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트렌드를 탐색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소매업의 죽음

패션 큐레이터 2017. 9. 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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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usiness of Fashion 라는 사이트를 매일 간다. 패션산업 정보를 월정액만 내면, 꽤 깊숙히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WGSN과 같은 정평있는 패션예측회사의 보고서도 읽는다. 나는 소매업, Retailing 에 관심이 많다. 내 인생의 첫 커리어가 소매 체인의 패션구매였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경영학과에 소매업 관련 과목이 없었다. 신세계 입사 후, 비로소 소매업 경영(Retailing Management)책을 아마존에서 사서 봤다. 현업과 공부의 즐거움을 연결하게 된 건 그때부터다. 매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읽는게 너무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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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 경합하는 시각을 해외 사례연구나 논문, 인터뷰를 읽고 글로 정리했다. 물론 딱 써먹을 수 있는 해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의상학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주말엔 전문패션 학원에 다녔고, 소재와 컬러, 재단공부도 했다. 커리어를 갖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내 대학시절 전공은 경영학과 연극영화다. 남들은 전공 편차가 너무 크다고 비난을 하곤 했는데, 되짚어보면 연극/영화 공부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연극을 통해, 무대에서 사람들의 몰입을 창조하는 방법에 대해 눈을 떴다. 삶이 무대이듯, 리테일 매장은 연극무대와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내게 장면을 분석하고, 하나의 씬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기술을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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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오늘 Business of Fashion 뉴스레터에 리테일 전문가 더그 스테판스가 쓴 'To Save Retail, Let It Die : 소매업을 살리려면, 일단 죽게 나둬라' 라는 기사를 읽고서 느낀 점이 많아서다. 나는 그가 쓴 <소매업의 리엔지니어링>란 책을 올 4월에 이미 읽었기에 그의 글에 눈길이 갔다. "Stop thinking 'product' and start thinking productions" 제품이 아닌 생산과정 전체를 사유하라는 뜻이리라. 이때 생산과정이란 제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제품 정보를 접하고, 현장에서 제품과 조우하고, 사용하고, 이를 폐기하기까지 전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존이 모든 제품의 카탈로그가 되어가는 시대, 집과 자동차, 제품이 하나로 연결되고, 제품 스스로 재고를 채우는 때가 되면, 분명 오프라인 매장들은 지금보다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매장은 앞으로 연극무대와 같은 기술을 더 요구받을 것이라는 말에, 갑자기 도전감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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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과 같은 공룡이 평생 유지되리라는 법은 없다. 결국 '쇼핑은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본원적 행위를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하고, 여기에 맞는 판매기술과 매장의 형식을 찾아내는 것이 해결책이다. 더그 스테판스는 매장 내 로봇 기술에 투자하거나, 최고 인력을 구하기 위해 비싼 급여를 각오하라. 이제 중간지대는 없다고 말한다. 나는 기술변화가 잉태하는 쇼핑문화의 변화가 항상 놀랍고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