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더 예뻐져야되-성형중독에 빠진 여자들을 위한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08. 12. 26. 01:08

 


김혜정_더 예뻐져야되 여자는 더 예뻐져야되 더. 더.

장지에 채색, 금박_32×32cm×2_2008

대한민국 여성들 만큼이나 성형과

다이어트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의 여성들이

있을까 싶다. 물론 유럽이나 북미도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과도한 그루밍이나 몸매 가꾸기의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국처럼 병적이진 않다.

 

여성을 향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들에 대한 성찬으로

가득하고, 미는 곳 자기 효능감과 연결되는 사회. 그 속에서 실제로 실력을 키우기 보단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제조된 미에 중독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땅의, 여성들의 현실이다.

 

 
김혜정_바람이 분다_장지에 채색_45×45cm_2008

 
김혜정의 그림은 그런 점에서 매우 솔직하다. 장지에 곱게 채색한 여인들의 모습속엔
때로는 우울하게, 도시의 잿빛 하늘 아래를 걷는 여인의 내면이 담겨 있다.
남성의 시선 아래 재단당하고 규정당하는 존재로서의 모습이
또한 오롯하게 담겨 있어서 볼 때마다 아련하다.



김혜정_푹빠져 헤매게 하는 것 또한 여자의 힘이다_장지에 채색_45×45cm_2008
 
요즘 중독에 관한 심리학 책들을 읽고 있다.
여성들을 둘러싼 중독증세들을 하나씩 살펴보다 보면
과연 여성 자체가 약해서 중독이 되는 걸까 아니면 사회의 구조적인 면모가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된다.
 
중독은 결국 의존관계가 지나치게 될 때 발생한다.
중독이란 단어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란 걸 또한 배운다.
건강한 중독은 언제든 존재하고, 그런 방식을 몸에 익혀, 나쁜 중독을
이겨나가면 된다. 이러한 매개를 갖지 못할 때, 사람들은 낮은 자존감을 치유하지 못한채
여러가지 방법에 의존하게 된다. 날씬해지면 정말 완벽하게 행복해질 것인지
혹은 성형을 통해 내 신체의 부분들을 바꾸면, 타인의 시선의 빛깔이
변화하게 될 것인지, 혹은 내숭과 같은 사회적인 기술을
어느 정도나 익혀야 하는 지로 고민하게 된다.



김혜정_달콤한 우울에서 위태로운 정열로_장지에 채색_45×45cm_2008
 
드라마로 인생을 위로하는 것 만큼 비참한 것도 없다
우울이란 결국 어둠의 상태다. 멜랑코리란 것도 영혼의 어두운 담즙이 가득
배어난 상태란 뜻을 갖는다고 하지 않는가. 내 안에 가득한 우울을 버리고
아름다운 정열을 갖기 위해, 우리는 현재, 나를 둘러싼 환경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내가 몸을 던질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거나
쉽게 나의 답답함을 방출하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되면, 감각이 오히려 무뎌지기 때문이다.



김혜정_마음을 숨기는 법을 배우다_장지에 채색_45×45cm_2008
 
마음을 때로는 감추고 싶고, 드러내지 않으며
'척'하는 것 또한 사회적 기술이다. 흔히 내숭이라 불리는 이 아름다운
사회적 기술을 올해는 다시 연마할 수 있는 여자분들이 되면 좋겠다. 결국 배려란 차원이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고, 오히려 그들의 사회적 기술로 인해 행복해지는
많은 남자들과 타인들이 있음을 기억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혜정_숨막히는 평범함과 화려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하여_장지에 채색_각 33×24cm_2008
 
죽어서까지 예뻐지고 싶다는 열망은
죽어서까지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과 동일하다
모든 꽃들이 시가 되고 모든 여자들이 시가 된다
하지만 오늘날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외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자가 드물다
 
그래서 시가 되는 여자도 드물다.
수많은 여자들이 진실한 사랑을 촉발시키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양상을 나타내 보인다.
대다수가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에
영혼을 저당 잡힌 채 외모를 치장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이외수의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중에서



김혜정_텅빈하루_장지에 채색_32×32cm_2008
 
이외수의 글을 읽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스스로 자신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꽃에 대한 모독이라고
화장과 성형으로 자신을 중독시킨 인간의 얼굴은 꽃의 표면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에 불과하다는 걸 시인은 애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김혜정의 그림 속 여인들을 보다가
문득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많은 여자들의 옆 얼굴을 보게 되는 것
같아, 때로는 불편하다. 이 불편함이 많이 소거되는 계절이 왔으면 좋겠다.
내 안에 있는 가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부족한 나를 껴안는
또 다른 나를 사랑하고, 믿고 앞으로 향해 걸을 수 있는
그런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올 겨울에는 거리를 수놓는 詩 같은 여자들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