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캐츠비, <우리는 라디오다> 캔버스에 아크릴, 2006
2006년 여름 박중훈과 안성기가 나온 영화 <라디오 스타>가 생각나는 하루다. 개인적으로 미국 시장을 연구하며 HD 라디오를 어떻게 팔수 있을까 고심하며 기획서를 쓴 적이 있다. 미국에 이 기술을 가진 회사가 딱 두 군데라,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소비가전 페어(CES)에서 업체를 만나 사업을 설명하고 라이센스를 얻어보려 노력을 했었다. 아날로그 라디오에서 디지털 라디오로 형태가 변하고 있는 지금. 디자인의 역사를 통해 라디오의 형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2006년 화가 캐츠비가 그린 <우리는 라디오다>란 작품은 일인 라디오 시대가 열린 지금, 모두가 라디오의 역할을 하는 시대의 모습을 그렸다.
파울 파두아 <총통께서 말하신다>
1939년경 캔버스에 유채
파울 파두아의 작품엔 독일에서 만든 대량생산된 첫번째 라디오의 모습이 등장한다. 총통 히틀러 옆에 걸려있는 짙은 고동색의 라디오를 보라. 이 라디오를 디자인한 사람은 발터 마리아 케스트링이란 사람이다. 독일에서 발흥한 디자인 운동, 바우 하우스의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인데,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 기능성을 최대로 살리려는 철학이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라디오는 20세기 시작된 모더니즘 운동의 상징이다. 비행기와 자동차, 텔레비전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꾸어놓은 산물 중의 하나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모더니즘에 대해 흥분했고, 희망을 가지고 그것을 맞이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세계전쟁으로 이어진 국가간 이념 경쟁은 그들이 양산한 라디오의 디자인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그림 속 폴크스앰팽거는 말 그대로 국민의 라디오란 뜻이다.
이 폴크스앰팽거에는 당시 독일인들의 기술공학적 재능과 공업의 힘에 대한 맹신이 숨겨져 있다. 또한 국가권력은 이러한 라디오의 기능을 국가 전체의 사상과 욕망을 통제하고 도구로 전락시켰다.
즉 이 라디오는 독일 방송만 수신할 수 있었고, 권력을 가진 자의 대변인으로 집단 의식과 행동을 조종하고 합법화 했다.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라디오가 1933년 제작된 폴크스앰팽거다.
라디오의 디자인 하나에 20세기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이, 그 빛깔이 담겨 있다. 물론 단순하고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 대량생산과 염가판매가 가능하게 한 점은 높이살 만하다.
볼크스앰팽거에는 권력장악을 향한 독재자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된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그림 속 당시 유명한 그래픽 아티스트였던 파울 파두아가 그린 <총통이 말하신다>라는 작품을 보라.
합법적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파시즘에 근거한 히틀러 정권이 득세하면서, 철저하게 라디오와 같은 방송매체는 독재자의 권위와 권력, 자신의 목소리만을 담아내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가족 모두 전장소식을 듣기 위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스잔하고 쓸쓸해 보이지 않는가.다른 나라의 소식은 아예 듣지도 못하고, 독일소식만을, 가공되고, 통제된 상태로 전해지는 말만 들어야 하는 독일인들의 무심한 쓸쓸함이 그림 가득하게 배어나온다.
블루버드 라디오, 1934년작
월터 트윈티그 디자인, 스파톤 블루버드 라디오사 제작(잭슨, 미시건 소재)
크롬 도금 금속, 유리, 채색목재, 섬유를 재료로 함
존 바델 컬렉션, 1998년 기증
1년 차이로 나온 미국산 블루버드 라디오에는 미국식 모더니즘 문화의 시선이 녹아 있다. 철저한 낙관주의에 빠진 나라. 일단 이름부터가 블루버드, 파랑새를 찾아가는 희망찬 인간의 욕망이 드러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위대한 캐츠비를 보면 그런 꿈의 흔적이 소설 곳곳에 배어난다. 물론 그 꿈은 실패하고 말지만. 그들은 당시 경제적 수렁에서 미국을 구해내기 위해, 소비를 진작하는 경제정책과 국채를 판매하는 일에 사활을 걸었다. 소비는 미덕이고, 그렇게 팔리는 파랑새는 소비자들에게 희망만을 전달해 줄 것처럼 포장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그 꿈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파랑새는 찾을 수 없었던 셈이다.
라디오는 진화하고 있었다. 당시 모더니즘은 간결하고 적은 것인 더 많은 것(Simple and Less is More)라는 철학에 올인했다1. 모든 건축과 생활 용품들이 이러한 철학에 기반해서 디자인 되었다. 오른편에 보이는 세계 최초의 콤팩트 시스템은 축음기와 라디오가 결함된 최초의 제품이기도 했다.
이 제품의 이름은 브라운 포노슈퍼 SK4다. 앞에서 언급한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란 철학을 디자인에 응용했던 디자이너 디터람스와 한스 구겔롯의 작품이다.
백색의 금속판을 가벼운 느낌의 목재로 테두리를 내고, 투명한 아크릴 뚜껑을 달았다. 그래서 백설공주의 관이란 별명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디자인을 시작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파이 시스템이 시작된다. 지금 봐도 상당히 심플하고 정제감있는 디자인이다.
이제 라디오의 역사는 또 한번 디자인에서 큰 변화를 맞이한다. 바로 경박단소화의 시작을 알리는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다.
요즘이야 목걸이로 쓰는 가벼운 MP3가 나오지만, 1964년 브리온 베가사에서 만든 라디오 TS-502는 혁신에 가까운 디자인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두 디자이너 마르코 자누소와 리하르트 자퍼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디자인을 채택했다.
특히 이 제품에는 현재까지 지속되는 디자인에 대한 국가적 차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 일본은 항상 기술혁신을 외쳤고 독일은 기능을 최우선으로 했지만, 이탈이라는 예술과 기술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매 디자인마다 채택해왔다. 크롬 소재의 손잡이, 안테나를 접으면 깨끗하게 하나의 작은 박스처럼 보이는 깔끔함이 돋보인다.
색채도 다양해서, 주황색, 노란색, 흰색, 검은색, 빨강색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칼라 마케팅의 효시가 되었다. 작은 박스를 열면 한쪽은 스피커, 한쪽은 컨트롤 박스가 나타나고, 세부적인 것은 다시 빨강색으로 강조를 주어 소비자 사용이 용이하다. 지금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 두 천재 디자이너가 부러울 뿐이다.
최근 라디오 방송국에서 재미있는 제안을 받았다. 원음방송에서 아침시사 프로그램에 목요일 마다 책을 소개하는 일이다. 문화의 제국을 쓰면서 전시 위주로만 글을 썼기 때문에, 걱정이다. 책임감이 느껴진다. 청취자들에게 내 기준에 좋은 책을 권유하는 행위이므로, 책 선정에 마음이 무겁다. 다른 느낌의 서평이나 책 읽기를 한다는 평을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
매주 목요일 8시 40분 원음방송 FM 89.7 <시사 1번지>에서 여러분과 만납니다. 많은 청취 부탁드립니다. (큰절...올립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올립니다.
부디 좋은 방송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좋은 책, 권하고 싶은 책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고요.
-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미술문화-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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