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스페인 음식에 취하다-알바이신의 고양이와 만난 날

패션 큐레이터 2008. 10. 8. 01:30

 

 

오늘 스페인 전문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지난 번 인터뷰로 만나게 된 천수림 기자님과 번역하시는 친구분,

사진집 <알바이신의 고양이>를 쓴 사진작가 정세영 선생님을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바로 정세영님이 운영하시는 곳이죠.

 

  

 

회화나 사진, 장르에 상관없이 고양이를 소재로 한 걸

좋아한 탓에, 고경원씨의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란 책을 샀고

명화 속 고양이들의 모습을 설명한 Cats In the Art 란 도록도 샀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련한 흑백사진 속, 도란한 풍경 위에 살포시 엊어놓은 듯한

고양이의 모습이 인상적인 책을 한권 발견했지요. 바로 작가 정세영님이 3년간 찍고

쓴 <알바이신의 고양이>란 책이었습니다.

 

위에 보시는 스틸사진은 그의 도록에서 뽑아낸 몇개의 컷입니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의 경사면을 따라, 즐비하게 놓여진 집들, 구불구불한

미로형태의 갈빛 골목길이 눈에 들어오는 알바이신은 스페인의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를 배면에 낀 아담한 달동네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곳이지만, 흑벽과 마감되지 않은

거친 질감의 길바닥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지요.

 

여행이란 자유로운 망명을 떠난 그 곳에서

그는 넉넉한 고양이들의 풍모에 반했는지, 고양이를 찍고

그 곳에서 한발자욱 움직이지 않은 채, 바로 알바이신에 머물며

요리도 배우고, 사진도 찍으며, 발효되는 시간의 흔적을 몸에 새기며 살았나 봅니다.

 

 

4시간 가까이 정세영 선생님이 스페인 이야기에서 부터

알바이신의 느낌이 물씬 배어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원래 혜화동의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는데

홍대앞에도 새로 가게를 내셨더라구요. 하얀 벽돌로 지은 담벼락과

차분하게 놓인 갈색 목재의자, 거꾸로 매달린 세고비아 기타와 초록색 문지방이 곱습니다.

 

 

유리창엔 붉은 지붕을 가진 알바이신의 집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습니다. 백색과 초록색, 짙은 고동색 지중색이 어울려

마치 알바이신에 온 듯한 느낌을 발산하지요. 알바이신이 있는 그라나다는

복식에서도 올이 성근 린넨의 주산지입니다. 마치 피륙의 짜임새, 올들의 방향처럼

마을의 형성과 취락의 방식도 그것을 닮아가나 봅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 알함브라 궁전을 마주보고 있는 작은

산동네, 가난한 동네지만, 삶을 규정하는 시간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지

여유를 찾기에 제격인가 봅니다. 세상의 모든 풍경은 내 안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그림이라는 말은 사진작가 정세영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거기서, 낮잠을 즐기며, 환담을 나누는 이웃들이

눈망울을 찍었고, 도도하면서도, 넉넉한, 때론 얄미운 품격까지

갖춘 고양이들이 점령한 산동네의 매력에 빠져들수 밖에요.

 

 

창문틀에 걸어놓은 건강한 고추가 눈에 띄지요.

 

 

내부는 온통 그가 사서 모은 조리기구와

그가 직접 채색한 알바이신의 동네모습이 그려집 벽

따스한 질감의 빛을 선사하는 옅은 조명 아래, 둔탁한 나무 의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에스파냐의 풍광에 반해, 그곳의 삶과 요리에도 반해버린

작가는 요즘 주방에서 열심히 스페인 요리를 만들어냅니다. 최근 출판사와

스페인 요리책도 내기로 하셨데요. 더 멋진 건 요리 소개에 들어가는 모든 설명이

고아한 습작처럼, 채색 삽화로 만들어져 있는 책이라니 기대가 됩니다.

 

 아몬드로 만든 차가운 수프를 먹고 싶었는데, 사실 스페인 요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작가 선생님께 추천해달라고 했거든요. 이렇게 4가지의 요리를 내셨습니다.

 

안달루시아 스타일의 돼지갈비와 버섯요리, 감자와 새우, 달콤한 소스가 버무려진 요리, 튀니지산 고추로 만들었다는 달콤한 전채까지 조갯살과 싱싱한 왕새우를 엊은 볶음밥도 먹었습니다. 이걸 흔히 빠에야라고 하더군요. 밥이 노란빛을 띠는 건은 샤프란이 들어가서 그렇다는 군요.(제 책에서도 설명했듯, 예전 사람들은 화려한 황색을 옷에 물들이기 위해 샤프란 꽃을 사용했습니다. 로코코 의상에 대한 제 책의 설명을 읽어보세요)

 

빠에야는 기본재료를 쌀로 하며 스페인식 소스를 첨가하고 각종 야채와 해산물등을 넣어서 요리된 일종의 철판 볶음밥입니다. 요리의 이름인 빠에야는 바닥이 얕은 둥근 모양에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프라이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통적인 파에야는 1m가 넘는 큰 원형으로서 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장작불을 피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넣고 밥과 함께 볶아 먹었다고 하지요. 저도 체면 불구,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먹었어요.

스페인어로 요리 이름을 적어온다는 것이 그만, 대화에 너무 빠져버려서 잊어버렸네요. 마지막으로 마신 커피도 좋았습니다. 흔히 스페인 커피는 이탈리아의 화려한 맛과 달리 3가지로 나뉘는데요. 제가 마신 건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담긴 카페 솔로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건, 제가 좋아하는 비알레티 모카 익스프레스 커피 메이커에 담겨와서 좋았어요. 사이폰 커피나 드리핑 커피도 좋지만, 사실 왠만한 기술이 없이 만든 커피보다 이 비알레티로 끓여낸 커피가 차라리 단순하면서도 진한 맛이 우러나거든요.

 

요즘 라디오 방송에 특강에, 이런 저런 일들을 함께 처리 하느라, 사실 여행을 못가고 있습니다. 출장도 툭하면 다른 이들에게 맡겨버리고 말지요. 여행이란 결국 자발적인 귀향이라는데, 여행할 짬을 내지 못하는 요즘, 글을 통해, 혹은 새로운 기회를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면모를 읽고, 해석하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면서, 풍성해지는 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 일종의 내면여행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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