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한소연의 I LOVE YOU 展-우리가 순정만화를 읽는 까닭

패션 큐레이터 2009. 5. 18. 08:33

 

 

나는 만화가 원수연의 로맨틱 코메디 만화를 좋아한다.

예전 <풀하우스>가 그랬고 Daum 웹에 업데이트되는 <매리는 외박 중>을

매주 열심히 기다린다. 순정만화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캔디를 시작으로 <올훼스의 창>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가.<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나오는

샤방샤방한 남자주인공을 닮고 싶어 당시 유행한 핀컬파마를 하고 학교에 갔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표지를 씌워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내 기억에 난

캔디 표지를 사서 모든 교과서를 싸서 다녔다.

 

당시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 예고 준비하는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의 사랑을 듬뿍 받은건, 당시 인기를 끌던 유나래란 만화가의 <물빛 커튼을 열면>

이란 작품을 읽고 누나 앞에서 아예 연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비가 그친 청신한 거리는 수묵담채화 처럼 촉촉하게 젖었다.

빗물이 미풍속에 녹아들며 사라질 때 발산하는 그 비릿한 내음이 좋다.

오늘 인사아트센터에 갔다가 한소연의 <I LOVE YOU>전을 봤다. 작은 소품들을 중심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곱게 그려놓았다. 채색된 여인들의 모습은 우리가

순정만화에서 즐겨보던 9등신 미인처럼 긴 머리칼과 눈동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어렴풋한 눈망울이 보인다.

 

순정만화 속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항상 고민하는 여자 주인공처럼 한소연의 그림 속 여인들은 눈물과 기다림

행복감, 진중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누나가 매달 받아보던 <여학생>지에는

지금도 좋아하는 만화가 김동화 선생님과 한승원님, 황미나의 작품이

자주 실렸다. 만화방을 다니던 때가 80년대 초인만큼 역시 내 기억속 순정만화의 지존은

그래도 김동화와 황미나가 각인된 건 우연이 아닐 듯 하다.

 

물론 문화이론과 페미니즘을 한창 공부할 때는 이 순정만화가

여성들의 공공의 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 영국산 문화이론 수업에는

항상 <할리퀸 문고>라 불리는 소녀들을 위한 로맨스 소설을 엄청나게 비판하는 시간이 꼭

끼어있었다. 할리퀸 문고가 여성의 성 정체성을 항상 수동적이고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로 구속하고 형성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요 며칠 시원하게 내린 비로 밤이면 사선형태로

엉킨 블라인드 이편의 한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린시절의

추억 속 만화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신문수 화백의 <로봇찌바> 김형배

선생님의 <20세기 기사단> <최후의 바탈리온>,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 시리즈들

요즘 왜 이렇게 만화가 당기는 지 모르겠다.

 

 

우리가 여전히 순정만화를 읽고

할리퀸 문고를 탐닉하고 연애시를 읽는 이유는 사랑한다는

행위 자체가 결코 '살아가면서 완성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 기인한다.

 

翩翩黃鳥 (편편황조) 오락가락 꾀꼬리는

雌雄相依 (자웅상의) 암수 서로 즐거운데

念我之獨 (염아지독) 외로울사 이내 몸은

誰其與歸 (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를 연애시가의

시작으로 잡는다지만 그 이전에는 연애가 없었을리 만무하다. 연애와 로맨스가

문학을 비롯한 예술장르의 테마와 소재로 사용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만큼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구분되면서, 인간과 인간의 친밀하면서도, 은밀한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발산되면서 부터다. 결국 공고해져가는 근대적 삶 속에서의

제도화에 저항하는 인간의 한 단면 중의 하나인 것이다.

 

 

사랑의 근원적 불가능성을 뛰어넘기 위해 사람들은

연애담에 열을 올리고, 누군가의 결혼이 가진 정당성을 따져 묻는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부재를 한탄하고, 사랑이 식었음을 지적함으로써 오히려 우리는

사랑이란 실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려고 든다.

 

나는 오늘도 원수연의 만화 속에 나오는

무결점의 남자, 강무결과 사랑에 빠져 마냥 행복한 위매리의

환각적 사랑과 그 연금술에 그냥 빠져본다. 사랑은 다양한 스토리의 전개속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사랑은 이런 것이야라고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매체가 있을 때, 오히려 그 사랑을 더욱 믿고 싶은 인간의

약한 마음 때문만은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든

 

다음회가 기다려진다. 매리와 무결이의 관계에 또 한명의

근사한 남자가 끼어들차례. 이 진부한 클리쉐를 지겨워 하지 않는

내 자신이 참 재미있다......사랑이 재미있듯

 


 

듀오 더 블루가 부르는 <너만을 느끼며>를 올려봅니다.

손지창과 김민종의 목소리를 꽤 오랜만에 들어오는 것 같네요.

예전 참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투유 초컬릿도 생각나구요.

행복한 한주 시작하세요. 저는 이번주 엄청나게

바쁠거 같습니다. 화이팅 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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