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아르바뜨에서-빅토르 초이를 아세요?

패션 큐레이터 2008. 3. 12. 21:19

 

크렘린 궁을 돌아보고 구 아르바뜨로 걸어가는 길은

신산한 겨울 바람이 옷깃사이로 스며드는 추운 날이었습니다.

레닌 도서관은 예전에도 몇번 왔지만, 항상 궁금했습니다. 왜 레닌 도서관 앞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동상을 함께 배치시켰는지 말이죠.

 

레닌의 이상주의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릇된 메시아주의가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이 이야기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다시 할께요)

 

 

이곳 아르바뜨는 원래 정원의 반지라 불리는 5개의 교차길이 중심이 된

거리의 한 부분입니다. 스탈린 이후부터 반체제 및 저항의 목소리를 내던 예술가들이

즐겨 공연하던 곳이기도 하죠. 지금이야 세계적인 정유회사인 British Petrolium이 떡 버티고

있는 형색이 완전히 자본화의 물결속에 온갖 레스토랑과 가게가 즐비한 곳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흔히 모스크바의 인사동이라고 하긴 하는데

겨울엔 거리에 나와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거의 없어서 그런 느낌을 받긴 어렵습니다.

 

 

갖은 공예품과 민화들, 일러스트 작품들이 거리 곳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미술의 풍성함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충분히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공예분야를 좋아합니다. 한국은 미술하면 서양화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상한 마음의 습관이 자리잡고 있지만, 제가 있었던 뉴질랜드, 이번에 여행한

러시아는 세련된 유리공예와 전통 인형을 예술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러시아 사람들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아주 남다릅니다.

그 문화사적인 이유는 아직 공부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림을 보아도, 도예를 보아도

고양이를 형상화 한것이 참 많습니다.

 

 

러시아 팝의 전설, 빅토르 초이의 벽 앞에서 한컷을 찍었습니다.

빅토르 초이가 누구냐구요? 그는 한국계로 러시아인들에겐 팝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록음악의 신화입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언더그라운드 음악 문화는

반정부/무정부주의를 지향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 듭니다. 그 태두에 서 있던 가수가

바로 빅토르 초이지요. 1990년 초 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가 묻힌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보고슬롭스코고 공동묘지는 일종의 사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때 이 이야기를 다시 할께요. 이곳에 고생고생해서 갔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짐 모리슨같은 존재였다고 하죠. 그 깊이와 여운은 더하면 더하지 부족하진 않을겁니다.

 

 

아르바뜨 거리를 중간쯤 걸어가다 보면 위의 동상이 보입니다.

예전에도 이 사진을 찍었었는데, 사실 그때도 이 사람이 누군지 몰랐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불라트 오쿠자바란 195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싱어 송 라이터네요.

스탈린 사후로, 정치와 사회적인 비평의 목소리를 러시아의 전통적인 포크송에 결합해

불렀던 장르가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그 장르의 시초라고 하네요.

 

독립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영향력이 강한 그의 음악은

이후 정부의 다양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러시아의 밥 딜런 같은 사람이라고 하네요.

 

 

러시아 여행 중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전통인형 마트로시카인데요. 정교하게 채색된 그림이 그려진 오동통한 인형을

돌려서 열면 또 다른 인형이 나옵니다. 마치 무한수열같은 느낌을 주지요.

 

제가 찍은 사진에서 보실수 있듯, 정치가인 푸틴이나 옐친,

외국의 유명한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을 모델로 한 마트로시카도 많습니다.

원래 마트로시카는 러시아어로 마트리오나, 즉 뚱뚱하고 억센 러시아 여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어머니란 뜻의 '마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 인형' 정도 쯤 되겠지요.

원래 모성과 대지를 동일시 하는 러시아 인들의 감성을 고려할 때, 풍성한

산출과 다산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러시아 전통복식인 사라판(sarafan)을 입은

마트로시카 인형을 보실수 있을 겁니다. 복식을 좋아하다보니 이런건 눈에 들어오네요.

