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도자기로 만든 사과나무-연두빛 능금이 익어가는 계절

패션 큐레이터 2009. 3. 26. 00:12

 

 

며칠 전 인사동에 도예작품을 사러 들렀다가 좋은

전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요즘 현대 세라믹 공예는 단순하게 그릇을

굽는 작업이 아닙니다. 요업이 아닌 다른 소재들과의 결합을 통해, 비움과 채움의

은유를 완성하는 예술의 길로 접어든지가 오래입니다.

 

 

 도예가 조일묵님의 <연리문 사과나무>란

전시 또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 서 있습니다.

어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해주겠다>

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했지요. 이 책은 서양 미술사의 거장들의 작품 속

사과란 소재를 테마로 하여, 다양한 얼굴과 의미를 가진

사과의 의미를 밝혀낸 책입니다.

 

 

사과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지식의 역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 사과를 표현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이 방식과 화가들을 따라가다 보면

미술의 언어가 과일의 묘사를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시적인 탐색의 렌즈를 들이대는 작가의 시선이 부러웠지요.

 

조일묵의 사과도 사물을 보는 도예가의 시선의 발전이란

관점에서 볼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작품을 구워내는 과정

부터 매우 정교합니다. 사과 무늬라 볼수 있는 패턴을 일일이 굽고 이것을

슬라이스(slice : 미세하게 자르다)해서 일일이 붙인것입니다. 거기에 하얀 균열의 틈을

만들고 여기엔 회백색 토를 하나하나 세밀하게 메꾸어 냄으로서

사과의 무늬들이 각자 여백을 갖고 어울리도록 했습니다.

 

 

마치 한땀 한땀 누빈것 같은 직물 느낌의

사과 표면 위로 물결의 무늬가 흐드러지게 피어납니다.

세라믹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사과나무 가지를 박아, 이질적인 재료들이

서로 혼음하며 만들어내는 특이한 효과들을 산출합니다.

 

 

어떤 일면에서 보면 앞에서 혼음이라 해석한 재료와 재료의 이질적 만남.

그 내면의 조화를 위해 한번쯤 통음의 아픔을 겪어야 했을, 재료의 숙명을 이해하고

짓이기고 누르고 빚어내 불의 자궁속에 구워낸 작가의 손길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내 삶이 이 한그루 사과나무의 표피 속에 그려질 수 있다면

아니 이것이 계절을 쫒아 잉태하는 과실의 향기로 표현될 수 있다면

한 송이의 사과 앞에서도 존경을 표해야 할 것입니다.

 

키우는 이와 더불어 함께 사과의 향기를

짙게 각인시키는 저 거대한 자연의 조형과 힘 앞에서

우리는 생의 불가해한 문제들 앞에서 고민할 때, 그 자연을 그냥

생각함으로써, 태연해질수 있을테니까요.

 

 

사과 한알 올올이 부박스런 손바닥 가운데 올려놓고선

미만한 연두빛 고운 살갖에 선뜻 입술을 포개지 못하는 봄날에

한겨울 쓸쓸하고 추운 겨울의 공포와 상처를 견디어낸 그 속내를 들여다 보기

싫은 것은 그 사과의 운명에서 우리 자신의 남우새 스러움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보기 싫어서겠죠.

 

그러나 당당하고 싶습니다.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

짙은 향기란 상처의 무늬가 숙성되며 쏟아지는 별빛의 향기인것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란 향기 짙은 사과 한송이 꽃

피워내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세잔의 한 올 사과가 없었다면

현대미술은 없었을 것이며 이브의 사과가 없었더라면, 여성성의 발현은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며, 뉴턴의 사과가 없었더라면, 중력의 힘을 알지 못했겠지요.

종교를 형성하고 신화를 만들고 과학의 새로운 옷을 입힌 저 한 송이의

사과의 공헌을 생각하고, 그 짙은 속살의 향기를 베어먹는

인간은 더더욱 치열하게 삶과 역사의 발전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매맺듯 살아야 한다는 것.

 

작가의 사과 도예가 뜨거운 불가마의 고통을 견디듯

여전히 힘든 우리내 생의 무게를 이겨내며

3월의 마지막 주를 버텨보기를

그렇게 소망합니다.

 


어제 새벽 라디오 방송 원고를 넘기고 나서 갑자기 식체에 의한

오한으로 몸이 덜덜 떨리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힘든 하루를 보냈네요.

오늘은 다행히 몸을 추스리고 코엑스에서 열린 리빙아트전과 조장은의 미술 전시회

오프닝에 가서 작가와 인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재즈 싱어 윤희정과 프랜즈의 공연을 봤습니다.

이은미의 목소리로 들었던 "애인있어요"를 재즈 아티스트 윤희정의 목소리로

듣는데 또 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봄날의 재즈는 행복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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