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덕수궁에서 비엔나 커피를 즐기는 방법-빈 미술사 박물관 컬렉션을 보다

패션 큐레이터 2007. 9. 5. 00:56

 

저번 주 시간을 내어 보러갔던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컬렉션 전에 관한

글을 오늘에서야 쓰게 되네요. 날씨가 썩 좋지 않았고 약간 흐렸습니다. 주말에 부랴부랴 떠난

일정이었지요. 빈 미술사 박물관은 예전에 한번 가보았습니다.

사실 그 이후로 한번 간다 하면서도 쉽게 기회가 생기질 않더군요.

 

 

오랜만에 덕수궁에 들러서 시원한 분수 아래 앉아 정경도 살펴보구요

이런 날엔 비엔나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으로 들고 나와 벤치에 앉아 마시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이 알고 계신(물론 연원을 따지고 가면 틀린 표현이지만) 비엔나 커피도 오늘 보시게 될

합스부르크 왕조 컬렉션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때 오스만 투르크(오늘날의 터키)와의 전쟁에서

이기게 되고 그 전리품으로 얻게 된 것이 바로 커피열매였습니다.

 

이후 비엔나에는 경쟁적으로 커피 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지요. 하지만 비엔나에는 이 비엔나 커피가 없다는 사실....알아두세요.

원래 이 비엔나 커피의 원어는 아인슈패너라고 한답니다. 마부들이 한손으로 말고삐를 쥐고

또 다른 한손에 설탕과 크림을 가득 부어 마셨던 커피였지요.

이번 빈 컬렉션은 65점이 왔습니다. 적지 않은 대여라 생각하고요.

그중에서 몇점만 골라서 설명할께요.

 

 

<작은 꽃다발>

얀 브뤼겔, 1599년 이후, 캔버스에 유채

 

미술사에서 항상 거론되는 작가지요. 얀 브뤼겔의 작품 작은 꽃다발입니다.

꽃병위에 흐드러게 섞여 피어있는 꽃들의 빛깔이 곱습니다. 연보라와 황색, 적색이 화면 가득

마음의 점을 찍어내듯 피어나고 있지요. 이 작품에 주목해야 할 사실은 1600년경이 되면서

꽃을 정물로서 그리는 전통이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독립적인 회화 양식이 된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의 이면에는 바로 화무십일홍이라고 할까요?

아름다운 꽃들이 너무나도 빨리 저버리는 이 허무함, 삶 또한 이 꽃의 운명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그린 그림이지요. 이런 주제들을 흔히 <바니타스(Vanitas)>라고 합니다,

영어의 Vanity 지요. 화병이 놓여진 나무 책상위에는 떨어진 꽃잎파리와

동정과 장신구 반지들이 늘어져 있습니다.....우리의 소유물 또한 저 꽃의 운명으로 부터

시간성의 힘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는듯 하지요.

 

 

<아침식사가 있는 정물>

얀 다비스존 드 헤임, 1635년경, 캔버스에 유채, 78*60cm

 

앞에서 보신 바니타스 주제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바로크 시대는 바로 인간에 대한 확신이 아주 견고해지는 시기입니다. 산업 자본주의가

그 맹아를 뿌리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죠. 내 자신의 확실성, 데카르트 뭐 이런 것들이 사실 떠오릅니다.

자본주의가 삶의 다양한 국면으로 퍼져가면서, 여기에 대한 일상의 반성

혹은 조금씩은 우리를 뒤돌아보자는 마음들이 반영된 그림, 이것이 바로 바니타스 회화입니다.

 

 

<주피터와 안티오페>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 1546, 캔버스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그리스 신화에서 바람둥이였던 주피터는 항상 많은 여신들

혹은 지상의 여인들과 염문에 빠집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도 바로 테베왕의 딸인 안티오페에게

양의 모습을 한 사티로스로 분장을 하고 다가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죠.

서로의 육체를 갈망하고 접촉을 희원하는 모습이 아주 에로틱하게 잘 그려져 있습니다.

나체의 곡선이 아주 유려하고도 자연스럽게 잘 포착되어 있지요.

 

 

<거울을 들고 희롱하는 남녀>

한스 폰 아헨, 1596년, 캔버스에 유채, 루돌프 2세 컬렉션

 

개인적으로 이번 65점 그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입니다.

