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그림속에 갇힌 여인의 몸-핫토리 후유키의 사진

패션 큐레이터 2008. 6. 16. 01:46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야 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늦게 월간 <출판저널>기자분들과 만나

저자 인터뷰를 해야 했고 토요일에는 계속 미루어두었던 까르티에 보석전과

평창동의 주요 갤러리 전시를 보았습니다.

 

일요일에는 밀린 원고를 위한 자료를 찾고

백화점에 가서 신상품들 스케치 하고 여름상품 리뷰를 했고

저녁에는 큰 맘먹고 뮤지컬 <캣츠>를 보았습니다. 하나하나씩 올려야지요.

 

오늘은 그날 인터뷰 후에 본 전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현대 일본사진작가인 하토리 후유키의 작품입니다. 그는 회화적인 사실주의 기법으로

사진작품을 만드는 작가입니다.

 

 

인터뷰 한 곳은 리씨 갤러리입니다.

삼청동 초입을 조금 지나면 길가에 있습니다.

관장님께 경영학 수업을 들려드린 탓에 지인처럼 지내는 곳이지요.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1시 15분

친구가 준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앨범을 듣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에선 그가 재즈풍으로 변주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이 들립니다.

아마도 들으면서 좀 반성하라는 뜻인 듯 합니다. 후배가 준 영국로즈티가 발그레한 기운을

더합니다. 서재에서 글을 쓰는 이 시간 아직도 뮤지컬을 보고 난 후의 감흥을 다스릴 길이 없네요.

 

 

그림 속에 갖힌 여인의 몸이란 제목을 달아봤습니다.

후유키의 사진은 대부분 흑백으로 찍어 이를 칼러 필터로 착색하여

인쇄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매우 섬세한 질감을

각각의 사진에 부여하지요. 물론 사진 속 여인의 육체에도 부서질듯한 꽃잎의 감성이

아로세겨져 있습니다.

 

 

일본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인간의 육체는 어떤 것일까요?

일본적인 정중동이라면 어떨까요. 예전 일본 연극 노를 보는 듯한

움직임과 적요의 순간이 렌즈를 통해 응고된 시간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그의 화면구성은 마치 대리석 조각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누드와 나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종종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지인이나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며

도슨트를 자처할때 받는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전통 서양회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6∼19세기는

남성 미술가, 남성 고객의 독무대였고 예술가의 창작의도보다 남자 수집가의

입김이 창작에 결정적 작용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화가들도 먹고 살려면 컬렉터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여성모델을 눈요기 감으로 제공하게 된 것이죠.

 

누드화의 주인공이 육체를 전시하듯 내 보이며 관객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도 오로지 가상의 애인인 수집가를 유혹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림 속 미녀가 고객에게 꼬리를 치면 남자는 눈으로라도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이른바 누드화의 기본법칙처럼 굳어진 것이죠. 결국 생산자가 남성

중심이었던 시대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핫도리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은 19세기말에 나타난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이라 불리는 회화주의 사진에 대한 강한 존경입니다.

현대에서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고전적인 양식미를 핫토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작품을 만들고 자신의 감성을 토해냅니다. 그리하여 천사의 우아함과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불가사의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흔히 누드는 에로티시즘과 연결됩니다.

누드와 나체에 대한 구분, 혹은 이와 관련된 논의를 가장 잘 다룬 책이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가 쓴 '누드의 미술사'인데요.

여기서 그는 균형잡힌 육체를 재구성하여 예술작품에 영감을 준것. 이것이 누드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러나 그 표면을 뚫고 깊이 들어가보면 남자들의 시선에

재단된 여성의 몸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지요.

 

 

핫토리는 초기 꽃과 자연의 오브제를 중심으로

사진작업을 했습니다. 사실 꽃이란 사물을 여성의 신체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고전적인 관점이지요. 작가는 꽃과 누드를 다루는 것은 에로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만이 가진 미의식을 채우기에 좋아서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의 사진 속 누드는

에로스나 생명성 보다는 뭐랄까 죽어가는 인간이

저항하는 모습이 드러난달까요. 영원한 생명력을 간직하려고

투쟁하는 인간의 욕망이 아련하게 담겨 있습니다.

 

색채와 질감, 그리고 대비감....이 모든 것들이

왠지 위험해보입니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아크로바트의

감성이 담겨서일까요? 그의 사진적 질서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선을 그어놓은 한계상황이

드러나는 것 같아 사진을 보면서도 한편으론 약간의 어두움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를 만나려면 벗어야 한다
벗는 속도는 가능한 빠른 게 좋다
오로지 벗기 위해 예까지 왔다며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말고 재빨리 벗어야 한다
벗은 몸을 쓸어내리는 그의 눈빛에
선선히 온 몸을 맡겨야 한다
목이 조여 오고 온 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미세한 전율을 내색 않고 끝까지 숨겨야 한다
겨울 숲을 다녀온 날 꿈을 꾸었다
언 땅에 머리를 박고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나무의 자세가
칼바람을 맞으며 맨살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나무의 투지가
벗기는 힘
언제부터였을까
나뭇잎 몇 잎으로 가릴 것 다 가렸던 사람들이
누덕누덕 껴입기 시작한 것이
저 필생의 힘으로 봄이 오면 나무들은 더 푸르러질 것이고
나는 가려야 할 것이 더 늘어났다

 

이정화의 <누드가 있는 풍경> 전편

 

 

인터뷰와 전시관람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친구는

요즘 무척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잘 합니다. 올 겨울에도 연주회를

앞두고 있는 친구에겐 역시 무엇보다도 베필 이야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억하시죠? 저번 피아노 연주회 소개할때, 바로 그 친구에요.

 

힘내라며 송이돌솥밥을 먹었습니다.

자연 송이향이 아주 좋더군요. 죽순과 송이, 팽이버섯을

짭조름한 햇살간장에 비벼 먹는 기분이 좋습니다.

 

 

 

오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밥이 깊어갑니다. 경인미술관에서 시원한 오미자 화채를 마셨습니다.

좋은 베필 하나 소개시켜 준다하면서 계속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그 만큼 나이대가 맞는 남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그럽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 친구나 저나 여름 녹음 아래

마시는 무덤덤한 오미자의 향이 좋은 걸 보면

천연덕스럽게 나이가 드나 봅니다.

 

다음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 자신의

누드를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몸은 어떤 나무의 빛깔과 질감을 닮았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오늘 북새통 홈페이지(www.booksetong.com)를 가니

7월달 이달의 우수도서 코너에 예술/대중문화 분야에 제 책이 올랐더군요.

10개 분야가 있는데 분야당 1권씩 뽑아서 클릭하고 투표하시면 된다네요.

6월 20일까지입니다. 댓글도 남겨주시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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