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독일출신의 소설가가 쓴 '아빠의 수염이 빨갰을때'란 책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아 어린시절 앨범을 꺼내보았습니다.
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요. 그냥 예전의 제 모습이 어떠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어린시절 부산에 살았습니다. 아마 5살때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그리 정확하지도, 아스라한 방식을
띄지도 않습니다. 내 5살 시절의 모습은 그냥 이렇군 하고 바라볼 뿐이죠.
동내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이 일렬로 서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 같습니다.
뒤에서 두번째가 저고요. 그때는 항상 사진을 찍으면 차렷 자세를 잘 했습니다.
하꼬방집이란 단어, 샌들 대신 싼타루란 표현이 더 입에 잘 붙었던 시절이지요.
이 사진은 연도를 보니 7살때로 되어 있습니다.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아버지 덕에 음악을 다 좋아했는데요. 큰형은 헤비메탈이란 장르를
특이하리 만치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부분의 그룹 사운드의 이름들이
사실 그때 부터 초등학교 졸업때까지 들었던 것들이죠. 롤링스톤즈, 퀸, 키스, 핑크 플로이드.....
뭐 이런 분들의 앨피판 앨범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사진속 모습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키스란 팝 그룹을 본떠서
큰형이 분장을 해준 모습이에요. 진 시몬즈인가 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그때는 음악을 들어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4인조 그룹으로 기억합니다.
이거 찍고 나서 엄마한테 화장품 많이 �다고 야단을 많이 맞았지 싶습니다.
이건 초등학교 3학년때였지 싶습니다.
그때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카이콩콩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3천원을 주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서 열심히 뛰었더랬죠.
콩콩에는 당시 유행했던 도라에몽(당시는 동짜몽이라 불렀어요) 그림이 그려져 있었나 그럴거에요.
아빠가 찍어주신다고 해서 열심히 뛰면서
딴에 개인기 부린다고 한손을 들고서리......놀던 시절 같습니다.
당시 원 아동복과 컨츄리 이런 브랜드가 대세이던 시절, 엄마는 항상
막둥이는 최고로 키운다며, 아놀드 파마랑 엘덴, 청개구리 그려진 김민제 아동복을
주로 입었어요.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그래도 (엄마의 눈에는) 이뻤나 봅니다.
앞 이빨이 빠져서, 좀 더 우습고요. 이때가 부산에서 살다가
광주로 전학을 갔던 때였습니다. 광주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광주 민중항쟁을 겪었고
10일 넘게 학교를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네요. 친구들이 광주 사투리인지 이빨 빠진 노장구라고 그랬어요
아직도 이뜻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사진이 별로 없네요.
아쉽게.....5학년때 프로야구가 처음 생겼고 당시 해태 타이거즈에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당시 예쁜 티셔츠가 인상적이었지요. 호랑인지 고양인지 구분안가는 야구셔츠랑 모자 쓰고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입니다.
이후 바로 전학와서 그냥 얌전하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보낸듯 하네요.
공부는 지지리 못했고, 단 뛰어난 과목은 영어와 독일어 그리고 국어, 이 세과목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위의 사진은 고등학교 졸업사진이네요.
이 사진엔 요즘 잘 나가는 영화배우가 숨어있답니다. 바로 아래의 배우죠. 같은 반이었답니다.
맨날 서울예전 가고 싶다고 했던 재영이가 생각나네요. 학교에서 재영이 바로 뒤에 앉았었는데
맨날 대사 쳐주고 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 참 없네요. 왜 그렇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지
지금 와서 보면 조금 아쉽습니다.
재영이가 영화에 단역으로 나왔던 것이 아마 초록 물고기란 영화였지요.
한번에 보고 알아봤지요. 그때 술취한 취객으로 나와서 한석규씨에게 한대 맞는
그런 역이었습니다. 이후 잘 안보이네 했더니 언제부터인가 멋진 차세대
배우로 부상하더군요. 부지런한 친구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고, 인상이 좋은 친구였어요.
그러고 보니 이후 재영이가 나온 모든 영화는 다 본것 같네요. 킬러들의 수다에서 부터 최근의 바르게 살자까지요.
웰컴투 동막골에서 북한군 장교역 할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때가 바로 대학 1학년때 였습니다.
옷을 보면 참 촌스럽지만, 그래도 그때는 저런 패션이 유행을 했답니다.
혜화동에서 사진과 들어간 친구가 찍어주었던 그래도 당시 느낌으론, 꽤 잘 나온 사진이었네요.
대학 1학년때는 연극을 좋아해서 혜화동에 자주 나갔습니다.
리타 길들이기란 연극이 생각나고, 피터쉐퍼의 에쿠우스란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좋은 작품들을 많이 하던 시절입니다. 뮤지컬만 있는 요즘과는 아주 달랐죠.
졸업하고 그해 후배들 만나러 학교에 갔다가 한컷 찍었네요.
벌써 10년전 모습입니다. 그때는 안경이 왜 그렇게 동그란 안경들을 많이 썼는지
지금 보면 되게 웃깁니다. 그래도 빛바랜 세피아톤의 옛 앨범을 보다보면
지금의 제가 있어서, 그냥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감사하게 되네요.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때로는 나란히 선 키 큰 나무가 되어
때로는 바위 그늘의 들꽃이 되어
또 다시 겨울이 와서
온 산과 들이 비워진다 해도
여윈 얼굴 마주보며
빛나게 웃어라
두 그루 키 큰 나무의
하늘쪽 끝머리마다
벌써 포근한 봄빛은 내려앉고
바위 그늘 속 어깨 기댄 들꽃의
땅 깊은 무릎 아래서
벌써 따뜻한 물은 흘러라
또 다시 겨울이 와서
세월은 무정타고 말하여져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벌써 봄 향기속에 있으니
여윈 얼굴로도 바라보며
빛나게 웃어라
나해철의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전편
한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과거 속 시간으로 마구 빠져들고 싶기도 합니다.
현재를 사랑하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버겹고 힘들었다면 내년에는 반드시 우리를 들어
회복시키고 더욱 큰 힘 내어 꿈을 향해 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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