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

패션 큐레이터 2008. 1. 10. 01:10

 

오늘은 수요일, 인사동과 사간동, 삼청동과 같은 대부분의

갤러리에선 수많은 오프닝 행사들이 열리는 날입니다.

후배가 큐레이터로 있는 화랑에 초대를 받아 오프닝 행사에 참석했지요.

 

 

 

2008년 첫 새해를 맞아 시작한 전시회의 제목도 아주 그럴듯 합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일화에서 골라낸 화두가

3인의 화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테마를 통일적으로 묶어내는 것 가습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란 비유는 어른들이 하나같이 모자라고 생각한 것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표현한 것이죠.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 혹은 바라보는 대상이 과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인지, 혹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인지를 밝히는 작업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3일전에 올렸던 작가 변웅필의 신작 작품들을

전시회에서 볼수 있었다는 것과 작가와 간략하게나마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할수 있었기에

그 소회가 아주 남다릅니다. 사실 제가 3년여에 걸쳐 집필했던 책이 바로 <미술 속 패션의 코드>였습니다.

르네상스에서 로코코와 바로크를 걸쳐 빅토리아와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인들의 초상화와 여인의 복식을 다루었지요. 그들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장신구와 주얼리

드레스의 제작방법등 다양한 요소들을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설명해 냈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를 통해, 사회적 신분과 미감, 정서적 관계들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소품으로 치부되는 것을 통해 우리 눈에 드러나는 것을

밝혀보고 싶었던 거죠.  변웅필의 자화상 작업은 이런 소품들이 거의 없습니다.

자화상이란 것이 근대에 들어와 작가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자의식의 발견과 더불어

발전한 양식이라는 것은 잘 아실겁니다. 물론 모델비가 없어서 자신을 그린 화가들이 있지만

결국 나를 그리고, 나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내성하고, 성찰하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들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나

풍성한 질감의 인형을 들거나 혹은 아마존 꽃을 들고 있는 모습 속에서

남성/여성으로서의 구분을 벗어난, 겨울의 나목처럼, 순수한 실존으로 있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살펴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은폐된 것과 열어 보아야 할 것들의 경계를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 전시의 통일된 테마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것 같습니다.

  

 

변웅필 선생님과 한컷 찍었습니다.

자화상의 모습과 화가의 프로필이 닮지 않았나요?

 

 

두번째 작가는 박희태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이분은 자개를 가지고 풍경을 그리는 분입니다. 천연재료를 추출해 염색한 한지에

자개를 섬세하게 조형해 만들어내는 자연의 풍광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잎파리 하나에도, 우리 내 신체의 작은 울림에도, 우주의 큰 리듬이 숨겨져

있다고 하지요. 이기이원론이니, 일체유심조니 하는 말들은 바로 그러한 주장을 축약하는 말일 뿐입니다.

 

]

 

본 전시회의 발문을 쓴 큐레이터의 변을 읽어봅니다. 박희태 작가가 그려낸

소나무 풍경은 우리 몸의 중심인 척추와 그곳을 오고가는 신경돌기의 형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와 우주가 하나로 엮여져 있으며, 그 형상또한 닮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세번째는 작가 장형선의 작품들입니다.

그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노이즈, 불협화음의 풍경을

만화라는 팝아트의 한 형식을 빌어 설명합니다. 세계적 질서의 개편을

이야기하는 정치가들과 그 속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인종에 대한 말살과

종교를 빙자한 전쟁. 이런 겹구조의 세상은 바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바라보는

어른/아이들의 시선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요.

 

 

전시회가 끝나고 함께 간 후배와 함께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최근 맛을 들인 티벳 국화차를 한잔 마시고 싶었습니다.

기존의 중국산 국화차와 달리 티벳의 국화는 그 잎파리의 질감이

다소 거칠지만, 보랏빛이 가득 물의 입자위에 퍼져나는

그 기운이 아주 따뜻하고, 마음 한구석의 차가움을 따스하게 안아줍니다.

 


생명(生命)이 꿈틀대는
엷은 초록 빛깔처럼
곱고 깊은 맛, 뒤끝이 깨끗한 삶을 위해

차(茶) 한 잔 앞에 놓고
뜨거운 물속에 차 잎을 띄운다.

채 우려내지도 못한
차 잎의 떫은맛 같던 날들은
국화(菊花)의 향기로 짙어지고
진솔함으로 잘 우려낸다.
국화차(菊花茶) 한 잔,
연노랑 빛 따스함이 스며 나온
담백하면서도 향긋한 여운(餘運)이 남는
삶을 음미(吟味)하며

은근하면서 잔잔하게
우려낸 국화차(菊花茶) 한 잔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엷은 초록 빛깔처럼
곱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노라면
오랜만에 가슴이 더워진다.

 

이인혁의 <국화차 한잔> 전편

 

  

 

오늘 오프닝 행사를 다녀오며, 오랜 세월 지인으로 알고 지내며

미술을 이야기 하던 후배의 발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제 2008년 새해를 맞아

 역량있는 큐레이터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오랜세월 지켜보았고 그 과실이 무르익는 발효의

시간을 통과하는 후배에게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늘 멋진 전시 보여주신 세분의 작가 선생님들에게도요.

다음에 기회되면 국화차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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