 남녀의 친밀한 순간이 거울속에 투영되며 우리들 마음속에 따스하게 녹아내리고 있지요.

그림 속 주인공은 화가의 그의 아내 레기나 디 라소입니다.

새장 속의 앵무새는 바로 가정을 의미하는 상징이지요. 꼭 구속이란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이 그림을 그리도록 명령했던 루돌프 2세는 화가에게

결혼의 행복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렇게 흔히 말하는 설정 그림이

만들어 집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앞에서 말씀드린 <바니타스>의 흔적이

남아 있지요. 바로 거울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우리들이 생의 시간성을 느끼고 발견하듯

 던지면 언제든지 깨어져버릴수 있는 작은 소품이기에, 우리들은 그 거울 앞에서

항상 삶을 위한 우리자신의 <얼굴>을 준비하는 거겠지요.

 

 

<바쿠스, 케레스, 아모르>

한스 폰 아헨, 1600년경, 캔버스에 유채

 

그림 속 남녀의 시선을 보세요. 아주 따스하게 서로를 보면서

껴안고 있습니다. 바로 술의 신인 바쿠스와 곡식의 수확을 관장하는 여신 케레스입니다.

친밀한 느낌이 잘 살아있지만 에로틱한 의미를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말 그대로 곡물을 빚어 술을 빚어내는 그 자연스러움

아마도 이 그림은 이 두 존재의 상호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듯 보입니다.

 

 

<흰옷의 어린 왕녀 마르그리타 테레사>

디에고 벨라스케즈, 1656년경, 캔버스에 유채, 105*88cm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벨라스케즈의 <하녀들, 라스 메니나스>에

나오는 꼬마 주인공 마르그리타 테레사의 초상입니다. 혹시 또 모르실까 아래에

참조 그림을 붙입니다. (사실 왠만한 미술교양서 사시면 이 그림은 다 해설이 되어 있지요)

 

마르그리타가 입은 옷도 너무 앙징맞고, 당시 유행하던 드레스 형태도

눈에 들어오구요. 당시 장미장식의 펜던트를 가슴에 크게 하는 것이 일종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다고 하죠.

어렸을땐 이렇게 귀엽던 아이가 성인이 되면 좀 얼굴이 이상하게 변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불행의 시작이죠.

바로 근친혼에 의한 결과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번 전시는 초반부터 큰 도록을 사서 꼼꼼히

읽으면서 하나씩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도슨트가 설명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저는 항상 혼자보면서 생각하고 밑줄 귿고 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도록이 전시순서와 같기 때문에 보기가 좋게 편집이 되어 있어요.

 

 

전시 끝나고 오랜만에 들른 덕수궁.....곳곳을 다니며

작은 풍경들을 담았습니다.

 

 

요즘은 세밀하게 풍경을 살펴보는 일이 즐겁더군요.

우리가 우연하게 만들어 놓은 그 풍경에도 얼마나 숨겨져 있는 다양성들이

포착되는지 모릅니다.

 

 

덕수궁에서 느끼는 가을의 시간성

그 유연함과 왠지 모를 쓸쓸함이 우리를 감싸고 돕니다

 

 

고즈넉한 풍경과 작은 궁전의 테우리를 감싸고 도는

소나무들의 형태와 그 섭생의 방식이 흑백으로 찍어내면 더욱 예쁠것 같더군요.

 

 

끝나고 나서 제가 잘가는 커피하우스에 가서 크림을 듬뿍 담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물론 산책을 많이 했으니 살은 안찌려니 하면서 말이죠.

비엔나에 올해는 비즈니스가 없습니다. 가기는 어려울듯 하고요.

 

이달 중순쯤 일본의 미술관과 갤러리 시스템을 살펴보기 위해

떠납니다. 동경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 그 운영방식들을 살펴보려고 해요.

비엔나에도 정말 한번 다시 가고 싶네요....사진 속의 저를 보니 세월이 화무십일홍인듯 합니다.

점점 늙어가네요.....그래도, 저는 바니타스 보다는 여러분과 함께 예쁘게 살아가길

그렇게 곱게 늙어가고 싶어요. 여러분도 그러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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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잔향입니다. 그림을 보고 나서 커피를 마시면 꼭
그림에서 느꼈던 잔향들이 볼우물 가득 담겨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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