 병원 생활 하면서 어머니 빨래 내 손으로 하면서 칠순 어머니의 팬티, 분홍 꽃 팬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꽃 피던 이팔청춘, 아버지와 나눈 사랑의 은밀한 추억 내가 처음 시작된 그곳 분홍 꽃 팬티에 감추고 사는 어머니,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호래자식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했나 성을 초월하는 거룩한 존재라고 사탕발림을 했나 (중략)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정일근의 <분홍 꽃 팬티> 중 발췌

 

S#3 풍선을 샀어-엄마를 위해

 

극 중에서 신경숙의 분신같은 장녀의 모습은 날 참 많이 닮았다. 난 매년 위시 리스트(Wish List)를 작성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목표가 보이고 한 해의 동선이 그려진다. '올해는 꼭 불어를 마스터할거야' 혹은 '남미여행하기' '벨기에에 가서 수제 레이스를 맘껏 사오기' 등등.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엄마랑 뭔가를 하고 싶다'는 문장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내 계획속엔 항상 엄마가 없었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고아라고. 혼자인 엄마, 물론 아빠가 여전히 옆에 계시긴 해도, 부모없는 아이인 엄마를 살펴보지 못했다. 엄마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예전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셨던게 기억난다. '넌 바깥에선 사람들이랑 미술관 댕기매 설명도 잘 해주고 그런담서, 엄마한테도 한번 그래달라'는 말이었다. 정작 가족들에겐 도슨트를 한번도 해준적이 없다. 갑자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멋진 평론이나 리뷰를 써보려고 욕심을 부렸는데, 본의아닌 고해성사가 되어 버렸다. 작품 속에 너무 몰입한 탓이다. 그럴수 밖에. 엄마란 존재는 그렇게 강력한 것이리라. 나아가 소설가 신경숙의 능력이기도 할 것이고. 그래 그녀는 귀신이다. 사람들을 눈물의 샘으로 모는 귀신이다.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풍선을 샀다. 힘껏 불었다. 수십개의 풍선을 엄마의 몸에 달면,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여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