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숙_꽃들아! 춤을 추어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전현숙의 그림은 재미있다. 그 속엔 한국인이 그리도 좋아한다는
보테로의 그림 속 뚱뚱한 여인들과 남자들이 등장한다.
패셔너블한, 옷에 대한 묘사와 색채감각은 너무 정교해서 소롯한 느낌까지 든다.
나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면서 영국화가 제임스 티소의 작품을 많이 차용했다.
전현숙의 그림은 어떤 면에선 티소를 참 많이도 닮았다.
항상 사랑을 기다리는 여자와, 그 기다림이 심심해서 뭔가를 만지작 거리는 것과
꼭 퍼그 강아지가 여자 주인 옆에서 포즈를 취한다는 것이 닮았다.
제임스 티소 <보트에 탄 여인> 1870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티소의 그림 속 젊은 여인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갓 꺽어놓은 노란색 모란을 바치며 프로포즈를 할 남자를 기다린다.
뒤에 퍼그는 그런 그녀를 지키면서도, "우리 아가씨 괜찮지 않나요"라고 묻는것만 같다.
전현숙_女 +子 = 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좋아한다는 뜻의 한자 好자를 보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포옹하고 있는
형색이다. 나는 복식사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옷에 담겨 있는 뒷 이야기와 풍속사를
살펴보다보니, 한 가지 배운게 있다. '어느 시대나 외설은 존재하고, 남과 여의 육체적 사랑만큼
끊임없는 관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만큼 전현숙의 그림에는 꽤나 외설적으로 보일수 있는
이미지들이 등장하지만, 그 모습에서 유쾌함과 위트를 발견하게
되는 건 그림 속 푸른 슬픔과 어우러진 사랑의 열병을
이미 앓아버린 여인의 여유때문이다.
전현숙_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을 추는 거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08
두번째 제임스 티소의 그림과 전현숙의 그림이 닮은 건
바로 그림 속 주인공들의 시선의 방향이다. 티소의 그림에는 항상
주인공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향해있다. 그들을 향해서 말을 건내고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청하는 듯 보인다.
전현숙의 그림도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의 개인전을
세 차례나 보았지만, 그녀의 그림은 빅토리아 시대, 티소의 그림처럼
소설을 읽거나 연극을 보면서, 관객들이 그림의 내용을 유추하고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그녀가 키운다는 7살짜리 퍼그 세풍이도 티소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퍼그와 너무나 닮았다.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 속 사연 중에서 행여나 내 마음 속 사연과 닮은 것은 없을까
"저 여자는 얼마나 아팠을까" 혹은 "나랑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군"이란
은밀한 푸념을 늘어놓을지 모르겠다.
전현숙_아직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08
그녀의 애완견 세풍이는 주인의 모든 사생활과
사랑에 개입하나 보다. 가느다란 은줄에 매달려 있는
불안해 보이는 주인공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이도 바로 이 퍼그 강아지일듯 하다.
모란꽃의 향기와 그 가치를 아는 나이에 들어선 화가의 붓 터치에선
사랑에 아프고 가슴앓이했던 젊은 날의 흔적들이 그려지지만, 그 감정 앞에
관객인 우리가 애잔한 상념에만 빠지지 않는 것은
작가 자신이 그 세월의 사랑을 잘 견디고, 풍성하게 자신을 키워왔음을
그림 속 자신의 분신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일거다.
전현숙_好. 好. 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그림 속 환하게 드러난다.
전현숙_가슴앓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97cm_2008
예전에 정신과 의사 게일 쉬이가 쓴 <조용한 변화>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폐경기를 겪는 중년 여성들의 심정의 변화와 극복방안에 대해 다룬 책인데, 내가 이 책을
중년 여성분들에게 자주 일독을 권했었다(안타깝게 책은 절판이다) 폐경기가 여성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폐경 이후의 삶이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고
꼭 논평을 달아 전해드리곤 했다.
게일쉬이는 미국 내 여러계층 및 인종의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폐경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한다. 폐경(Menopause)란 Men...O....Pause
남성들이여....이제 그만 멈춤이란 뜻이라면서, 갱년기 이후의
자신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동굴속에 그 이전의 껍질과 애용했던 사물들을 놓아두고
새로운 발견을 위한 여행을 떠나라고 말한다.
전현숙의 그림 속 배안에 있는 소중한 물건들은
아마도 새로운 발견과 그 여정을 위해, 곱단하게 자신만의 동굴에
놓아두어야 할 것들의 목록 인지도 모른다. 피노키오 같은 자식을 키우는
재미로 삶의 완숙을 향해 한걸음씩 걸어가는 작가의
여백과 웃음이 환하게 (그림을 바라보는) 내 시선의 주변부에 머문다.
올 가을엔.....사랑에 빠져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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