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옷의 렌즈를 통해 보는 인간의 역사

패션 큐레이터 2009. 9. 23. 23:10

 

 

제 방에는 의상디자인과 복식사, 디자인사 관련 책들로 넘쳐납니다. 매달 디자인 리뷰 매거진과 트렌드 분석과 관련된 자료까지 포함하면 항상 뒤죽박죽, 다양한 내용의 책들로 범벅이 되지요. 이번 달에 구매한 20권의 책 중에서 우선 3권을 소개합니다. 복식사가 앤 홀랜더의 역작 Seeing Through Clothes는 지금까지 3번을 사서 모두 복식을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선물로 준 책입니다. 정작 선물로 주고 나면 저는 없어서 이번에 4번째로 이 책을 샀습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면서 도움을 받았던 책입니다. 미술작품 속에 드러난 패션의 의미들, 가령 주름과 누드의 문제, 의상과 복식, 거울의 심리학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패션 큐레이터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독학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국내의 의상학과 교수들의 왠만한 논문들, 특히 미술과 패션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이 책은 아쉽게도 번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정부관련 지원을 받는 재단측에서 이 책에 대해 관심을 보여 번역에 착수하게 될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오랜만에 꽤 두꺼운 책을 신청했습니다. Fashion Theory Reader란 책인데요. 이 책은 학부생들이 읽고 기초를 쌓기에 좋습니다. 복식사, 사회학, 문화연구 등의 지식을 통해 패션을 바라보고 있지요. 패션 이론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저자들의 글을 모아놓은 선집입니다.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페티시의 오브제로서, 혹은 기억의 물질로서 패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안티패션과 옷의 정치학에 이르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저널은 Fashion Practice라는 것인데 The Journal of Design, Creative Process & Fashion Industry 의 페이퍼판입니다. 저널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첨단 패션의 테크놀로지와 창의적 과정에 관련된 토픽을 다룹니다. 이 책을 편집한 크리스 젠크스의 글이 재미있어 몇줄 인용합니다.

 

Fashion is, of course, a modern industry but that huge enterprise itself is, in turn, merely one more realisation and formalization of humankind's infinte range of cappacities to adorn , to decorate, to present, to membership, to belong, to eroticize, to both artfully stabilize and de-stabilize. We can begin to regard fashion as not merely the prerogative of celebrity and footballer's wives but as an expressive playground for creative social practice.

 

패션은 근대적 산업이자 그 자체로 거대한 기업이다. 패션은 인간의 장식과 현시의 욕구, 성원권과 소속의 욕구, 에로스적 대상, 안정과 무료함으로부터의 탈피를 가능케하는 무한한 능력을 실현한다. 패션은 유명인사나 축구선수들의 아내들이 보여준 화려한 옷차림에 머물지 않으며 창의적이면서도 표현적인 사회적 실천의 지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패션이 문화적인 실천으로서, 경영학의 다양한 담론들과 만날 수 있는 지점들을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전공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오늘 시간은요. 내일은 주간한국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할 예정입니다. 최근 지식경제부가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패션계에서도 이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패션컨설팅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목표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더군요. 정부 시책들이 항상 그렇습니다만, 체질을 바꾸지 않고 반짝타령에 머무는 것은, 우리가 사물을 깊게 보고 사유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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