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무소유의 의미를 다시 묻다-사찰 살림이 빠듯한 스님들에게

패션 큐레이터 2008. 4. 13. 03:56

 


조송_타타타_장지에 먹 혼합재료_122×192cm_2008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여러번 읽었습니다.

불교 종립대학을 다닌 덕에, 의무적으로 6학점을 따야 했지만

반감을 가진 적도 없었고요. 예법과 불교사,불교문화사, 화엄경과 미란타왕문경

법구경등 불교의 경전들을 읽으면서 비교 종교학이란 학문에 대해

관심도 갖게 되었습니다.



조송_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_장지에 혼합재료_120×150cm_2008


예전 김국환이란 가수가 <타타타>란 노래를 불렀었지요

꽤나 한창 인기를 끌었지요. 타타타의 뜻은 <있는 내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입니다

화가 조송의 그림은 이 노래 구절 하나하나를 빌어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종교는 어떤 면에서 보면, 절대자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비단 기독교의 문제도 아니고 불교 또한

나를 버리고 소유욕을 버리는 일에서 부터, 있는 내 그대로의 모습을

찾는것이 기본이지요. 오늘 MBC 뉴스 후에서 본 <사찰살림 빠듯하다면서>편을 보면서

이제 더이상은 안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코가 길어지는 동화 속 피노키오같은

이 땅의 종교를 위해 종교 법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더이상 투명한 종교가 이 땅에 존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의 신앙이 지향하는 저 하늘의 법입니다.

하늘에서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고 되물어 보실까 두렵습니다.



조송_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안다면 재미없지_장지에 혼합재료_58×75cm_2008


우리 앞에 놓인 인생에 대한 불안함

위험사회를 감내하고 견디는 우리들에게 종교는

위안과 영혼의 안식을 주어야 합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기에

종교제의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실존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찰 운영이 어렵다면서 문화재 보존을 빌미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 수억원 대의 차를 타고 다니고, 국고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온갖 기만을 일삼는 불교계 일각의 행태가 드디어 MBC 뉴스후가 방영했습니다.

저번 기독교계의 목사들의 납세의무를 파헤친 후 두번째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긴 셈이죠. 그런데 아쉬운 것은 비교라기 하기엔 붕어빵처럼 닮은

두 종교의 현재적 모순이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짜 문화재를 진짜처럼 포장하여 전시해놓고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사찰. 정부가 사찰에 지원한 문화재보수비, 전통사찰 보수비, 템플스테이 지원금이 어떤식으로

유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밝혔더군요.




조송_산다는건 좋은거지 수지맞은 장사잖소_장지에 혼합재료_80×80cm_2008

 
지난번 기독교 납세 의무비판에 이은 이번 불교계 비판은
종교의 이름만 다를 뿐, 그 종교를 통해 수지맞는 장사를 하려는 이들의
비열한 속성과 모습을 비추는 데는 동일함을 적나라하게 밝혔습니다. 종교를 사업화하고
신도들의 헌금을 투명하게 지출하지 못하는 관행은 양쪽이 다 같더군요.



조송_알몸으로 태어나서 옷한벌을 건졌잖소_장지에 혼합재료_80×80cm_2008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한벌을 건졌고, 그저 배고픔을 견딜 정도의
먹을 거리를 발우에 담아 공양하는 스님들의 무소유가
매우 무색해 지던 순간이었습니다.


곰, 호랑이, 부엉이, 두꺼비 심지어 여기저기 자라는

식물까지 작가 조송의 화면 속 구제대상은 끝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중생들입니다.

반인반어의 인어마저도 유명 상표의 수영복을 입고 좋아하는 걸 보면 옷 한 벌을 건지는 것으론

성에 찰리 없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가끔은 짐승처럼 변해버리는 인간의 육체는

동물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을 막고 비오면

비를 피하고 싶은 것이 중생들의 본능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무소유에 대한 꿈, 나를 부인하고 버리며, 내 안에 있는 자아를

벼리는 작업은 중요한 것입니다.




조송_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_장지에 혼합재료_87×94cm_2008

 

사찰의 보수와 관리에 들어가는 막대한 국고 보조금은
국민들의 세금을 통해 징수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국민은 비단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종교를 가진 이들의 세금으로 이루어 진 점을 명확히 해야지요.
 
 문화 보존을 위해 들어간 국고 보조금과 세금이
스님 한 개인의 사욕과 향응, 사치를 위해 사용되리라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비판이 있을때마다, 기독교가 불교나 동일한 방어막을 펴지요.
일부의 문제를 가지고 전체를 비난하지 말라....입니다.
 
화염경에 나오는 인디라의 구슬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쪽이 울리면 덩달아 그 울림에
우리 모두가 영롱한 내면을 드러내며 자신의 소리를 냅니다. 일부라 하지만, 그 일부에는
연결되어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들어 있는 것이죠.



조송_한세상 걱정조차 없이살면 무슨재미_장지에 혼합재료_91×119cm_2008


요즘 들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는 성경의 표현이

조금씩 이해됩니다. 부자에 대한 비난이나, 부자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채움과 소유욕을 가지고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기 어렵다는 뜻일겁니다.

 

울림이 있으려면 내 안은 텅빈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비어있음이 없이 어찌 채움이 있을수 있을까요? 오늘 어느 스님의 인터뷰가

정말 기억에 남네요.....무소유에 대한 뜻이 바뀌어야 한다나요......

당신의 기준이 뭐냐고 묻더이다. 나도 묻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아닌 예수의 삶을 본받는 것이 우선이듯

불교가 아닌 붓다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우선이 아니었느냐고요.....

저는 후자에 목표를 두고 사는 생을 살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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