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30살 인생, 발끝으로 서다-발레수업을 받으며

패션 큐레이터 2009. 3. 22. 18:36

30살 인생, 발끝으로 서다

 

올해 새해 계획을 새웠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국립발레단의 일반인을 위한 발레과정을 다니는 일입니다. 글을 쓰며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서인지 뱃살도 붙고 얼굴엔 꽤 살집이 잡힙니다. 몸이 둔탁해지면 감각도 둔해지기에, 다이어트와 더불어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점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발레란 예술을 경험한 이후에 얻게 된 선물입니다.

 

저는 2000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체류하는 동안 평생의 자양분이 될 여행과 만남을 경험했지요.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침 6시면 어김없이 발레학교를 가기 위해 식물원 길을 가로질러 달린 일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턱없이 불어버린 몸무게를 감량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체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우울증과 자신감 상실을 극복하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었죠. 몸은 우리에게 발생한 모든 일을 기억합니다.

 

신체는 참 무서운 매개이자 조율점입니다. 최근 들어 몸이 급속하게 불었습니다. 운동을 게을리 한 탓도 있지만 식이요법에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자꾸 단것과 짠음식도 먹었습니다. 예전 3리터 물을 매일 마셨는데, 요즘은 물 대신 자꾸 커피와 음료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몸은 상처와 아픔, 환희를 기억하는 매개체이죠. 제 몸에 구석구석 찌들어 있는 생의 각질과 게으름,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는 일은 신체의 긴장감을 회복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발레학교에 등록을 하려고 찾아갔던 아트센터. 원장님을 만나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따님이 몇 살이냐고 묻더군요. 저는 제가 배우러 왔는데요"라고 대답했지요.

 

원장님은 놀란 토끼 눈을 뜨고선 혹시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봤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였지만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있던 터였기에, 영화 속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새벽반에 수강하는 남학생은 무료로 발레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뉴질랜드도 보수적인 곳이라 남자들이 발레를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다 보니 남자 무용수가 없어서 발레리나가 파트너 부족으로 고생을 한답니다. 그 덕분에 무료로 배우게 된 것이죠. 저는 이 경험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녁 타임에 배우는 재즈 발레는 유료였지만 이 또한 제겐 서울에서 배울 때 드는 레슨비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 하드 트레이닝이 시작되었습니다. 바 워크를 하며 몸을 풀고, 기초 동작을 반복해서 학습합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앤 할머니는 제게 굿 보이를 연발하며 처음 발레를 배우며 쑥스러워했을 제게 힘을 주셨죠. 쪽 머리를 곱게 한 선생님은 발레를 하면 아름다운 몸을 갖게 된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발레는 기본동작을 반복하며 신체의 리듬과 균형을 복원합니다. 여기에 음악에 조응할 수 있는 청음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음에 조응하는 신체, 음에도 여러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음악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듣기가 중요하고 청음이 중요시 되듯, 발레또한 이 청음능력과 음에 대한 공감, 멜로디에 몸을 맡기고 우뚝서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흔히 발레를 가리켜 중력의 법칙에 지배되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신체예술이라고 하더군요. 비상과 도약을 수없이 반복하는 발레동작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나 봅니다.

 

발레를 시작하며 4가지 발의 기본 포즈를 쉬지 않고 훈련합니다. 발레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이 발의 움직임을 연습하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이 움직임은 몸에 자연스레 배일때 까지 쉬지 않고 계속되지요. 기본적인 발의 움직임이 마치 악기를 배울 때 운지법을 배우는 것 처럼, 완전히 배어 나와야 합니다.

 

38살 이제 40대를 바라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뻔뻔스런 얼굴을 하고 올해는 발레를 다시 연습하려고 합니다. 몸의 균형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연습량을 더욱 늘여야 하는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웁니다. 현명해진다는 건,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것과 더불어, 예전에 배운 것들을 복습하고 다시 연습하면서 그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의 앙금을 정리해 새로운 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을 봤습니다. 아름다운 플리에 동작을 위해 그녀의 발이 얼마나 중력의 힘 앞에 무너지고 으깨져야 했는지 말이지요. 모든 삶의 무게를 발끝으로 견뎌낼 수 있는 제 자신으로 무장하고 싶거든요. 여러분! 저랑 함께 배우지 않으실래요?


 좋은 생각 4월호에 기고한 원고에 살을 붙여 올립니다. 사실 쓸말이 너무 많은데 지면이 좁은 관계로 많은 글을 쓰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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