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이창주
- “패션이란 옷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청명한 하늘과 거리, 우리들의 생각, 삶의 방식 모든 곳에 있다.”
패션계의 신화적 인물인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말이다. 또한 미술을 통해 복식사를 재조명한 '샤넬, 미술관에 가다' 저자인 김홍기(37) 씨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최근 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면서 ‘그림 속 귀부인 패션 따라하기’ 등 패션스타일링이 유행(?)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림 속 여인들의 패션에는 시대를 초월한 패션 센스가 숨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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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있는 마리 로랑생의 ‘코코 샤넬의 초상’(1923)을 보면 샤넬의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코르셋, 페티코트로 신체를 옥죄던 1920년대에 샤넬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남성용 저지 소재의 옷을 선보였어요. 샤넬은 미술에서 패션 아이디어를 끄집어냈다고 해요.”
이 책에는 그가 2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을 돌며 얻은 지식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회화나 조각을 감상할 때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작품 속 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사람들은 무슨 옷으로 자신을 표현했는지 차곡차곡 자료가 축적됐고, 그만의 ‘미술을 통해서 본 복식사’가 완성됐다. 미술과 복식사를 접목하는 독특한 시도를 한 그는 미술도 의상디자인 전공자도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장래 꿈을 ‘패션 디자이너’로 적어 냈던 소년. 그러나 의상 디자인이 아닌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결국 원래 꿈으로 돌아왔다.
요즘 그는 각종 잡지에 패션 칼럼을 연재하고, 패션 관련 방송의 게스트, 패션 관련 책 번역, 강의 등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http://blog.daum.net/film-art)’이라는 블로그에 패션과 미술에 대한 글을 꾸준히 올리는 파워 블로거이기도 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붙인 이름이 ‘패션큐레이터’. 미술과 패션을 넘나들며 전방위 활동을 벌인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는 아직 정착되지 않은 영역을 스스로 개척해 가고 있다.
- '샤넬, 미술관에 가다'는 신선한 접근으로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책은 미술과 패션에 대한 수다입니다. 딱딱한 복식사보다는 그야말로 ‘샤방샤방’한 분위기로 옷 이야기를 풀어 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술의 상상력을 빌렸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패션을 통해 당대의 패션 흐름을 짚어 낸 감각은 탁월하다는 평이다. 크라나흐의 ‘성 캐서린의 순교’(1508) 중 처형자 옷인 삼색 줄무늬를 통해 사실은 현대인이 선호하는 줄무늬가 중세 이후엔 악마의 무늬로 혹평을 받았었다는 내용이나, 마네의 ‘발코니’(1869년) 속 남자 목에 두른 레가타에서 넥타이의 원형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프랑스혁명과 폼페이 발굴이 맞물리는 시기에 나타났던 엠파이어 스타일이라 불리는 모슬린 드레스가 오늘날 시스루(see-through)의 원조라든지, 터키와 일본, 중국의 옷이 유럽에 끼친 영향 등 패션을 통해 풍부한 문화사를 담고 있다.
편안하게 읽히지만, 이 책을 쓰는 일은결코 편안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외국 자료를 모아서 분석하고, 원고를 쓰는 데만 5년이 걸린 묵직한 책이다. 어느 책은 월급을 통째 털어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패션에 대한 못 다한 한을 풀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
그가 패션에 빠져든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어머니 손을 잡고 패션쇼장에 다녀온 후였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충격을 받은 그는 ‘저런 멋진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내 갈 길은 패션 디자이너’라고 일찌감치 길을 정했다.
그러나 그 길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대학 의상학과에 두 번 떨어진 후 결국 경영학과로 진학했다. 그리고 틈틈이 의상학과 수업을 들었다. 온통 여학생 일색인 의상학과에 가서 청일점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바느질부터 배워 나갔다. 의상학을 제대로 하려면 필요하다는 생각에 미술, 철학 등 예술 관련 수업도 찾아다니며 수강했다.
그때부터 미술관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갤러리 투어는 그에게 ‘치유와 사색’의 길이었다고 한다. 패션잡지를 스크랩하고, 패션사진을 모으고, 미술관 다니는 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고 있다. 지난봄 러시아에 갔을 때도 1주일 내내 미술관에만 있었을 정도다.
“제 블로그에 어떤 사람이 ‘이 사람, 참 남자로 살기 힘들었겠다’라는 댓글을 남겼더라고요.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사는 동안 그런 시선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무슨 남자가 그렇게 패션을 밝히느냐’는 핀잔을 수도 없이 들었어요. 어릴 적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하면 ‘남자가 무슨!’이라며 욕먹기 일쑤였고요. 심지어 ‘너 그건 달렸니?’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는 것도 예사였어요.”
그런 편견 속에서도 그는 패션에 미쳐 지냈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가 그에게 딱 맞는 말이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백화점 의류구매 파트에서 아동복을 담당했다. 그러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거쳐 캐나다의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MBA 과정을 마친 경영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데 괜스레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일만 하기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게 있었던 겁니다. 그때부터 잠자는 시간을 쪼개 하루 4시간 이상 미술과 패션에 대한 글을 썼더니 그 허기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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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에 빠져든 것은 유명한 복식사가 앤 홀랜더가 기획한
이라는 전시를 본 후였다.
“외국 박물관에는 복식 섹션이 따로 있어요. 그만큼 패션큐레이터의 역할도 다양하죠. 처음 책 제목을 정할 때 ‘패션, 미술의 옷을 벗기다’라고 했더니 차라리 ‘미술, 패션의 옷을 벗기다’라면 모를까 ‘감히 패션이 미술을?’이라며 괘씸죄에 걸리기 딱 십상이라고 반대가 심했어요. 그만큼 우리나라는 아직도 미술보다 패션을 아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요즘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옷을 멋지게 입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백화점에서 일할 때는 아르마니를 입었다는 그는 요즘 청바지와 명동에서 산 보세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복식사가인 발레리 스틸은 “패션은 드러냄과 신비로움을 조장하는 일종의 수사학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입는 사람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 옷만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사람 이야기로 글을 풀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게 결국 역사이고, 문화라고.
“다음에는 파라솔, 우산, 거울, 모자나 장갑, 구두, 부채, 목걸이, 반지 등 액세서리 같은 패션 소품에 반영된 시대 흐름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볼 계획입니다. 가령 18세기 초만 해도 캐시미어 숄은 집 한 채 값이었어요. 그 뒷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또 세계 민속 복식과 한국 전통 복식을 미술 작품을 빌려 설명해 보고 싶습니다. 신윤복의 작품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자기장에 이끌리듯 결국 처음 빠져들었던 곳으로 발길을 돌린 그.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옷의 관점에서 사회와 역사를 보고, 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것 같다.http://singl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18/20081118007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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