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앨리스는 지금 이곳에 없다-너 행복하니?

패션 큐레이터 2009. 5. 14. 07:57

 행복하고 싶은가 보죠? 행복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작가 고선경의 전시를 보러 가는 길

환기 미술관 뒤편엔 예쁜 갤러리가 하나 생겼다.

스푼이란 갤러리 이름이 인상깊다. 수저로 밥을 떠먹여 주듯

소비자들에게 미술의 다양한 요리를 친절하게 먹여보겠다는 뜻일까?

 

 

갤러리 2층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풍경

우연히 이곳에서 화가 이목을 선생님을 뵈었다.

고선경 작가와 지인이신가 보다. 저번 MBC 문화사색 촬영하면서

인사드리고 두번째다. 어찌나 반갑던지.

 

 

화분에 걸어놓은 귀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올망졸망 놓여있는 화분들이며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지인을 통해 알게된 고선경 작가님. 이번이 3번째 개인전이란다.

전시 제목이 Alice in Nostalgia 다. 향수에 젖은 앨리스라, 이제까지 전시한

내용을 보니 일관되게 앨리스를 소재로 했다. 화가 자신처럼 느껴지는 분신같은 존재. 앨리스

예전 루이스 캐럴의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다.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 어린시절에 읽은

텍스트의 의미를 깊게 알게 된 책들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도 그 중 하나고

무엇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 태두가 되지 싶다.

 

 

그림 속 앨리스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떠돈다. 부유하기 보다는

오히려 즐기고 있다. 현실의 지점이 아닌 그 곳은 거울로 사방이 둘러싸인

무대와 같다. 거울이미지가 등장한다. 거울을 본다는 것이 자기 반영성을 갖게 된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 초기, 석영을 이용해 거울을 만들어

베르사이유란 초유의 거울 궁정을 만들었고, 그 속의 인간들은

가면을 쓰고 매일 질펀한 파티를 열었다.

 

거울은 초기부터 사치와 나르시스즘을 전달하는 매개였다.

궁정에서 살아가는 1만여명의 귀족들은 자신의 가치를 정치적으로

알리고 소우주인 궁정에서 타자의 시선속에 서로를 길들여가기 위해 필수적인

소품으로 이 거울을 이용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거울을

바라보는 인간의 정신성도 변화한다.

 

 

거울을 통해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선경의 그림 속 거울 이미지는 상기의 두 가지 이미지를 모두 병합한 듯 보인다.

나르시스적이고, 한편으로 성찰적이다. 거울 속엔 거울을 바라보는 자와

반영된 자의 시선이 오롯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그림 속엔 거울과 물이 주요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전시도록의 서문을 보니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그녀의 그림을 가리켜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상과 비교를 해 놓았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나 또한 대학시절 가장 좋아했던 감독이었으니, 그의 영화

희생과 거울, 스토커, 노스탤지어 등 주요 영화들은 다 봤다.

 

롱 테이크(길게찍기)로 드러내는 유장한 장면구성과 철학적인 함의가 화면속에 가득한 그의 영화를 보고 난 후엔 항상 긴 시간을 멍하게 몽상에 빠지곤 했다. 타르코프스키는 시간과 기억이란 테마를 다룬다.

 

마치 우리가 농담삼아, 큰 실수를 하고 난후, 타임머신을 타고 뒤로 돌아가고 싶다는 류의 말을 잘 내뱉듯, 타르코프스키는 반토막난 자신의 고향 러시아를 사유하는 방식으로 이 기억이란 장치를 이용한다. 자기의 존재가 유래한 근원을 묻고 반추하며 그 속에서 분열되어 싸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물과 거울을 이용해 내면에서 싸우는 자신을 바라보고 화해하기를 꿈꾸었다. 고선경의 그림에서 타르코프스키의 향수를 발견하는 건 그리 색다른 시선이 아닐것이다.

 

전시를 본 후 고선경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쁘게 나와야 한다며 여러 포즈를 취해 주셨다. 뷰티샷으로 찍어 올린다. 그림 속 주인공이 실제 작가의 모습과 같다. 그날 지인들과 함께 있어 밀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터라, 정작 작가와 진중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작가와 전시장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그가 이제까지 그려온 그림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했는데,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되지 않아서였다.

 

언제부터인가 잡지사 인터뷰 형식의 글들이 싫어졌다. 누군가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는 건, 사전에 그에 대한 조사를 철저하게 하고 한 두가지 집약할 수 있는 것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짧은 인터뷰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다. 작품에 관한 의도를 직접 물어보는 일과 진중한 이야기는 다음 차례로 미룬다.

 

 

고선경의 그림에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장치가 있다.

마치 로모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을 때, 화면의 가장자리가 어둡게 처리되어

사각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미지의 왜곡도 생긴다. 

 

 

작가의 앨리스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제목처럼 그저 과거 시제의

향수에 젖어 있다고 보기엔, 현실의 그녀가 너무 곱다.

모든 인간의 영원한 현재를 꿈꾸며 산다.

 

과거에서 추출한 지혜와 힘, 미의식은

현실의 나를 위한 무기가 된다. 향수에 젖을 때도 있지만

나는 항상 거울 속에 비친 현실의 나를 사랑하고 껴안을 것이다.

물론 그 곳엔 여전히 미진하고 부족한 내가 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따스한 시선을 복원시키는 힘, 향수가 주는 매력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고향. 무한한 지평선에 게으르게,가로눕고 싶다 印度, 인디아!
無能이 죄가 되지 않고 삶을 한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
온갖 야한 체위로 성애를 조각한사원 초월을 기쁨으로 이끄는 계단 올라가면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이 있는 그곳......

 

황지우의 시를 읽는 시간, 나도 어딘가에

한 줌의 햇살 속 게으르게 눕고 싶다. 현실의 나를 때로는 용서하지

않는 나 자신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언젠가는

나를 바라보게 되겠지

 

홍기의 앨리스는 지금 이곳에 살지 않는다.

그러나 곧 돌아오게 될거다. 그 여행의 끝이 보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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