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멜랑코리한 하루를 견디는 방법

패션 큐레이터 2009. 5. 13. 00:10

 
임소담_틈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09

 

제가 고문으로 있는 MCL(Marketing Creative Leaders)

의 멤버인 소영이가 며칠 전 전화를 했습니다. 자신이 아는 동생이

가회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꼭 저와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북촌 미술관 지나 조그마한 대안공간과 마주합니다. 스케이프 갤러리.

그러고보니 이유진의 변성이란 전시를 본 곳이더군요.

 

그림을 보니 약간의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몇년 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본 신인작가의 작품과 구성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그림을 자세히보니, 데자뷔 현상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작가 대학 졸업

 개인전 프로젝트에서 본 작가더군요. 그림 속 백색인간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고

몽환적이기도 해서 한번쯤 전시를 하게 되면 봐야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네요.

 


임소담_관_캔버스에 유채_145.5×97cm_2008

 

백색인간이 등장하는 그림이 섬찟하기도 하고

마음속에 환하게 피어나야 할 백색이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스플린이었습니다. 스플린(spleen)이란 정의할 수

없는 이유로 '우울해지는' 상태를 의미하는 불어입니다.

 

우울한 증세를 고대 그리스인들은 화가 났을때 검은 액체를

몸 속에 붇는 것이라고 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검정색 근심이 바로 우울의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서구문학에서 이 우울은 슬픔과 광기, 천재성과 연결되면서

19세기 낭만주의 사조의 핵심적 개념으로 등장하게 되죠.

 

임소담의 그림 속 백색인간은 우울의 무게로

본연의 빛깔을 상실한 채, 백색으로 탈색되어가는 인간의

내면풍경을 그린 것 같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 속 인물을 유전적

변이에 의한 알비뇨 현상으로 태어난 존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호모알부스라고

명명합니다. 작가는 백색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 시선을 그리고 싶었나 봅니다.

백인의 우월의식, 제3세계보다 항상 인종적 우월감을 드러내왔던

제국주의의 역사. 하지만 자연계에서 백색은 결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색상이 아닙니다. 쉽게

포획될 수 있는 약자의 빛이 될수 있지요.

 



임소담_섬_캔버스에 혼합재료_146×97cm_2008

 

임소담의 그림 속 인간은 하나같이 백색 변종이 되는

알비뇨증 환자처럼 하얗게 탈색된 자신의 얼굴을 다양한 옷가지로

감추고 있습니다. 튜브에 몸을 의탁한 채 어디론가 정처없이 부유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을 규정하고 개발하며 또한 그 속의

일환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진화론적 적응방산

이라고 말합니다. 임소담의 그림 속 인간은 이러한

자연스런 진화 과정에서 벗어난, 실패한

인간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임소담_안나_캔버스에 혼합재료_193×130cm_2008

 

봄날의 나른한 감성으로 온 몸의 세포가 느린 작동모드로

돌입하는 요즘입니다. 어제 한껏 내린 비로 거리가 다소 청신해졌고

초여름 기운이 한풀 꺽여 산책하기 좋았던 하루였네요. 임소담의 그림 속

인간의 피부에서 결곡한 여인의 피부를 느끼기도 합니다. 모공이 섬세하게 메워진

깔끔하고 깨끗한 피부의 여인. 화(火)의 기운이 침투되지 못하도록

강인한 영혼의 피부막이 신체를 보호하는 듯한 느낌.

 

감성의 우울이 가득해질 수록, 우리안에 찬연하게

빛나는 감성의 갑옷이 우리를 지킬 수 있기를 그저 소망합니다.

섬세하고 강인한 피부로 무장되어 언제든,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 존재감있게

함께 동고동락 해가며 환하게 웃는 내가 되어 보길 그저 바랍니다.

생각지 않게 제자 덕분에 좋은 작가 한명을 알게 되네요.

 

 

오늘 전시의 주인공 임소담 작가와 옆에는 전시에 함께 간 소영이.

 MCL 멤버들이 스승의 날이라고 예쁜 선물을 사주었습니다.

말이 예뻐 고문이지, 제대로 도와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공모전 할때

아이디어 검토 하고 BTL 정도 도와준게 전부인데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박아넣은

편지를 읽다보니,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마케팅을 먼저 공부한

선배로서, 그저 프레젠테이션 보며 몇자 지적해주고 같이 이야기 하고

그런것이 전부일진데, 항상 챙겨주는 아이들 때문에 행복합니다.

 

 

포장을 뜯어보니 바움쿠헨이란 케익이 들어있네요.

잘린 단면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생긴 독일식 케익이라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한겹 한겹 정성스레 구워서 레이러드(층)이 지게끔

만드는 케익이라는 군요. 집에 돌아와 새로산 터키산 커피

한 잔에 한 자리에서 케익을 다 먹어 버렸습니다.

 

다이어트고 뭐고 그저 아이들이 고맙고

케익의 단면처럼, 사람의 만남과 익어감도 한겹 한겹

고온속에서 조형되야 할텐데,부족한 것이 많은 고문이라

그저 아이들 마음이나 고문한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그저 고맙고 오늘 하루가 행복하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