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멜라니아는 미국패션의 아이콘이 될까?-패션 스타일의 정치학

패션 큐레이터 2017. 1. 22. 22:30



패션, 보수의 가치를 말해줄까? 


말 많고 탈 많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다. 취임행사에 들어간 엄청난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수 천명의 반대자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퍼져나왔고, 여성들의 행진이란 행사는 트럼프 체계에 대한 미국 사회 내부의 비판자들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강력한 사건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정치적 파고는 두고두고 트럼프를 괴롭힐 것이란 관측이다. 반대파의 대대적 공세와 목소리를 유념한 탓인지, 취임식장과 이어서 펼쳐진 무도회에, 퍼스트 레이디가 보여준 패션도 절제된 느낌의 드레스들이 눈에 띤다. 우아하고 위엄있는 '톤'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새롭지는 않았다. 멜라니아는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디자인한 매력적인 청색의 드레스와 재킷을 입었다. 1961년 캐네디 대통령의 영부인 재키의 의상과 비슷한 느낌을 발산한다. 그녀의 의상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입었던 붉은색의 야구모자와 대조를 이루면서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내긴 했다. 하지만 참신함은 딱 거기까지였다. 



멜라니아의 취임식 패션, 새로운게 없다.


멜라니아의 패션 스타일은 지속적인 진화의 과정을 겪었다. 메탈릭 소재를 좋아하던 전직 패션모델은 언제부터인가 중간색의 차분한 컬러 팔레트의 옷을 골랐다. 여기에 딱 달라붙는 소재대신 부드럽게 재단된 옷을 지속적으로 입었다. 남편의 정치적 행보에 맞추어, 보수층 표심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이번 취임식 패션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 긴 머리를 올려서 깔끔하게 뒤로 묶은 스타일, 여기에 재킷의 높은 목선은 60년대 캐네디 대통령의 영부인 재키가 입었던 베이지색 올레 카시니 코트의 실루엣을 그대로 닮았다. 그녀의 이미지 메이킹은 인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얼음장 같은 퍼스트레이디 클레어 언더우드를 역할 모델로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스무레한 느낌을 베껴온 느낌이다. 


보수든 진보든, 패션의 스타일링에 있어서, 누군가 아이디어와 영감을 캐낼 뮤즈를 필요로 한다. 멜라니아에겐 냉혹한 워싱턴의 정치판에서, 얼음장같은 이성을 가진 클레어 언더우드란 극중 인물이 자신의 세부적 미래의 영부인상을 담고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따라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공식석상에서 클레어 언더우드가 보여주었던, 조직을 다루는 능력, 타인을 설득하는 어휘구사력, 조직개편을 하고 누군가를 잘라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책임을 미루고, 타인의 눈물에 동요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미워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물론 극의 허구적 인물이라 해도, 그 이미지를 덧입고 싶다면 그만큼의 내공은 가져야 한다. 멜라니아라고 해서 다를바 없다. 이제 그녀는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생각보다 이 시험대에서 제대로 성공을 해낸 퍼스트 레이디가 많지 않다. 



랄프 로렌이 그녀의 취임식 옷을 만들게 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톰 포드를 비롯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멜라니를 위해 옷을 디자인하는 문제를 거부해왔고, 그 가운데 랄프 로렌과 에르베 피에르, 두 디자이너가 옷 문제를 해결했다. 멜라니아가 취임식 선서 이후, 기념 무도회에서 입은 바닐라 색의 오프 숄더 드레스는 에르베 피에르라는 전직 캐롤리나 헤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작품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구조적인 재단법으로 만들어진 드레스에, 붉은 색의 끈 한줄이 포인트다. 하지만 보수적 풍취가 도는 옷을 입힌다고, 내면의 철학까지 포장할지는 의문이다 그녀가 입은 블루가 평화적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지만, 뭐 그건 지켜봐야 할 일이다. 톰 포드가 멜라니아를 위해 옷을 디자인하기를 거부하며 '미국의 영부인은 메이드 인 어메리카 옷을 입어야 하고, 디자이너의 옷이 아닌,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일침했다. 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3년간 4억원에 가까운 돈을 쓰고도, 그 어떤 패션외교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예를 보면 볼수록 그렇다.


톰 포드의 일갈 이후 '나는 톰 포드의 팬이 아니다'라는 언론 플레이나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 언행과 태도, 무엇보다 타인의 의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있게 표현하는 능력이 얼마나 정치가와 그 가문, 자신의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그를 통해서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미국에서 보수쪽 대통령이 될 때마다, 퍼스트 레이디의 패션들을 살펴봐왔다. 안타깝게도 보수층의 목소리를 담기보단, 영국의 상류층을 흉내내고, 정신적으로 묶여 있는 트라우마를 더 많이 보여준 이들이 많다. 특히 패션 전문가들이 멜라니아를 '빨기' 위해 예로 드는 낸시 레이건이 그랬다. 스타일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것이란 말을 나는 믿는다. 여기에서 소유(Possess)란 내가 꿈꾸는 정신의 형상을, 이념성을 통해 물질화해내고, 자신의 꿈이 가진 '일련의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일이다. 멜라니아가 얼마나 이런 일을 해낼지는 앞으로도 지켜보면 될 일이다.