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모스크바 대학의 명물 본관 앞에서

패션 큐레이터 2008. 3. 11. 22:47

 

여행기는 이제 중반에 접어듭니다.

봄 기운이 점점 더 완연해지는 지금, 계속 겨울 여행기를 적어내려가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이르쿠츠크 여행기는 제일 마지막으로 넘길께요.

이르쿠츠크는 여운형을 포함한 조선공산당과 항일투쟁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도시이기도 합니다. 자료들을 좀 더 정리한 후 최종회에 올리도록 하지요.

모스크바 대학 들어가는 길에 본 서커스장의 모습입니다. 겨울이라 한산하네요.

 

 

모스크바에 도착한 후, 5일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정확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저 볼쇼이극장에 가서 한편의 발레를 보고 싶었고

카페 푸쉬킨에서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두곳의 미술관, 푸쉬킨 미술관과 트레티야코프를

답파하기. 외곽에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과 러시아 예술의 요람 아브람쩨보를

가기. 이것이 5일간 우리가 해야할 모스크바 숙제였습니다.

 

예전에 모스크바 출장을 가면 꼭 한번 제대로 안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곳이 바로 이 모스크바 국립대학이었습니다. 항상 강이 흐르는

후문쪽에 위치한 호텔에 묵었기 때문이었죠.

 

 

 

온통 눈으로 덮혀 사물의 색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지만

그 속에서 옅은 베이지색과 붉은 테두리를 한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본관 건물은

우뚝 솟아 놀라, 나그네의 마음을 위압하고 맙니다.

 

위의 사진은 대학 내에 있는 전쟁기념탑이고요. 전에도 말씀드렸듯

1941년에서 45년까지 2차 세계대전에서 2천만이 넘는 러시아 국민들이 사망을 했습니다.

이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고 있지요. 붉은 글씨로 써놓은 학생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옵니다.

나찌즘과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조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엠게우는

한때, 슬라브족의 우월주의를 숭앙하는 학생들로 인해 속을 썩였었지요.

 

 

보시는 건물은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인문학부 건물입니다.

이곳을 거쳐간 인문학의 거장, 세계적인 석학이 많습니다. 러시아는 문학으로는 형식주의 미학의

본산입니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역사성을 강조하는 학풍으로 유명합니다.

 

문제는 이런 학풍 때문에 공부하는 양과 스트레스가 적지 않고

이로 인해 매년 한두명은 자살을 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고 해요.

책을 찾아보니 모스크바 대학의 시험은 전통적으로 구술시험으로 치루어진답니다.

학기 말에 교수는 문제를 모두 알려준다고 해요. 그런데 그 문제의 숫자가 70-90개.

한마디로 시험문제를 풀어서 정리하고, 교수 앞에서 또박또박 말해야 하므로, 일반적인 스타일의

시험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시험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미하일 바흐친이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아서 한컷 찍고 싶었습니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가로지르기' '혼종성' '경계 허물기'의 개념은

이 미하일 바흐친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상은 오직 다른 사상과의

살아 있는 접촉을 통해서만 진정한 사상, 곧 이념이 된다"는 그의 철학을 다시 한번 느껴보게 되네요.

 

 

시험철만 되면 책을 빌리느라 몇십미터씩 줄을 선다는

엠게우의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 들어가려고 그날 안내해준 이 학교 학생의

학생증까지 빌렸는데도, 출입이 불가더라구요. 아쉬웠습니다. 공부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오고 싶었거든요.

내부 구경은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공공장소라 촬영은 금지구요.

 

 

드디어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본관 앞에 섰습니다.