 

Image:JapaneseNestingDolls.jpg

 

사실 우리가 현재 보는 마트로시카 인형의 원류는 일본입니다.

아브람쩨보의 한 공방에서 일하고 있던 화가 세르게이 말리우틴이

당시 일본에서 수입된 7가지 행운을 부르는 신을 조각한 스케치한 후 이것을 러시아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후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최초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산물로 이 마트로시카가

소개되면서 러시아가 마트로시카의 나라로 사람들에게 각인된거죠.

 

 

저는 마트로시카를 보면서 어머니를 상징하는 인형답게,

모성과 풍성함을 기원하는 상징일수도 있지만

벗겨도 벗겨도 계속해서 불투명 수채화로 채색된 듯한 사회 전반의

풍경이 인형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여러개의 얼굴을 가진

시스템적인 불완전성의 축소판이 되는 것이죠.

 

 

거리 좌우에는 1980년대 부터 세워진 고풍스런 가로등을

뒤로한 수많은 레스토랑과 보석가게등이 즐비하게 서있습니다.

하드락 카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한컷 찍었고요.

얼룩소가 있는 사진은 '무무'라고 저렴한 스테이크를 파는 음식점이에요.

예전에 이곳에서 식사했던 기억에 다시 들어가 점심을 먹었고요.

 

 

모스크바의ㅡ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이곳 아르바뜨에는

러시아 문학의 거장 뿌쉬낀이 살았던 집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맞은편에는

아내와 함께 신혼시절을 보낸 곳 답게 동상이 세워져 있죠.

보시는 사진은 뿌쉬킨 기념박물관이고요. 여기에 가면 19세기초 화려한 러시아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푸쉬킨의 아내는 당대 사교계의 미인으로 손꼽힌 나탈리아 곤찰로바란 여인이었습니다.

동상의 형태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듯, 눈부시게 미인이었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아내는 지나친 낭비벽과 남성편력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죠. 결국 아내의 정부였던 단테스와 결투를 벌이고

시인 뿌쉬낀은 젊은 나이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리라

 

푸쉬킨의 <인생>

 

사실 뿌쉬킨의 시집을 읽다보면 조탁된 언어로 쓰여진

수많은 서정적인 시들을 발견합니다. 물론 어두운 내용들도 많지요.

푸쉬킨의 인생은 너무나도 자주 듣고 인용하는 싯구지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싯구의

행간속에 담겨진 슬픔과 비애, 그러나 그것을 초극하는 삶의 진실을 다시 느껴봅니다.

이제 여행도 중반을 훌쩍 넘어가네요.

 

젊고 달콤한 희망에 숨쉬며
언젠가 영혼이 썩는 육신에서 빠져나와
한결같은 그리움, 기억, 사랑을 끝없는 창공으로
가져간다고 믿는다면

맹세코! 난 오래전에 이 세상을 버렸으리
삶을, 흉한 우상을 부수고
자유와 즐거움의 나라로 떠났으리
죽음이 없고, 편견도 없는 나라,

오직 창공의 순수함 속에 그리움만이 흐르는 그곳으로...
그러나 이 바램은 헛것이고 무력한 것을
내 이성은 고집스레 내 희망을 경멸하고...
무덤 뒤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전연 아무 것도 없다고! 그리움도, 첫사랑조차도!
무섭다... 슬프게 다시 삶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 살고 싶어진다.

내 우울한 영혼 속에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감추어져 오래 불타라고.

1823년 유배시절 푸쉬킨의 <젊고 달콤한 희망에 숨쉬며> 전편

 

여행하는 동안 많은

아픔들, 생채기들, 언어때문에 고생하고, 배고팠고, 넉넉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많이 내려놓을수 있었습니다. 가벼워졌습니다.

내 인생의 짐 여러개 베낭 중 몇개를 놓고 온 느낌.....그런데 두고 온 짐에 대해

미련이 생기질 않네요.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움이 될테니, 마음을 미래에 두라는 푸쉬킨의

말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나 봅니다. 나의 젊고 달콤한

희망의 시간에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걸어가려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Bravo My Life>

남은 한주 활기차게 브라보를 외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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