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MBA 다이어리 79-살아있는 자를 위한 희망의 퀼트

패션 큐레이터 2003. 7. 16. 05:24






S
캐치미 이프유캔














S#1-The
Image as Memorial


오늘은
지난번 뉴욕 스토리에서 잠깐 다루었던 포토
저널리즘 작가 루이스 하이네를 좀더 깊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동시에 그가 포착했던 워싱턴의
풍경과 근현대사의 상처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워싱턴 D.C라는 곳이 단순히
미국이란 거대기계의 행정수반도시의 기능을 넘어
국가적 이념을 어떻게 재현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상징적 조작을 통해 통합해 왔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홍기의 동북부 여행의 3번째 기착지는
바로 이곳 워싱턴입니다. 행정의 수도로서
미국이란 거대한 제국을 움직이는 실제적인
행정관청과 기관들이 밀집해 있고 세계의
박물관이라는 스미소니언과 건축가 I.M. PEI 의 미학적
체취가 뭍어나는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근현대사의
문화적 기억들이 고스란히 멈추어진 시간속에
응고되어 있는 곳 워싱턴에서 보낸 한철의
기록입니다.











위의
사진은 하이네가 워싱턴 D.C에서 일하고 있는
신문팔이 소년을 포착한 1912년 작품 'Newsboy'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사진작가 루이스 하이네는
카메라의 눈을 통해 그 당대의 사회적 부조리와
현실을 고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프리랜서
작가로서 그 당시 '국가 아동노동위원회'의 위촉을
받아 초기 자본주의, 노동의 소외가 극심했던
시대에 광산과 북동부 지역의 열악한 노동조건의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위의 작품을 한번 자세히 응시해 보세요.
신문을 파는 아이들의 노동조건. 늦은밤에서
이른아침까지 자지도 못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그
아이는 그 당시 수많은 경쟁사 언론기관들이 매수한
폭력조직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 일수였고 수많은
밤거리의 위험한 요소들에 쉽게 노출 되어 버린 것이죠.

하이네의
초점은 화면상에서 정 중앙에 놓여있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작은 몸집의 이 아이가 먹거리를 위해 노동해야
하는 거대한 도시의 모습을 뒤로 한채 소년의
외로움과 상처받기 쉬운 감성이 화면 가득
메웁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한 여인이 화면에서
무심하게 그냥 지나쳐 가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소년이 경험하고 있을 고통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으로
말이죠. 아마 하이네는 이러한 포착의 미학을 통해
사회적인 악을 드러내고 응시하는 이들로 하여금
개혁에 대한 의식을 일깨웠던 것 같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워싱턴과 기타 북동부지역에서 그가 포착한
아동의 노동착취와 빈민계층에 대한 이미지들입니다.





















S#2-Today
: Making
a Quilt out of Cultural Memory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정이란 단순히 법의 정비와
국가적 기관망에 대한 효율적 운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듯 합니다. 행정은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대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 백성들을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통합하고 모을수 있는
전략을 짜내야 하는 것이죠. 아래에 보이는 사진은
AIDS 미모리얼 퀼트라는 것입니다. 1985년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인권 운동가였던 클레버 존스는
게이였던 시장 조지 모스코브와 시청감독이었던
하비 밀크의 암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시위를
조직하게 됩니다. 이 당시 그는 샌프란시스코에만
1000여명이 넘는 AIDS 의 희생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위에 동참할 사람들에게 AIDS로 죽은
그들의 친구와 가족의 이름들을 플랭카드에 써서
그것을 들고 같이 행진을 할것을 촉구하게 되지요.
이들은 플랭카드를 샌프란시스코의 연방건물
외벽에 붙이게 되는데요. 이것이 마치 멀리서 보면
헝겁조각들을 이어 붙인 패치워크된 퀼트처럼 보여졌다고
합니다.


