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왼손이 오른손을 만날 때

패션 큐레이터 2007. 12. 31. 04:43

 


백순실_Ode to Music0411_석판화_35×25cm_2004

 

2007년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글을 쓰는 지금, 칠흙같은 새벽의 시간

오늘은 깊게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서인지

두시간 남짓 자다 깨어났습니다. 흑요석같은 시간의 입자들이 머리 속을

맴돌며, 제 손바닥위에 추억의 각설탕을 살포시 내려놓고 갑니다.

 



백순실_Ode to Music0510_석판화_35×25cm_2005

 

오늘은 판화가 백순실 화백의 <음악찬가>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해묵은 기억들을 보내고, 2008년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올 기대와 희망을

꿈꾸는 시간, 예전 제 방 한 구석을 차지했던 피아노가 기억납니다.

그땐 참 열심히 피아노를 쳤었는데요.

 

백순실 선생님은 6년 넘게 음악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십니다.

흔히 음악그림이라 부르지요. 백 선생님은 발색과 공간구성에 관해서는

아주 뛰어난 감각을 가진 분입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판화 작품엔

음표들의 상관관계, 단단하고 말랑말랑한 음, 악보라는 이정표

오목하고 때로는 볼록한 음들이, 미술과 만나 한판 춤을 추는 것만 같습니다.

 



백순실_Ode to Music0609_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오일바_130×162cm_2006

 

올 한해 이곳에서 저와 여러분 모두, 미술이란 테마의 옷을 하나씩

입으며, 그림의 즐거움과 생의 여백을 즐겼습니다. 그림이란 것이 그저 들솜같은 안개입자처럼

미끌미끌하거나, 뭔가 놓지 못해 아련한 마음 한구석을

게 발 처럼 뚝뚝 끊어놓는 듯 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다 답답한 가슴 한 둔치

살그레 캔버스란 바다위에 흘러보내며 쓸어내리다 보면,

미술이란 것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 하고 느끼실 수 있었을겁니다.

 



백순실_Ode to Music0613_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오일바_145×145cm_2006

 

하양과 까망, 청록과 황토, 분홍이 어루어진 <음악찬가>엔

마치 생의 이력들을 다시 한번 꼬옥 조여보려는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이 녹아있습니다.

 

왼손(반주로서의)은 청지기요, 집사요, 시종이요, 가정교사요, 유모요,

완벽한 신사이다. 또한 왼손은 배의 선장이요, 심판이요, 자선가이다. 오른손(멜로디로서의)은

저돌적이고, 변덕스럽고, 조울증적이고, 까다로우며, 지바의 천사이다 이 둘은 공존하며

때로는 사이좋게 지낸다. -러셀셔만의 <피아노 이야기> 중에서-




614_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오일바_145×145cm_2006

 

미술을 통해 다양한 삶의 면모를 읽어내고자 했던 시도는

때로 오른손의 울컥거림을 이겨내지 못해,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했고

이를 받쳐줄, 따스한 왼손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림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지 못하고 넘어간 것도 많고

숨겨진 이야기들 제대로 벗기지도 못한 채 흘려보낸 것들도 많네요.

다가오는 2008년에는 더욱 즐겁고 생동감 있는 미술 이야기들로 여러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잘 어울린, 생을 위한 미술 연주를 해낼수 있기를 바람하지요.

 



백순실_Ode to Music0616_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오일바_145×145cm_2006

 

올 2007년 한해  여러분이 계셔서 고마왔습니다.

미술로 소통하고 나누려 노력했던 2007년도 이제

아스라한 햇살아래, 점글어 갑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껴안고, 여러분과 즐거워하고 행복할거에요.

여러분을 위해 마지막 엘가의 <사랑의 인사> 띄우고 갑니다. 제 마음의 인사로 받아주세요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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