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꿈꾸는 이방인들의 패션쇼-당신의 꿈을 지지합니다

패션 큐레이터 2008. 9. 20. 03:05

 

 

오늘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졸업작품전에 다녀왔다.

학생들은 흔히 졸전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지리멸렬한 졸전을 피하기위해

피땀을 쏟는다. 나는 신인의 향기를 좋아한다. 첫발을 내딛는 친구들의

바지런한 손의 움직임 속엔, 그가 꾸는 꿈의 빛깔들이 녹아있다.

리허설이 끝나고 부랴부랴 의상을 고치는 손길들이 곱다

 

 

패션과 미술이 서로의 교집합을 만들고 그 범위를 확장해 가는 지금

90년대 초반, 의상학과를 가고 싶어했던 그때와 비교할 때

의상학과는 최근들어 예술학부 쪽으로 편제를 많이 바꾸고 있다.

특히 오늘 관람한 국민대학교의 경우는 애초부터 조형미술로 패션을 규정하고

시작한 쪽이라, 예술의상에 대한 포커스가 강하다. 전위적이면서도

선과 면, 직물의 물성을 최대한 이용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옷은 제 2의 피부로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조형물이다.

매듭과 겹쳐입기, 교차하기, 피부를 숨기고 혹은 드러내는 마법사의 보자기처럼

우리 자신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옛 여인들의 얹은머리, 가체를 재구성한 디자인이 눈에 띄인다.

 

 

학생들의 상상력이 부럽고 보기 좋다.

개인적으로 사진이 흐려 실지 못했지만, 바코드를 패션에 도용한

학생 작품이 있었다. 마음에 들었는데,  현대미술에서

바코드 도형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을 미리 좀 많이 보고, 변용했다면

더 나은 조형성을 가진 옷이 될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오른쪽 작품이 눈에 띄었었다.

안내용 도록을 보니, Split the Space, 공간 분할을 옷을 통해서

시도했다. 회화는 점, 선, 면을 기본으로 해서 공간을 창출하고 사유함으로서 앞으로 나아간다.

옷에서 드러나는 공간들은 하나같이 흐물흐물, 유체역학적인 유연함이 드러난다.

도시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현실속에서 몸으로 표현해내는 공간의 속성이다.

 

 

패션쇼가 진행될수록 흥미 진진하게 살펴보았다.

패션쇼에서 만나는 옷들은, 친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옷이란 실체를 입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이제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부분들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내 만든 것도 있고

'흐름'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파고들어가면서 옷으로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물론 새장속에 갖혀진 우리 삶의 유한성을 묻기도 한다.

 

 

폴란드 출신의 화가 백신스키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작품이다.

 백신스키(Beksinski)는 죽음을 소재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죽음의 얼굴이

그의 작품속엔 마치 중국의 변검처럼, 빠른 속도로 그 모습을 감추거나 드러낸다.

아마도 옷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직물의 엉켜짐은 회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해낸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난 언제부터인가 흔히 세상이 말하는 거장이나 유명화가의 작품보다

이제 막 또아리를 튼 아이들의 작품을 보는 걸 즐기게 되었다.

그만큼, 묻혀 있는 보석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바로 졸업작품전이다. 난 그림을 통해서 이런 식의

발품이 얼마나 큰 효익을 가져다 주었는지 언제든 말할 수 있다.

 

 

물성이 다른 직물이 교직되는 순간, 그 시간은 이질적인 만남에서 새로운 것들이 피어나온다.

정은아란 친구의 작품인데(왼쪽) 컨셉을 Dualism, 이원성이란 뜻이겠지.

백신스키 작품을 원용한 드레스를 디자인했던 친구인거 같아서

유심히 봤다. 조금만 더 사유하면 좋은 작품이 될것 같아서

어줍잖지만 생각한 내용을 첨언해 본다.

 

 

 

오늘 국민대학교 졸업 작품전의 전체 테마를 보니

"Stranger Stream.....낮선기류란 뜻이다

옷을 통해 어떤 꿈을 꾸고 싶었을지 궁금했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패션쇼였다.

 

난 사실 졸업작품전은 어떤 학교든, 무조건 칭찬부터 하고 본다.

인생에 첫번째 패션쇼를 마친 사람들이다. 이제는 현실로 들어가야 하지만

첫마음에 대해선 따뜻한 니트처럼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다.

 

  

요즘 의상학도들에게 꿈을 물으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패션 바잉이나 상품기획,

마케팅 업무를 하고 싶다는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좋은 현상이기도 하지만,

배후를 보면, 디자이너로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어렵고, 노력의 댓가가

엄청나게 작은 이 땅의 패션산업의 슬픈 현실이 숨어 있다.

 

맨날 말로는 디자이너 한명이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제대로 물적/정신적 지원이 국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섬유산업에서 패션강국으로 떠오르는데 항상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졸업작품전을 볼때마다 느낀다. 오늘 본 작품 중에서

내일의 훌륭한 디자이너가 나올수도 있고, 또 성과를 내지 못한채

마멸될수도 있지만, 졸전이라 부르는 작품전 준비하면서, 흘린 땀과 과정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거다. 난 이 아이들의 꿈에 베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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