여기에
고무된 존스는 더 나아가 좀더 큰 기념물을 만들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NAMES 프로젝트 재단'을
건립하고 처음으로 AIDS 기념 퀼트를 만들어 전시하게
되지요. 대중의 반응은 너무나도 즉각적이었고,
뉴욕과 LA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퀼트를 보내게 되지요.
이것들을 한데 모아 드디어 1987년 9월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 1920개의 퀼트가 한 자리에 모여 보여지게
됩니다. 이 때 함께 이루어졌던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의
인권선언과 행진과 맞물려 퀼트는 정확하게
일주일동안 50만이 넘는 사람들이 관광을 하고 가는
엄청난 이벤트로 성공을 거두게 되지요.
















이 후로
엄청난 대중적 호응에 힘입어 AIDS 퀼트는
전국투어에 들어가게 됩니다. 20개 도시를 돌면서
퀼트를 구성하고 있는 패널의 숫자는 거의 3배로
늘어 6000여개로 성장하게 됩니다. 1989년 백악관 앞
엘립스 광장에 전시된 퀼트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보실수 있습니다. 그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이 AIDS퀼트 프로젝트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픈 현대사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예술적 작품으로서 혹은 AIDS에 의한 희생자들을
기리고 이 병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는 교육적
기능등을 충실히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퀼트가 표현할수 있는
죽은 자에 대한 추억과 아련한 상처들이 패널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다는 것이죠.



AIDS희생자들의
사진과 천조각 옷가지등으로 구성되는 그 패널들을
자세히 보면 죽은 자의 생전의 모습과 AIDS발병
이후의 모습이 박혀 있는 퀼트를 볼수 있습니다.
퀼트 자체의 촉각적 느낌과 섬유소재들의 특성을
통해서 죽은자의 육체가 따뜻하고,사랑스러우며,만질수
있는 성격의 것으로 변해 우리의 응시앞에
귀환되는 미적 효과에 주목하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AIDS 퀼트 프로젝트는 퀼트가 가지는 예전의
전통적 의미를 새롭게 재규정하고 사회학적 성찰과
목소리를 아우르는 매체로서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퍼슨
메모리얼과 워터게이트 컴플렉스의 모습입니다.
워싱턴에는 많은 메모리얼 즉 기념관들이 있습니다.
왜 행정수도인 이곳엔 그렇게도 많은 과거의 기억들을
모아놓은 저장고들이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요.
워싱턴에는 미국의 초기역사에서 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모든 문화적 기억들이 한편의 퀼트처럼
짜깁어 있습니다. 심리적 상처들을 아우르는 기억의
퀼트 이기에 그것은 행정이란 국가 운영의 정신적
측면들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제가 워싱턴을 갔던 날이 바로
6월 25일이었습니다. 바로 한국전이 발발했던 그 날이었지요.
앨링턴 국립묘지를 거쳐 다양한 메모리얼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 서울은 얼마나 이러한 문화적
기억들을 아카이브화 하는 작업에 성의를 가지고
임했는가를 다시 한번 물어보게 됩니다.
찬연한 한반도의 역사의 중심지 서울이 과연 이
워싱턴D.C보다도 한반도의 공동의 기억의
저장고로서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중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거의 배경들만 찍는
편인데 자꾸 정작 제가 찍은 사진을 올릴때는
증명사진만 올리게 되는거 같네요. 여기엔 사실
제가 쓰는 이 글이 Armchair Traveller(여행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실제로 간 것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의
글이 아님을 보이기 위한 약간의 의도가 있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워싱턴에서 보낸 기억들이
새삼 더 오롯한것은 아마도 여행 첫날이 6.25였기
때문도 있고, 아픈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많은 메모리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미국의 문화적
배양력에 한편 부러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최근에 다양한 아카이브를
만드는 문제로 문화부와 지식인층 사이에 다양한
의견들이 교환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좋은
결과들을 맺어서 행정적으로 실천되기를 먼 곳에서
바램해봅니다.




src=http://www.puckii.com/asx/single/91/91789.asx
loop=true width="277" height="45">

S.E.N.S의
'러브'라는 연주곡입니다. 아픈상처를 봉합하는
우리 마음의 퀼트를 한편 짜깁어 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상처는 그 위에 새살을 돋게 하고
새롭게 치유된 그 위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한
지점이지 탐닉에 빠져 스스로의 상처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배우게 된 여행이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면서.....첫번째 워싱턴에서의
나날의 기록을 마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김홍기의
사진읽어주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