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연극을 봤어-오랜만에 정극을
지난 토요일 저녁, 예술의 전당 내 자유 소극장에 갔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정극을 보러 극장에 간게 말이다. 어설픈 춤과 노래를 넣고 뮤지컬인양 포장해 파는 작품이 난무하는 연극판이다. 그렇게 혜화동과 멀어졌고 연극과 멀어졌다. 토요일 오후는 고즈넉했다. 하늘엔 무거운 진회색 구름이 걸렸고, 잔잔하게 비가 내렸다. 오늘 볼 연극이 <레인맨>이라서 그런가? 하며 속으로 차오르는 미만한 웃음을 머금었다. 영화 <레인맨>을 봤던게 고등학교 3학년때니까,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더스틴 호프만과 더불어, 연기자의 대열에 오르기 위한 숨고르기를 하던, 톰 크루즈의 호흡이 씬과 씬 사이에 각인되었던 영화 <레인맨> 영화 속 감동을 연극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인터넷 주식 트레이더 찰리 바비트. 어린시절 부터 증오해온 하버지 샌포드의 부음소식을 듣고 동거녀인 수잔나와 함께 유산상속을 위해 고향 신시내티로 돌아간다. 재산관리인 월터 브루너 박사에게 3백만 달러의 재산이 병원시설에 수용된 한 환자에게 상속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놀란다. 고작 그에게 돌아온 건 클래식 차량과 장미정원이 전부. 그 환자는 바로 존재조자 알지 못했던 형, 레이먼이었다. 형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했다. 찰리가 있는 집으로 떠나는 여행. 바비트는 서번트 신드롬 환자인 형 덕에 도박판에서 큰 돈을 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앙금이 남아있던 그는 형을 통해,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냉철한 주식 트레이더로 살아오면서, 힘들때마다 힘을 불어주곤 했던 어린시절의 <레인맨>이 사실은 레이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하지만 그 사랑을 뒤로하고 수잔나와 건실한 가정을 꾸리기로 마음먹은 찰리를 위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간다.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 "진실을 한번 보기만 하면 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의 소름끼치는 부조리를 깨닫게 된다. 그때 이러한 의지의 가장 위험한 순간에 치료의 마술사인 예술이 다가와서 그 구토의 발작을 상상력으로 바꾸어놓기만 하면, 그것으로 살 수가 있다"고. 연극을 보는 순간,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으리라. 나 또한 그랬다. 작품의 의미에 몰입, 의미와 하나가 되어서겠지만, 무엇보다 연극 속 형과 동생의 이미지가 '우리 속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리라. 연극을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그들이 하나가 되고 화해하고, 떠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마음 한켠이 소롯해진다.
S#2 동생에게 형이 필요한 이유
가족이란 무엇인가? 위로 2명의 형과 한명의 누이가 있다. 한 개인의 성장사에서 가족들, 그 중에서 형제자매간의 관계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최근 읽었던 <행복의 조건>에서 성공한 그룹의 특징 중 하나가, 탄탄한 가족간의 유대였다. 프로젝트를 할때, 어려움에 닥쳤을 때, 격려하고 길을 찾아주는 동지같은 형제와 자매. 어린시절을 되돌려보면, 먹을거 때문에 툭탁거리고,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더 얻기 위해 싸운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 나오는 인류 역사의 최초의 살인도, 형제간에 일어난다. 카인과 아벨. 동생을 시기한 나머지 들판으로 불러 동생을 죽인 카인에게, 신은 묻는다 "네 동생은 어디에 있느냐" 카인은 답한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이까?" 라고. 이 말은 정말 무서운 말이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이냐고 되묻는 카인의 말엔, 한 인간의 책임부재가 담겨있다.
연극 <레인맨>은 잊혀진 형의 존재를 통해, 새롭게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늦깍이 사랑을 배우는 한 남자의 성장을 다룬다. 그들의 성장과정은 길 위에서 펼쳐진다. 길을 배경으로 한 다는 점에서, 영화 레인맨은 일종의 정신적 로드무비의 형태를 띄었다면, 이번 연극 <레인맨>은 가족간의 통합에 더욱 주력한다. 핏줄이란 질기디 질긴 흔적을 복원해가는 기억의 움직임은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다. 이탈리아 핏줄이 섞인 바비트 집안의 형제로서.
연극 <레인맨>은 가족 기능의 하나인 '보호와 위로'의 차원에 질문을 던진다. 페미니스트들은 가족이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언제든 해체되고 재구성이 가능한 사회적 조직단위일 뿐이라고 말한다. 무서운 말이다. 담론적으로는 가족을 그렇게 말할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삶과 정서를 지배하는 가족의 힘을 쉽게 폄하하진 못할터. 동생에게 형이 필요한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 같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나 개인으로선 나이 터울이 10년이 넘게 나서 알콩달콩한 형제간의 즐거움은 별로 없다.
레인맨은 한국 1세대 뮤지컬 배우인 남경읍과 그의 동생 남경주, 박상원과 원기준의 더블 캐스팅으로 구성되었다. 박상원씨와 원기준씨가 할 때 봤다. 두 분의 연기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으련다. 연기자 상호간의 호흡이 썩 잘 맞아떨어진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자체의 에너지가 너무 세다. 영화에서 본 감동을 연극을 통해 보는 즐거움도 컸다. 상연자가 관객의 눈앞에서 현존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연극은 부재를 넘어, 엄연한 현실의 차원으로 인간을 이끈다. 나는 신파를 좋아하진 않지만, 신파도 제대로 하면 감동을 준다. 누구나 가슴 속엔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힘들때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상상의 존재. 연극 속 찰리에게 레인맨이 있었듯, 당신의 레인맨은 어디에 있는가? 목적 부재의 사회. 너무나 빠른 속도감으로 정신이 현란한 요즘, 그런 레인맨을 기다리는 건 비단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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