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당신을 위한 그레이스...앨빈 에일리에게 바친다

패션 큐레이터 2005. 5. 23. 16:43

 

S#1-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지난 토요일엔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현대 무용가 앨빈 에일리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흑인 안무가였던 그의 작품을 보러가는 것은 사실 제겐 첫 경험이었습니다.

 

교육방송에서 보았던 부분적인 것들이 다였던 저에겐 그의 공연은 아주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는 현대무용의 관점에서 보면 블루스와 포크송 그리고 가스펠과 같은 흑인 특유의 감성적 언표들을 자신의 안무 속에 용해시켜 남부 흑인의 체험적 삶의 방식을 표현한 무용가입니다.

 

사스 로저스에서 태어난 그는 UCLA에서 수학을 하고 1949년 레스터 홀턴 무용단에 들어가게되지요. 그곳에서 그는 홀턴아래서 사사를 하게 되고 1953년 홀턴의 사후 그는 극장의 디렉터가 됩니다.

 

그 해 그는 뉴욕으로 이주, 그곳에서 다양한 무대상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 당시 그는 미국의 저명한 안무가였던 마사 그래함과 챨스 와이즈만, 로리스 험프리 아래서 자신의 세계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1958년 자신의 무용단을 창설하게 된 앨빈 애일리는 그 후로 많은 안무가들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서 올리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렌즈로 작품의 빛깔을 새롭게 더하는 작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1960년대 드디어 그는 3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의 명작 계시(Revealation)을 안무하게 됩니다.

 

29살의 나이.....그는 이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유년시절의 교회에서 체험한 다양한 경험들과 믿음에 대한 소박한 희망, 16세기 화가 브뤼겔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우화들, 이 모든것들이 블루/화이트/엘로우빛 삼원의 상징 속에서 충분히 녹아내려지면 보는 이로 하여금 '은혜'에 대한 사유에 빠지게 합니다.

 

토요일은 은총(Grace), 역행하는 미묘한 흐름을 따라(Following The Subtle Current Upstream), 계시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은총'은 대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쉽게 읽혀지지 않았기에 논평을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작품에서 부터 서서히 그의 무용속에서 특징이라 느껴지는 흑인 특유의 리듬감과 역동적이며 빠른 템포로 이행되는 유연한 신체들의 무브먼트속에 빠져가기 시작했습니다.

 

 

 S#2-당신을 읽어가는 일......

 

 안무가 알론조 킹이 앨빈 애일리 무용단을 위해 안무한 이 작품은 물의 흐름과 그 운동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규정된 길.....벗어나서도 안되며 지켜야 하는 그 시대마다의 신념의 체계와 같은것. 이러한 'Doxa'의 세계의 우리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작품같았습니다. 슬픔과 기쁨, 긍정과 부정, 이 두개의 긴장된 힘의 항들을 가열찬 시선으로 응시하고 극복해 가는 몸의 언어가 제 자신의 동공속에 오버랩 되더군요.

 

무용단의 대표작 '계시'는 1800년대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흑인의 역사를 무대에서 보여주며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을 보는 순간, 정말....'은혜'란 두꺼운 무게의 언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화의 강을 넘어 가는 여정, 그 이후에 내게 다가오는 신의 음성.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무용단 답게 그들의 작품속에서 보여지는 신의 시선은 아주 원색적이면서도 투명한 골드빛을 띠게 됩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난 황토빛 땅의 운명속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의 삶들이 오롯하게 드러납니다. 두번째의 시선에서는 바로 정화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물의 빛깔과 순수의 빛이 드러나게 되죠. 이후 화려한 황금색 의상으로 신명난 춤을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보는 일은 매우 도전적이면서도 고전에 가까운 그의 작품들을 경험해볼수 있었다는 것은 제겐 매우 기쁜 일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척박하기만 무용관련 해외 공연의 내한이, 이번 기회로 좀더 많이 활성화 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