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미술 속 '대한민국 직딩들의 세계'

패션 큐레이터 2007. 3. 23. 20:19

 

구본주_부부_나무_50×50×250cm_2003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깊이가 이제 봄이 점점 더 완연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집에 오는 길, 도서관에 들러 미학자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빌렸습니다. 한국인의 모습을 근대와 전근대, 미래의 시제로 표현한

작은 테마밑에는 다양한 우리시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이 콜라주 되어 있지요

 

쓱 한번 지하철에서 훓어보다

고 구본주 선생님의 조각작품들이 보이더군요. 살아계실때 부터

이분의 작품을 참 좋아했더랬습니다. 특히 이분의 '배대리 시리즈'는 정말 직장인인

제겐 뼈아프게 와닿는 조각작품들이었지요.

 

 

구본주_위기의식_나무_200×70×25cm_2000

 

사오정과 오륙도를 넘어 삼팔선이란 말까지 나오는 시대

더 이상 시스템에 붙어먹는것이 점점 더 어려워 지는 시대의 자화상 속에

우리 직딩들의 모습을 담아낸 구본주 선생님의 작품을 오늘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분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도시 노동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신 분이죠. 저는 이분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때, 과연 이것이 조각작품인가 하고

놀랐었습니다. 마치 실제 사람위에 구리액을 부어낸듯, 표정과 옷차림, 넥타이를 맨 형상이

직장인들의 고초와 긴장, 조직속에서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렇게 명징하고 포착해낼수가 있을까? 정말 놀라움으로 가득했지요.

 

 

구본주_가족-편안한_귀가_철_20×140×40cm_1999

 

어린시절 아빠의 떨어진 뒷굽을 보면서, 주말에 몰래 들고 나가

수선을 하고 광이  나게 닦아 놓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댓가로 받은 1000원의 용돈.

예전 윤흥길씨가 쓴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었죠

이 작품을 볼때, 작품 속 권씨 아저씨를 생각했습니다.

 

귀가길엔 항상 가족을 위해 두손가득 먹을걸 사오는 것이

아버지에겐 당연한 것인줄 알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본주_눈칫밥 삼십년_철_20×70×70cm_2002

 

저도 그랬지만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꽤 긴 시간을 연수란걸 하게 되죠

저도 용인에 있는 그 자칭 사관학교라 불리는 연수원에서

6시에 일어나 구보하고 강의듣고 산악자전거도 타면서 참 쉽지 않았던

시간들을 보냈었답니다. 자본주의 시대엔 권력의 중심점이 국가가 아니라 기업으로 넘어오면서

기업들이 구성원인 직원들의 신체까지 규율하고 조정한다는

진중권의 말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하긴  모 회사에선 협력업체 사람들을

불러 마라톤을 시키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한분은 심장마비로 죽기까지 했으니까요

 

작품 속 주인공처럼 대기업의 눈치를 보고, 상사의 눈치를 보고

요즘은 다면평가다 뭐다 해서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는 직딩들의 눈칫밥은 과연

어느 정도의 뜸이 든 밥일까....하고 웃어봅니다.

 

 

구본주_미스터 리I_나무_180×20×50cm_1995_부분

 

 특히 한국처럼 아직까지도 주말에도 회사를 위해 당연히 일해야 한다는식의

개발독재풍의 사고가 남아있는 지금, 여전히 이 땅의 직딩들은

그 힘들고 비루한 생의 나날들을 채워내고 버텨내기 위해 고생합니다.

배부른 소리가 아니냐구요? 수많은 실직자들이 넘쳐나는데

무신.....할 분들이 많겠지만 입장이야 다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구본주_배대리의 여백_나무, 철_200×200×150cm_1993

 

저는 구본주 선생님의 배대리 시리즈를 좋아하는게

이때가 제가 진짜 대리직급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라서요

사원도 아닌것이 중견간부도 아닌것이, 항상 중간에 치여서 우리에게도 내일이 올까

하고 살아가는 직딩의 모습이 너무나도 눈물나게 했습니다.

 

 복도를 걷다가 문이 열린 낯선 공간에 눈이 끌린다.
십 수년을 한 직장에 다닌 내게도
아직 회사 건물 속속들이는 낯이 설다.

가보지 못한 곳, 열지 않은 곳이 이렇게 많구나
살면서 수없이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속도
저렇듯 여러 길이어서, 숨겨둔 구석구석을 품고 있어서
가보지 못한 곳이 많구나 생각하니 멀었지 싶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속도
지나지 못한 길과 가서 닿지 못한 그만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아, 아직도 더 많이, 더 끝까지 가보아야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이명희의 <어느날 회사에서> 전편

 

대한민국 직딩여러분, 힘들어도 우리 버텨봐요

힘내시구요. 대한민국 화이팅. 오늘은 스티브 브라카의 Flying을 골랐습니다.

주말 멋지게 비상하는 시간들, 쉼의 시간들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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