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린다면
그 그림은 어떤 느낌을 발산할까요? 우리는 흔히 도자기라고 하면
여러형태의 용기와 그릇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 도예는 이런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조형적 특질을 서양화에 접목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내죠. 저번주 인사동에 갔다가 생각지도 않은 좋은 전시를 하나 건졌습니다.
작가 옥현희의 작업은 흙을 재료로 한 조형작업이란 점에서
현대 도예에 그 맥을 닿아있지만, 평면화의 경향또한 강하게 드러납니다.
온갖 찬연한 일상의 빛깔이 마구마구 흩뿌려진듯한 캔버스엔
물감이 아닌 페이퍼 포슬린, 즉 종이 도자기가 붙여있지요.
원래 도예를 하는 분들을 보면
그릇을 하나하나 구워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지켜내시는 걸
볼수 있습니다. 말이 그렇지, 도자기를 구워서 건조시키는 소성과정을 거쳐서
캔버스 위해 자잘하게 하나하나 붙여가는 과정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이렇게 해서 만든 작품들은 마치 1년 365일 우리의 작은
일상들을 상징하는 덩어리처럼 모여 삶의 모자이크 그림을 구성하지요.
무미건조한 우리들의 일상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일상이란 치열한 전투를 불 가마에 비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인사동을 돌아다녔던 이날도 봄날 치곤 가장 더웠던 오후였습니다.
예전 어린시절 씹었던 분홍색 풍선껌을
불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요.
지리한 우리들의 일상을 환하게 해주는 것은
역시 빛깔입니다. 하지만 잿빛 하늘에, 우울한 내 자신의 내면 풍경속에
이미 깊은 곳으로 감추어버린 환한 마음의 빛을
찾기란 쉽지 않지요.
바로 이 아픔을 긍정의 빛으로
유의미한 빛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일상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내는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은
다름 아닌, 빛을 통해, 빛깔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긍정의 힘입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보자기의 기억>이란 작품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위해 보자기를 한번이라도 싸본적이 있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효재 선생님 댁에 다녀와서 최근 부쩍 보자기에 대한
관심이 늘었거든요. 선물 포장을 뜯는다는 표현보다는
풀어본다는 뜻으로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이 보자기의 물성이 떠올라서일까요?
유난히 이 작품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답니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입니다.
고령토와 종이펄프를 빚어 형상을 빚고
이후 표면에 색을 입히죠. 채색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는데
작가로선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작품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흙을 빚어 만들다보니
형상의 두깨와 질이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죠. 가마 불을 통해 건조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형상이 왜곡되거나 표면에 균열이 갈수 밖에 없거든요.
이 작품의 제목이 <사람의 빛깔>인데 참 가지각색인
인간의 면모와 빛깔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한동안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더욱 매력있게 느껴지는 건
결국 일상의 빛깔을 구성하는 저 수많은 도자들처럼,
가마불에 구워질때, 절대로 균일하게 만들어지지 않는 더 종이도자의 운명을
우리의 삶에 대입시켜 볼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살아가면서 사연이 없는 이가 어디에 있을 것이며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환경을 견디고 상처를 곰삭여내는 과정을 결여한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이것이 오늘 전시를 통해 우리가 배워보아야 할
작은 생의 단면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에 보시는 것이 <정지한 시간의 고요함>이란
작품입니다. 꽃들이 환하게 피어난 시간, 도자를 토해 구워져 이제
변화할수 없이 응고된 저 생의 빛깔들을 보면서......
사실 며칠 전 불쾌했던 몇 가지 개인사의 경험들을 떠올렸다가
그래.....저 꽃들처럼 환하게 살아야 겠다, 마음먹으며
내려놓고 또 내려놓았습니다.
선생님하고 한컷 찍었는데 사진이 잘 나왔네요.
좋은 작업들을 본 날은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
계속 하셨으면 좋겠네요.....이제 한주가 시작됩니다.
멋지게, 비록 진부하고, 때로는 힘들지만, 마음 속 한송이 꽃 피워내는
시간들로 채우시길 희망합니다.
'Art & Healing > 내 영혼의 갤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늙은 소와 토끼의 대화 (0) | 2008.04.23 |
---|---|
대통령의 아침식사-미친소로 만든 스테이크 (0) | 2008.04.21 |
미술 속 음주가무-취중진담은 이제 싫다 (0) | 2008.04.19 |
거위의 꿈을 들으며-인권의 의미를 묻다 (0) | 2008.04.17 |
그림으로 보는 인사동-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0) | 2008.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