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그녀....벗어버리다-루이 산치스의 사진세계

패션 큐레이터 2004. 2. 15. 00:09

S#1-Smoke Get in Your Eyes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의 '가지 않을수없는 길' 중에서

 

 

S#2-Reflection on Luis Sanchis

오늘은 꽤 긴 시 한편을 올리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유독 오늘 써 내려갈 사진작가 루이 산치스의 작가론의 서문격으로 말이죠. 상업과 예술의 경계선에서 오롯하게 자신을 일구어 가는 작가들. 아마도 패션사진 분야에서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는 가장 크게 드러나는듯 합니다. 흔히 패션사진을 가리켜서 Double-Spread (잡지의 양면에 걸쳐 나타나는 사진의 속성)예술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만큼 많은 대중들의 시선을 두 페이지에 걸쳐서 고정시고 그 속에서 가두어 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일듯 합니다. 오늘 소개할 루이 산치스는 스페인에서 출생해서 마드리드에서 영화와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그 후에 뉴욕으로 자신의 근거를 옮겨 작업하고 있습니다. '페이스' '영국판 보그지''아레나'등 세계적인 패션매거진을 중심으로 자신의 특유한 빛과 대상에 대한 이해를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S#3-On the Road

루이 산치스의 정조어린 빛의 이해와 조명, 무엇보다도 스페인 예술이 가지고 있는 초현실주의적 특성들이 패션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상업의 이중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작품은 그의 대표연작인 '사막'시리즈와 '마돈나'와 '케이트 모스''비주 필립스'등의 인물사진입니다. 그의 고정적인 렌즈속에 포착되는 유명인들이죠. 보스턴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작품전들을 보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세계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신비한 보라빛이 가득한 그의 화면속엔 꽃과 어우러진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다소 비현실의 경계속에 위치합니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심각하게 미학적인 이해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 다만 몽환적인 그의 이미지 속에서 실제로서의 '나'를 감추고 혹은 상실할수 밖에 없는 수많은 연예인들의 모습을 찍어갈 뿐입니다.

 

 

보스턴은 조용한 도시입니다. 그곳은 산책의 도시답게 걸어서 갈수 있는 모든 곳들의 이정표들이 가지런히 길을 타고 즐비하게 놓여져있습니다.느리게 걷기를 예찬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걷는 우리 안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졈글어 가는 보스턴의 다양한 풍취들을 맛보기 위해서도 천천히 걸어 미쳐 보지 못했던 사물의 방식과 의미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느리게 걷는 과정은 이를 통해서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물안개 자욱한 M.I.T 보트클럽. 흐르는 강물위를 스쳐가는 요트들의 움직임이 그리 유연하지만은 않더군요. 바람이란 것을 이용할줄 알아야 하고거기에 몸을 맡길줄 알때 배를 탄다고 했던가요.......그래서 숙명이란 아직까지 제겐 불가해한 세상의 흔적인가봅니다. 루이스 산치스의 전시회가 열렸던 보스턴을 한발자국 한발자국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이해해 볼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산치스에게 아직도 순수예술과 상업예술로 구분되는 견고한 이분법의 세계,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이 그에게 운명이었고 가야만 하는 길이었듯, 우리 내 생에도 그러한 길이 있음을 발견하고 주목하고 힘을 실어낼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출처]뮤크박스 잭키 테라슨의 'Smoke get in your eyes'

오늘 들으시는 곡은 재즈 피아니스트 잭키 테라슨의 연주로 듣는 Smoke get in your eyes 입니다. 오늘 하루 가을 햇살아래 느리게 걸어보시는 것은 어떤지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김홍기의 사진읽어 주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