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완주 공공 도서관 특강을 마치고-삼례문화예술촌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9. 7. 31. 18:21



지방으로 강연을 가는 것이 힘겨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충분한 강의 수요도 그 이유겠지만, 사실 지방으로 가면 서울에서 두 번 할 강의를 한 번 밖에 하지 못한다는 마음 속 계산이 있었죠. 지금도 이 경향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다만 놓친 것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유튜브나 관련 매체를 통해 강의를 개방해도, 지방에서는 패션사 강의를 듣기가 쉽지 않고, 지방에선 항상 강의를 갈급해하지만, 제약이 많았던 터이지요.



원래 이번에도 강의 일정을 잡기는 쉽지 않았지만, 내심 완주란 도시를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전주만 해도 시청사나 전북대학교 등 다양하게 특강을 다녀봤지만 완주는 저로서는 처음인 곳이었거든요. 되돌아보면 유럽의 시골마을은 잘 다녔지만, 정작 내 나라, 내 산하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도시촌놈'이었습니다. 저란 사람이요. 이번에 다행히 완주 공공도서관의 특강 요청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먼저 전주에 내려, 무더운 여름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공원을 산책했고요. 이어서 완주에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이란 곳에 다녀왔습니다. 



일제시대, 양곡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지은 양곡창고가 있던 곳은 지역의 예술가들과 문화사역자들이 활동하는 멋진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미술관과 목공예 스튜디오, 극장, 책을 만드는 작업소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활동이 이뤄지는 곳이었습니다. 



목공예 스튜디오를 운영하시는 작가님의 작품들입니다. 고아한 정취가 나무의 결과 칠을 통해 아스라히 드러나고 있지요. 



옆의 삼례 성당도 참 곱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옆의 책공방 스튜디오에 들렀습니다. 이곳 매니저로 있는 이승희 님과는 강연 때 한번 뵙고 페이스북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가 이곳에 들르면서 드디어 뵙게 되었지요. 이날 저 보다 더 멋진 한 분의 손님을 함께 뵈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다루는 한 권의 잡지 프리즘 오브 프레스의 유진선 대표님이었습니다. 저도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긴 수다가이어졌습니다. 삼례문화예술촌이 앞으로도 제 기억속에 오랜동안 남게 된다면 그것은 이 예술촌이 갖고 있는 정취와 콘텐츠도 한 몫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의 만남의 밀도와 그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일은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한 순간의 명멸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아교가 되는 일이니 말이에요. 



방명록도 썼습니다. "책 표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소브라코페르타'는 맞춤 재킷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책은 우리의 삶을 맞춤해주는 강력한 한 벌의 옷 입니다" 라고 남겼네요.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한다는 것, 게다가 책이라는 이 녹록치 않은 매체를 가지고 미시사를 쓰려하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툭하면 스토리텔링을 말하지만 정작 이 단어를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너무나 손쉽게, 스토리텔링의 힘과 로컬을, 삶을, 정체성을 연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입만 살아서, 가난하고 비루한 작은 지자체들, 작은 시골마을들, 이런 곳에서 주민들의 역사를 담대하게 미시사로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입말 장사꾼'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칭 문화콘텐츠학과니 하는 곳에서 밥 먹고 사는 자들의 행태가 항상 이러하지요. 정작 현실에서 힘겹게 한뼘의 거리를 나아가기 위해 온 힘을 쓰는 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힘을 내어 경주를 끝까지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