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쉬리-내 추억속의 영화 2

패션 큐레이터 2007. 12. 27. 16:50

 

이번 크리스마스에 티비에서 영화 <쉬리>를

해주더군요. 뭐 여러번 울궈먹는 영화일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늦은 시간까지 또 보고 맙니다. 그날도 파티갔다가 늦게서야 들어왔는데

12시 넘어서 이 영화를 하더라구요. 이 영화에도 참 많은 추억이 묻어있습니다.

회사 들어간 첫해 여름 휴가를 이 영화에서 보냈지요.

 

 

요즘은 활동이 뜸하시지만 강제규 감독님은 그 당시 최고의

흥행감독이었고, 그의 시나리오는 항상 최고의 상종가를 치고 있을 때이기도 합니다.

예전 우노필름이란 영화사에서 인턴십을 할때 종종 감독님의 전화를 받곤 했지요.

 

이 영화에 나오게 된 계기 부터가 참 재미납니다. 당시

요즘 세안의 화재가 된 교회에서 드라마를 했었습니다. 원래 연기를 공부했으니

교회에서라도 하고 싶었고, 좋은 정극들을 꽤 많이 올렸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도 했었고요.

그때 알게된 배우가 한명 있는데 바로 김수로란 영화배우입니다.

 

 

김수로 형이 교회를 옮기면서 드라마팀에 오게 된 것인데

역시 연극을 하신 분이라, 드라마팀에 와서 많은 걸 해주셨어요. 연기지도에서 부터

대본선정까지, 이때만 해도 무명배우였었지요. 하지만 누구도 형을 무명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예전 연극과 출신이란 걸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어요.

그만큼 연극과 출신이고, 자신의 연기에 항상 소신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형에 대한 기억이 유달리 좋은 이유는 이외에도 많습니다. 그때 수로형의 가정형편이 참 어려울 때였지만

그때도 항상 넉넉한 웃음과 여유, 우리를 웃겨주는 마음의 여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선배였고, 항상 귀감이었고요. 가장 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연기자로서의 태도였습니다.

 

제가 형을 처음 만났을 때가 형이 한창 단역배우를 전전하던 때입니다.

투캅스란 영화에 경찰청을 지키는 군인으로 나와서 얻어맞는 단역을 했었나 그럴거에요.

이때 형한테 반했던 것이 연기에 대한 열정, 작은 역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에  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형이 <쉬리>란 영화가 있다면서

드라마팀 멤버들에게 단역으로 나와보라며 권하더라구요. 엑스트라가 아니라 단역이어서

감독님이 연기를 실제로 할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다고 해요.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5일간의 촬영이었는데

다행이 제 첫 휴가일정과 딱 맞아떨어져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인천 제부도에서

북한 8군단 파견을 위한 훈련병역이었습니다. 날씨도 은근히 추웠고,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실제로 지시에 따라 연기하니 재미도 있더라구요.

 

 

참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그때 당시 <쉬리>란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짧은 촬영기간 동안 사람들도 보고, 구경도 하고, 영화 속 장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생각해 보는 것이 꽤 재미나거든요. 더 재미난 것은, 이 영화에 나온 사람들 중에

은근히 후에 스타로 대성한 배우들이 많다는 거에요. 영화배우 장현성, 황정민을 포함해

수로형도 여기에 끼어있지요. 그러고 보면 배우들에겐 일종의 등용문이 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당시 경영학을 공부하고 영화를 배우기 위해 뛰어들었던 시기지만

항상 두 가지 분야의 접합부분이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생각의 타래들이 풀리고 풀려

오늘날 한국영화는 이제 산업의 체계를 가진 경제주체의 일환이 된 것이죠.

저는 Movie Business 1.0이란 뉴욕대학 영화과의 영화경영학 교재를 읽었던 첫 세대입니다.

문화와 예술의 교집합을 끌어내고 상품화하는 일을 배워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들이 제게 있었네요. 이런 시각들은 그후 사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할때도 항상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기기를 만드는 회사를 할때도 그랬고

지금처럼 미술관과 경영학을 접목시키는 분야에 관한 저술을 할때도 그렇고요.

지금 후배들이 보면 그저 코웃음을 칠 수도 있을 이런 일들이, 그땐 굉장히 다루기 조심스런 분야였고

앞서 간 사람들이 없어서 참 힘들기도 했었지요.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저는 여러분야의 경계를 어떻게 포섭해 감싸안을 수 있나를

생각해왔습니다. 이런 태도가 글쓰기와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그대로 녹아 있지요.

 

예전 리 스트라스버그란 훌륭한 연기 선생님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메릴 스트립,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더스틴 호프만 같은

최고의 메소드 연기자들을 키워낸 분이기도 해요. 이분이 쓴 <연기의 방법을 찾아서>란 책에 보면

예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치유적 기능은 얽히고 맺혀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경험들을

서로 나눌수 있는 능력에 있다"라고 하지요.

영화나 미술이나 연극이나 문학이나, 이곳 블로그에서 포스팅 되는 모든

글들과 텍스트는 바로 이런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눔에 있어서도 원칙은 있으며, 그 나눔이 편벽됨이 없이, 이해관계가 발산되는 글을 통해

서로의 이권만을 투구하는 양상이 된다면, 그 공간은 이미 지저분한 시궁창이 되어 버리죠.

 

 

저는 기억이란 단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백성은

끝까지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햇던 호르크 하이머의 말도 기억나네요.

과거를 기억하고, 이것이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살펴보는 일

 

이런 목적을 위해 블로그를 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궤적들을 보면서, 더 아름답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가야지 하는 마음......

올 한해 여러분이 있어서 저는 참 행복했어요.

 

이 영화의 주제가 중에 When I dream 이란 곡이 있었는데

딱 제 마음을 그대로 전하네요. 여러분 생각하면서 남은 2007년 한해 정리해야 겠어요

오늘도 송년모임이 또 있어서 이제 나가야 겠습니다. 행복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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