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세피아 빛 추억-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보다가

패션 큐레이터 2009. 5. 7. 21:21

 

 

우리는 흔히 추억의 빛깔을 표현하기 위해

세피아라 불리는 색을 고릅니다. 짙은 갈색과 회색의 결합으로 드러난

이 빛은 유화를 비롯, 디지털 카메라에도 표준으로 장착되어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을 포착하도록 돕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갈색의 전 범위에 있는 빛깔을 좋아합니다.

예전 뉴멕시코 지방을 여행하며 본 아도비 벽돌빛과 테라코타의 붉은갈색도

좋아하지요, 스페인의 코르도바를 관통하는 대지의 빛깔도 갈색입니다.

암갈색, 진갈색, 보울(Bole)점토의 미만한 갈색빛, 옅은갈색모래에서 추출한 샌드브라운

시에나 지역의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산화된 철성분이 섞여 붉은 기운이 도는 적갈색인 시에나 브라운.

오랜 노동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휴경지의 빛깔 팰로우 브라운. 멋쟁이의 필수품,

카키에 이르기까지 갈색의 범위는 넓고 풍성합니다.

 

 

흔히 오래된 사진 앨범을 꺼낼 때, 앨범 표지의 겉부분이 산화되며

이 세피아빛을 발산하게 됩니다. 아카이브 작업을 하면서 일부러 이 빛을 사용해

문서를 정리하기도 하지요. 이 세피아의 뜻은 원래 라틴어로 오징어란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구요. 세피아는 오징어 먹물의 빛깔이란 뜻이지요.

 

18세기 후반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던

화학자인 제이콥 세이들먼은 이 오징어먹물에서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짙은 갈색의 빛깔을 뽑아 유화와 수채물감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성분을 추출하는데 성공합니다.

 

 

 프리드리히, <안개바다를 굽어보는 산행가>

1818년, 캔버스에 유채, 94.8*74.8, 함부르크 미술관

 

18세기 후반 이 세피아빛 물감이 나온 후

가장 즐겨 이 안료를 사용한 화가는 바로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였습니다. 위에 보시는 <안개바다를 굽어보는 산행가>는

다 잘아시는 작품이리라 생각합니다. 산꼭대기에서 농무 짙은 안개바다를

바라보는 산악가의 뒷 모습에서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자연의

광대함 속에 외롭게 서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지요.

 

 

 프리드리히 <뤼겐의 백악암>,

1818, 캔버스에 유채, 90*70cm, 오스카 라인하르트 재단

 

그의 화면에는 항상 세피아빛이 가득합니다.

원래 초기부터 세피아화만 그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추구했던 낭만주의적 이상에 부합하는 빛깔이었기 때문이지요.

발트해의 유명한 백색암벽으로 유명한 뤼겐섬의 풍광을

더욱 화려하게 만드는 것도 짙은 갈색빛입니다.

 

 

 

프리드리히, <바닷가의 수도승>

1809-10년, 캔버스에 유채, 110*171.5cm, 베를린 국립미술관

 

개인적으로 저는 이 그림을 좋아합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는

짙은 종교성이 묻어나오지요. 무한하고 압도적인 크기의 자연 속 인간의

모습은 자연 속에서 물아일체를 경험하는 인간을 그립니다.

흔히 미학에선 이러한 체험을 통해 느끼는

미를 숭고미라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리젠게비르게의 아침>

1810, 캔버스에 유채, 샤로텐부르그 궁전, 베를린

 

프리드리히는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신의 모습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을 자연과 결합시켜 그려냅니다. 그의 자연관에는

깊은 종교적 감성이 바탕을 이루는데, 그가 풍경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자연속에 깊이 박혀 있는 신성이었지요.

 

 

프리드리히 <달을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

1819, 캔버스에 유채, 드레스덴 회화관

 

그가 고목이나 상록수를 자주 그린 것도

삶의 무상함과 불멸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달은 그림 속에서 삶을 지속하려는 희망과 의지의 상징이지요.

 

 

프리드리히 <겨울풍경> 1811년 슈베린 시립미술관.

 

그의 그림 속 겨울 풍경은 폭설이 내린 풍광입니다.

모든 것이 눈에 뒤덮혀 사물의 옅은 프로필만이 보이지요.

하지만 겨울의 시간은 곧 지나고, 만물이 다시 재생하게 되는 봄이 오듯

그는 역설적으로 겨울의 풍광을 그리며 새로운 생명으로의

이행을 소망하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했습니다.

 

그에게 현실은 무겁지만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무대였고, 그 무대의 빛은 바로 세피아빛깔로 그려진

대지의 색이었지요. 우리는 흔히 추억의 빛깔로 세피아를

기억하지만, 세피아는 추억이 방울방울 겹쳐 현재의 건장한 우리들을

성장시킨 힘의 빛깔입니다. 연두로만 포장된 짙은 봄의 시간

땅의 빛깔인 세피아를 다시 한번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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