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인형으로 그린 정신의 풍경화-히로시 고바야시의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09. 4. 4. 23:09

 

 

MBC 문화사색팀과 첫번째로 갔던 곳입니다.

일본작가인 히로시 고바야시의 작품전이 열리는 아트 사이드 갤러이에요.

인사동엔 많은 갤러리가 있습니다. 대학시절 종로에서 인사동으로 접어드는 길 초엽에

자주 들른 덕원갤러리, 그 옆 한국의 신진작가들을 주로 소개했던 노암갤러리

공예와 사진등 다양한 장르의 크로스오버 작품을 기획하는 토포 하우스.

사진을 보고 싶을 때 편하게 들르는 갤러리 나우와 갤러리 룩스.

오랜 역사를 가진 인사동의 터줏대감인 선화랑과 관훈

미술관도 빼놓을순 없을 듯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아트 사이드는 항상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들과 신진작가들까지 다양하게 소개하며 그 지평을 넓히고 있죠.

올해 벌써 10주년이군요. 2006년-7년 중국미술이 인기를 끌던 시절, 뉴욕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던 큐레이터와 안면이 있어 자주 들렀고, 저도 이번에는 취재차 갔다가

원애경 실장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작가겸 큐레이터시더군요.

 

 

히로시 고바야시의 연출사진 같은 그림을 보다가 문득 어린시절

가지고 놀았던 테디베어를 떠올렸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도 인형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어서, 패션 바비인형과 테디베어 인형이 방 안 한구석을 오롯하게

채우고 있답니다. 제 친구중에 건축사를 공부한 여자아이는 영국산 도자기 인형에

필이 꽂혔다며 수집열풍에 빠진지 5년이 넘었고, 사진작업을 하는 후배중엔

각종 피규어와 구체관절인형을 모으는 이도 있습니다.

 

그만큼 인형이란 건 우리내 성장과정에서 유년의 기억과

성년이 된 지금의 정신적 고리관계를 연결하는 열쇠 같은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테디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가 배고프면 나도 따라 배고팠던 시절이지요.

아동의 발달심리학에서 흔히 테디베어를 Transitional Object (과도기적 대상물)이라고 해서

아이와 엄마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대체하는 일종의 사물을 지칭합니다.

 

 

고바야시의 그림을 지배하는 건 환한 백색 캔버스의 세계입니다.

 여인의 피부처럼 매끈한 느낌의 균질감이 화면 전반을 가득 메웁니다. 유년 시절의

백지상태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절대적인 흰색의 세계이지요.

 

이제 그 유년의 기억속에 무엇을 채울까요?

화면 위엔 천으로 감싸인 동물캐릭터 인형들이 마치 백색의 세계를 부유하듯

떠다닙니다. 북실북실한 느낌의 털실과 다양한 직물로 몸을 감싼 인형들에게선 엄마와

떨어진 아이가 본능적으로 찾으려는 모성의 세계가 느껴집니다. 문제는 이제 그 기억은

아른거리는 봄날의 아지랭이 처럼 우리의 기억에서 소실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형을 볼때마다, 성년의 세계속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내 자신을 바라보고, 그 세계에 저항하는 나를 바라보게 됩니다.

 

 

유년의 시절은 백색의 순수를 퍼올리는 저장고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를 둘러싼 것들로 부터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형태의 삶의 강요에 저항합니다

사진작업인줄 알고 다가갔다가, 이것이 정교하게 채색된 청색 톤의 인형그림인것을

확인하고 난후, 그 섬세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적외선 카메라로

내부를 찍은 듯, 열온도에 따라, 차이가 만들어진 인형의 그림자들.

그림자가 지도 속 등고선의 형태처럼 겹을 이룹니다.

 

유년의 기억이 담긴 여러겹의 지층을 거슬러 가듯

미세하게 조율된 색감의 겹은 유년의 기억을 담고 있는 나란 존재의 뒤편,

그림자 속에 스며들어 있는 상처의 무늬가 아닐까요.

 

  

화면은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처럼, 떠도는 인형들의 형상으로 메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유년의 기억을 지나가버린, 한때의 시절로 치부할수 없는 것처럼, 그때의 기억이

어른이 된 지금, 나의 인격과 발달의 상당한 영향을 미치듯, 과거의 그림자가

지금까지도 우리를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림 속 인형들이 공간을 부유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그림자니까요. 그림자에 담겨 있는 내 유년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고바야시의 그림을 보다보면, 순간적인 기억의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요. 그림을 보는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들 갖고 노는 인형이나 그리고 앉아있는게, 현대미술이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꼭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유년시절, 엄마와의 정서적 유대관계와

채워지지 못한 결핍의 욕구들이 어른이 되었을때 어떠한 형태의 상처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지, 우리 스스로 감추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자신은 그걸 너무 잘 알지요.

 

 

참 고백하기 어려웠지만 유소년 시절의 어둠이 제겐 참 많습니다.

상처가 많다는 건, 그만큼 하얀 석고를 갈아 메꾸어야할 정신의 균열이 많다는

것일 겁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래도 부모님이 감사하고, 매일 매일

성숙을 향해 갈수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잘난건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많은 사람과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준 대상들.

 

그들에게 참 고마워해야 한다는 걸 다시 배우네요.

 

푸른 슬픔을 견디는 저 인형들의 봉합된

시퍼런 땀선이 내 눈에 각인되네요. 그림 속 아날로그의 온기가 느껴지는

푸른 인형을 오늘은 꼭 껴안고 자야 겠습니다. 아직 흘려보내지

못한 내 남우새스런 정신의 상처도 흘려보내야 겠습니다.

 

 노영심의 피아노연주로 듣습니다.<보내지 못한 마음>

토요일 밤, 행복한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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