흔히 엠게우라 불리는 이 학교 캠퍼스의 중심에는 바로 뒤로 보이시는 본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높이가 240미터, 건물 정면의 길이가 450미터에 이른다고 하지요. 건물 안에는

4,500개의 강의실이 있고 셀수없이 많은 기숙사방이 있다고 해요. 안내책자를 보니

이 건물을 다 둘러보려면 145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니, 그 위용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이 건물은 독재자 스탈린 시대에 건축한 것으로 스탈린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거대한 피라미드 탑 모양을 한 건물의 최상부에는 예전 소비에트의 영광을

상징하는 황금색 별이 세워져 있지요. 조셉 스탈린은 193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고층빌딩 건축과 경쟁하기 위해 자신이 일일이 건물의 외양기준과 사양을

결정해 7개의 고층건물을 짓도록 지시합니다. 오늘날 Seven Sisters란

고층빌딩들의 시작이죠. 흔히 웨딩 케익 스타일이라 불리는 이 건물의 외양은

앞에서 보면 층층이 진 결혼식 기념 케익처럼 생겼습니다.

 

 

본관 후문에서 후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자마자....급방긋 모드로!

이 사진 보자마자 아는 여자후배가 '오라버니....개구리 뒷다리좀 연습하셔야 겠네"이러더군요.

이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어요.

 

 

 

이 별의 크기부터가 거대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아주 먼 거리에서도

햇살에 반사되어 그 황금빛 잔영이 주위를 물들인다고 합니다.

황금별의 그 찬란함이 독재란 그릇된 방식으로 윤색된 시절.

그럼에도 러시아는 특유의 교육 제도와 방식으로 미국과 맞서는 인재들을 키워냈지요.

그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 이 본관건물이고요.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로서의 건축이 존재할 수 있다면

 이 건물은 철저하게 냉전시대의 미학과 이상을 차갑게 드러내는 집인 셈입니다.

 

 

모스크바 대학을 나와 부근에 있는 인근 쇼핑몰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전통 러시아 식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뜨 거리로 가기 위해 나갔습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세계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지요

여행책에 다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어서, 사실 5군데를 내려 사진도 찍긴 했습니다.

러시아 아르데코 양식들이 주를 이루고, 그 중에 바로크 양식의 천정도 있습니다만, 사실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더구요. 깊이가 굉장히 깊습니다. 이대역 에스컬레이터가

깊다고 생각하신 분......모스크바에 가서 한번 에스컬레이터 한번 타보시면 다시는 그런 생각 안하실 겁니다.

 

 

신문판매대의 디자인이 예뻐서 한컷 찍었고요.

예술의 거리 아르바뜨는 구 아르바뜨와 신 아르바뜨로 나뉩니다.

거리로 나와 우연히 극장 간판이 눈에 들어와 쳐다보니 한국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보이더라구요.

 

 

대학을 안내해준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모스크바에 한국영화들이 어느 정도 소개되고 있는지도 물어볼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선호랄까,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최근 러시아의 모 대학에서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을 연구하는 대학원 강의도 새로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때 활발했던 한국어과 개설도 요즘은 소강상태란 말도 들었고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화를 교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가 대부분 서구학자들(주로 북미)이 규정한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높듯, 이곳 또한 외국을 통해 익힌 한국의 모습이 강하다고 하네요.

누군가 매개가 된 이해보다, 우리 모두 직접 그들과 만나 나누고 대화해야 합니다.

 

 

이 영화를 보았다는 러시아 친구를 한번 만났는데

굉장히 스토리 구조가 특이하고, 실험적이어서 놀랐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오히려 사유적이고, 철학적인 러시아 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기엔

괜찮은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은 많은것들을

새롭게 볼수 있도록 도와준 시간이었습니다. 정신의 표피에서 비늘을 벗겨냈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단순하게 위대한 문학가로 배워온 도스토예프스키의 실제 면모와 그의 변모과정

 이외에도 서구에서 무시해온 러시아의 예술가들을 발견하면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 볼수 있었습니다. 영혼의 행간을 채우는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이제 하나하나 채색할 시간만 남았네요.

 

김동율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다시 시작해보자>

이제까지 러시아 여행기는 주로 눈과 자작나무와 풍경만을 서정적으로 담았다면

이제부터의 여행기는 사유와 철학, 미술사가 어우러지는 시간이 될겁니다. 자.....다시 시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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